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족

by 송재영


내 이름은 ‘창식’이다. 나를 별로 예뻐하지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것은 잘 챙겨주는 아빠, 나를 가장 사랑해주고 항상 말을 걸어주는 엄마, 나를 데려와 식구로 만들어주고 친동생처럼 아껴주는 큰형, 뭐가 바쁜지 자기 시간 날 때만 가끔 귀여워해 주는 작은형, 이렇게 네 명과 같이 산다.


오래 전의 일이라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이 집에 올 때만 하여도 따뜻한 큰형 방에서 같이 생활했던 것 같다. 그 후 연유는 알 수 없으나 방에서 쫓겨나서 새로 내 집이 마련되고 지금은 그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집은 예전 방보다 춥고 장소도 비좁아 대궐에 살다가 사글세 집으로 쫓겨난 것 같지만, 그래도 실내에만 갇혀 지내야 했던 방에 비해 주변의 경치를 마주할 수 있는 전원주택의 생활도 나름 좋은 면이 있다. 맑은 하늘 처마 밑에 자리하여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감상에 젖기에 좋고, 넓고 푸른 잔디가 깔려 마음대로 뛰놀 수 있는 나의 전용 놀이터인 마당도 있고, 수시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친구들이나 어른들의 일상 모습에 심심하지도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족은 단연 엄마이다. 항상 해가 뜨기도 전에 나에게 아침 인사를 해주며 잠을 깨워주기도 하고, 끼니도 챙겨 주고, 가끔은 아빠 눈을 피해 맛있는 간식도 챙겨주고, 아플까 봐 예방약도 빠지지 않고 먹여 준다.

엄마의 나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내가 가족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다리가 골절이 되어 수술을 받아야 할 때가 있었다. 아빠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으나 엄마는 주저함이 없이 수술을 받게 하고 극진히 간호를 해 주었다. 그 덕분에 지금 잔디를 밟으며 마음껏 뛰놀기도 하고 아빠를 따라 먼 거리를 산책도 할 수 있다. 그런 엄마를 위해 외출 후에 돌아오면 달려들어 반가움도 표하고, 엄마가 텃밭과 꽃밭을 가꾸기 위해 마당에 나오면 따뜻한 햇살의 나른함도 포기하고 항상 옆 자리를 지키며 재롱도 피우고 귀여움도 떤다. 그것이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라 생각해서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조금 고민이 된다. 아빠는 좀 쌀쌀맞지만 보호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주고, 큰형은 살갑기는 한데 바빠서인지 게을러서인지 잘 챙겨주지 않는다. 그래도 나에게 두 번째는 큰형이다.

나를 데려와 지금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가족이 되게 해 주었으니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 없다. 큰형은 야행성이라 대부분 늦은 시간에 들어온다. 늦게까지 기다리면서 나의 도리를 다하고 싶지만 잠이 많기도 하고, 혹여 깨어 있어 의무감으로 달려가 귀여움이라도 떨 요량이면 그냥 쓱 들어가 버려 뻘쭉이 마당에 남겨지다 보니 이제는 부르지 않으면 마중을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큰형은 나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수시로 건강도 챙겨주고 목욕도 시켜주며 잠자리에도 꽤 신경을 써준다.


세 번째 서열은 아빠다. 아빠는 처음부터 나를 반겨하지 않았고 지금도 나에 대한 아빠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 내 식사나 간식을 챙겨주거나 집을 수리하여 주는 일도 엄마의 성화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 아직은 아빠가 경제 활동도 하고 있고 가족들의 존경을 받고 있어 가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그래서 나도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달려들어 매달리기도 하고 장난도 쳐보지만 시큰둥해한다.

나는 아빠가 들어올 때까지는 아무리 피곤해도 절대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한다. 따뜻한 담요에 피곤한 몸을 쉬고 있다가도 아빠가 오는 소리가 나면 망설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 재롱도 피우고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뒤따라간다. 그게 나의 살 길이기도 하고 가족의 일원으로 아빠에 대한 존중과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를 데리고 운동을 시켜 준다. 평일은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주말이면 둘레 길을 따라 상당히 먼 거리를 함께해준다. 일주일 내내 주로 마당에만 있는 나를 기분전환시켜주려는 가족의 마음이 크겠지만, 아마 내가 뚱뚱해지면 다리 골절이 도질까 봐 하는 돈 걱정도 있는 것 같다.


내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작은형이 있다. 작은형은 여자 친구가 생겨서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작은형이 마당에 나오면 반가움에 달려들지만 등을 돌리고 여자 친구와 속닥속닥 전화하기만 바쁘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만 해도 나를 예뻐해 주었는데 여자 친구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나를 뭐에 뭐 본 듯 대한다.

가끔 여자 친구에게 멋져 보이고 싶어 나의 귀여운 모습이나 나를 데리고 산책하는 척하는 사진이 필요하면 사정을 하곤 한다. 그럴 땐 한두 번 거절하다 마지못한 표정으로 한두 컷 잘생긴 모습을 찍도록 허락해 주곤 하는데, 내 사진을 구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관심해진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 여자 친구에 빠져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가족만큼 소중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나는 이제 네 살이 되었다. 방에서 쫓겨나 바깥 집에서 혼자 긴긴밤을 보내고, 평일에는 혼자 집에 남아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이도 지칠 때면 내 신세가 서럽기도 하고 가족에게 서운하기도 하다. 주말이면 나만 빼고 가족이 모여 뭔가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웃고 떠드는 모습을 창 너머로 보고 있으면 함께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초라하면서도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대리 만족이라도 해보곤 한다.

나는 성인이 되어도 분가를 하여 새로운 가족을 꾸릴 수 없다. 태어나서 이 집에 오기 전에 나는 번식력을 잃어버렸다.


가족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매일 할 일 없이 먹고 누기만 하면서 하루 종일 어슬렁거리다가 햇볕 좋은 난간에서 늘어지게 잠만 자는 개 팔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가족들의 마음을 잘 모르듯이 가족도 나의 마음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나만의 마지막 자존심인 애완견으로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무던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만은 우리 가족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애완견도 아니고 마당 개도 아닌 어중간한 나의 위치가 끝까지 가족의 일원으로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가족은 이 네 명이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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