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받는 훈련 중 가장 힘든 과정을 꼽으라면 화생방 훈련도 순위에서 빠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로 군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화생방 훈련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제대한 선배들로부터 듣던 화생방 훈련의 혹독함은 입대를 앞둔 사나이들을 기죽이기에 손색이 없는 단골 메뉴이다. 요즘 인기 있는 연예인들의 군 생활 체험기에도 화생방 훈련은 빠지지 않는 과정으로 소개되어 시청자들에게 충분한 쾌감과 웃음을 선사하곤 한다.
화생방실에 들어갈 때만 하여도 방독면이 있으니 내심 안심하는 마음이 있다. 여러 명이 사용하는 방독면이다 보니 간혹 구멍이 나있거나 착용법이 복잡해 혹여 잘못 착용이라도 하면 이내 스멀스멀 스며드는 매캐한 연기는 눈과 코를 여지없이 강타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방독면에 의지해 참을 만하다. 방독면을 벗으라는 조교의 험한 고함소리가 들리고, 최대한 미적미적 버티다가 잡아먹을 듯 다그치는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벗게 된다. 정말 고통이 극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숨을 쉴 수도 없고 눈물 콧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어 앞도 못 보고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고통의 끝은 이게 아니다. <어머니 노래>를 부르란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이쯤 되면 화생방실을 탈출하기 위한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조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이상 막으면 무슨 사단이 날 지경에 이르러서야 조교가 출입문을 열고 나가라고 소리친다. 문을 박차고 나서는 세상은 신세계 그 자체이다. 그때 마신 맑은 공기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평소에는 공기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화생방 훈련을 통해 공기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이다.
제대 후에도 화생방 훈련을 한 적이 있다. 군에서가 아니고 서울 한복판 주택가 신혼집에서의 일이다. 두 주먹만 가지고 신혼을 준비하다 보니 번듯한 집을 구할 여력이 없어 방 한 칸짜리 반지하 월세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반지하 집은 말 그대로 창문의 윗부분 약간만 지상이고 나머지는 모두 지하다 보니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밖의 사정은 나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형태이다.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너무 좁아 여덟 자 장롱이 들어가지 못해 난간을 떼고 입주를 하였다가 이사를 나오면서 다시 설치해 준 서글픈 기억도 있다.
그래도 신혼의 달콤함이 있기에 반지하 집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라 여기며 그다지 불평 없이 하루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둘 다 가진 것 없이 상경하여 어렵게 시작한 결혼생활이기에 변변한 가재도구도 준비하지 못한 조촐한 신혼살림에는 단칸방이 좋은 점도 있었다.
처부모님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다고 신혼집에 올라오신 적이 있다. 단칸방이라서 난감하였으나 그럭저럭 저녁을 먹고 한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잠을 자게 되었다. 한밤중에 물을 먹기 위해 방문을 열고 거실에 나오는데 바닥에 물이 첨벙거려 불을 켜보니 하수구의 물이 역류해서 거실 바닥이 흥건했다. 부모님 몰래 아내와 함께 소리 죽여 가며 새벽녘까지 물을 닦아 냈다.
아침에 부모님은 어렵게 결혼했으니 잘살라는 말씀을 남기고 내려가셨다. 아직까지도 부모님이 그 사건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알 길은 없다. 당시에는 물어볼 자신도 없었고, 부모님도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반지하방에서 오순도순 생활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고, 소중한 첫애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그 집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뱃속의 아이가 자라는 재미에 하루하루 아무런 걱정이 없는 듯했다.
어느 날 아내가 화들짝 놀라 방바닥의 뭔가를 가리켰다. 너무 작아서 자세히 보아야만 보였다. 진드기였다. 반지하이다 보니 습기가 많아서 진드기가 생긴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진드기를 찾아보니 이불에도 있고 여기저기 구석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약국으로 달려가 물어보니 진드기 퇴치 약이라고 하면서 모든 문을 닫고 2-3 시간 동안 방 가운데에 피워두라고 하였다. 주말에 장롱의 모든 이불을 꺼내고 옷장의 옷들도 꺼낸 후 하나뿐인 창문도 닫고 방바닥에 연기를 피우고 문도 잘 잠그고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동네 이곳저곳을 촘촘히 걸었다.
아내 손을 꼭 잡고 이런 것도 나중엔 좋은 추억이 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나를 만나 불편한 반지하방에서 생활하고, 임신을 하였어도 일하느라 임산부의 대접도 받지 못하고, 이런 일까지 겪게 한 자신의 모자람에 한없는 자책감만 쌓여갔다.
시간이 얼추 지나 집에 가보니 반지하방 창문에 집주인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안절부절못하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아차 싶어 창문을 보니 틈새로 연기가 솔솔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닫는다고 닫고 나온 창문 사이로 진드기 퇴치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집주인에게 들어보니 우리 집 창문에서 연기가 새어 나와 문을 열려고 하여도 열리지 않고 연락도 안 되어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막 119로 신고하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진드기 퇴치를 위한 화생방 훈련은 다행히 소방차량 출동 없이 무사히 끝났다.
이런 소란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모와 첫애에 대한 미안함에 많은 대출을 감수하면서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탈출하였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던 아침 햇살, 저녁노을,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 눈 오는 풍경들이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때 반지하 집에서의 생활은 내가 살아가면서 놓치기 쉬운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 인생의 화생방 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