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은 시내버스 종점에 있다. ‘종점’ 하면 고향, 이별, 그리움, 편안함, 사랑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면서 왠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곳에 사는 나도 흥미로운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매일 버스로 출근을 하다 보면 일정 구간을 지날 때까지 버스정류장마다 타는 사람이 누구인지, 시간대 별로 누가 타는지, 중간중간 누가 내리는지를 알게 되고, 타야 할 사람이 타지 않으면 혹시 아픈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출근하는 모습은 대체로 활기차고 밝은 모습이지만 간혹 전날 과음을 했거나 힘든 일이 있었을 것 같은 피곤한 모습을 한 사람을 보면 오늘 하루 조금 힘들겠구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하게 된다.
늦은 시간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땐 무거운 가방을 멘 학생, 바리바리 싼 짐 보따리를 든 아주머니, 한잔 걸친 아저씨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올라타는 모습을 보면 서로 아는 체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 반갑고 정겨우면서도 마음 한편이 애잔해 온다.
나의 버스 사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음주운전 단속이 심해지면서 가끔 아침에도 음주측정을 했다. 저녁에 과음을 하고 출근을 할 요량이면 왠지 찝찝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곤 하였는데, 당시만 하여도 젊었던지 술을 마시는 횟수가 많다 보니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아 부담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한두 번 버스를 타다 보니 버스 타는 재미가 솔솔 했다. 일단 음주 단속에 대한 걱정이 없고,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 어쩐지 건강을 잘 챙기고 있는 것 같은 뿌듯함도 들고,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과 시시각각 변하는 거리의 풍경도 매력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일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간혹 힘들고 지칠 때면 출근길에 모교인 전북대 구 정문 정류장에 내려서 모닝커피 한 잔을 들고 교정에 앉아 꿈 많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며 위로받기도 했다. 운동이 부족하다 싶으면 두세 정거장 전에 내려서 힘차게 걸으며 잠시나마 운동을 하기도 하고, 퇴근길 술 약속이라도 있으면 걸어서 약속 장소에 갔다가 버스를 타고 귀가를 하니 술도 잘 깨고 숙취 고생도 덜하게 되었다.
물론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운 날에는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시간대를 잘못 맞춰서 버스를 오래 기다리기도 한다. 출퇴근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기도 하였지만, 버스를 타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이나 행복은 이러한 모든 것을 감내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버스를 이용하다 보면 갑자기 비를 만날 수 있으니 접이식 우산은 필수품이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성능 좋은 블루투스 이어폰도 있어야 하고, 책 한 권, 필기구, 악보집 같은 소소한 지참물이 있다 보니 남자지만 가방도 꼭 필요한 물건이 되었다.
처음엔 손에 드는 가방을 가지고 다니다가 버스에서 시달리다 보니 어깨에 걸치는 가방으로 바꾸게 되고, 요즘은 이도 불편하여 학생들이 이용하는 백팩이라는 가방을 둘러메고 다닌다. 백팩은 학생들이 주로 메고 다니는 가방이다 보니 중년인 내가 메고 다니기엔 조금 어색한 것 말고는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가방이 없는 듯하다.
요즘 다시 버스를 타면서 버스 앱이라는 신기술을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이 앱을 개발한 사람에게 많은 감사와 찬사를 보냈을 거라 생각한다.
전에는 버스가 지나쳐 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버스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쳐다보았는데, 이 앱이 개발되면서 버스가 오는 정류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고 제각기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 해도 환승하는 정류장에서 공연 때 부를 노래를 불러 본다든지, 영어 뉴스를 듣는다든지, 가끔은 스쿼트 자세를 하면서 짬짬이 시간을 요긴하게 쓰고 있으니 이 또한 이 앱이 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다시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을 해야 해서 당분간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아침에는 승용차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음에도 굳이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다. 직접 말을 건넬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라도 그간 함께 동승했던 사람들에게 잠시 만나지 못하는 혼자만의 작별인사를 나만의 방식으로 나누었다.
시내버스는 일반 대중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물론 승용차가 있음에도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승용차가 없어서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조만간 퇴직을 하게 된다. 퇴직을 한다는 것은 승용차를 이용해야 할 만큼 바쁘거나 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물론 퇴직 후를 생각해서 미리 연습을 하기 위해 버스를 타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젊은 시절 동안 버스와 함께 한 희로애락은 노년이 되어도 거부감이나 어려움 없이 버스와의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