어머니는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하신다. 여든이신 지금도 노래교실을 빠지지 않고 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계신다. 주말이면 찾는 어머니 집에서는 항상 최신 가요가 흘러나오고, 주방 일을 하시면서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은 들어보지 못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언제나 최신 곡을 배워 한동안 부르시다가 나의 귀에 익숙해질 만하면 어머니는 다시 새로 나온 신곡을 배워 부르시기 시작하니 나로서는 어머니의 노랫가락을 따라가기가 버거울 때가 많다.
몇 달 전 어머니가 외손녀의 성악 발표회를 보고 싶다고 하여 큰애가 어머니를 모시고 광주에 다녀온 적이 있다. 큰애가 광주에 갔다 오는 동안 할머니가 좋아하는 곡이 무엇인지 물어서 노래를 계속 틀어드렸다고 한다. 광주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외손녀의 성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준 큰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셨다. 큰손주가 대견했나 보다. 큰애가 운전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들으며 갈 법도 한데 굳이 할머니가 좋아하는 곡을 물어봐서 틀어드렸다고 하니 어머니가 좋아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후에도 어머니는 가끔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시곤 한다.
나도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아이 키우고 일상에 쫓기다 보니 라디오에서 나오는 곡을 따라 하거나 혼자 무료할 때 좋아하는 곡을 흥얼거리는 정도에 만족했었다. 3년 전 우연한 기회에 밴드 보컬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 후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의 끼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이 틀림없다.
통기타를 메고 처음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너무 떨려서 2절로 끝나야 하는 곡을 1절을 한번 더해서 악보에도 없는 3절까지 불렀었다. 떨리는 긴장감을 느끼기 위해 무대에 선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무대 공포증이 남아 있어 무대에 설 때마다 느껴지는 팽팽한 떨림은 앞으로도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도 노래를 좋아하고 나도 노래를 좋아하지만 어머니와 같이 노래를 불러본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와는 부르는 노래의 장르도 다르고 함께 노래를 불러 볼 기회도 없었다고 변명해 본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니 변명이 초라할 뿐이다.
어머니와 내가 같이 노래를 부른 것이 언제인지 생각해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교생을 대상으로 부모님과 함께 동요 부르기 대회가 있었다. 나와 어머니는 〈꽃밭에서〉란 곡을 불렀다. 나는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아 잡고 어머니와 같이 노래를 불렀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불렀음에도 그때는 떨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작은 어깨를 감싸 안고 함께 불러주시던 어머니가 곁에 계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머니와 같이 노래를 불러 최우수상을 받았다. 처음 어머니와 같이 노래를 불러 상을 받은 것이다. 요즘도 어머니는 그때 일을 말씀하시며 환하게 웃으시곤 한다. 어머니의 집엔 아직도 그 상장이 고이 모셔져 있고, 나도 그때 어머니와 같이 노래를 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후에는 어머니와 같이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
어머니의 인생에서 노래는 빠질 수 없는 친구이다. 꽃다운 나이에 어려운 집안에 시집와서 4남매를 키우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유일하게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안아주었던 것이 노래이었다. 어머니가 요즘 좋아하며 부르는 곡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오십 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정작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는 잘 모른다는 것이 서글프다.
며칠 전 어머니와 같이 모악산 도립미술관으로 전시회를 보러 갈 기회가 있었다. 낯간지러움을 무릅쓰고 큰애에게 광주 갈 때 할머니에게 들려드렸던 노래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어머니와 미술품을 감상하고 미술관 둘레 길을 같이 걸었다. 세월의 무게 앞엔 어머니도 어쩔 수 없으신지 잠시 나무 의자에 쉬어가기로 했다.
핸드폰을 꺼내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드렸다. 어떻게 이런 노래를 아느냐며 깜짝 반겨하셨다. 흐르는 곡에 맞춰 조용히 따라 부르시는 모습이 초등학교 강당에서 나의 어깨를 감싸 주셨던 곱디고운 엄마 모습 그대로이다. 이젠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