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아범이구나, 어제는 아파트 친구와 남부시장에 갔는데 유채 나물이 나왔더구나, 유채 나물을 사서 무쳤는데 향도 좋고 제법 그럴듯하다. 간도 안 보고 했는데 맛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시장에도 딱 한 곳에만 나오는 곳이 있는데 마침 나왔길래 내가 얼른 사 왔지.” 그 후에도 어머니의 말씀은 한참 이어졌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아범 바쁠 텐데 그만 끊자.” 이른 봄인데 딱 한 곳에 나와 있던 유채 나물을 다른 사람이 사가기 전에 얼른 사서 무쳐놨으니 주말에 가족과 같이 와서 봄내음 가득한 나물을 맛있게 먹어 보란 말씀이다.
어머니와 매일 전화 통화를 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 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 강릉으로 발령이 나면서 시작된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는 지금까지도 문안 인사처럼 이어지고 있다. 어머니에게 매일 전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와 통화를 한다는 것이 어찌 그리도 주저되고 할 말이 없던지, 지금 생각해도 첫 통화의 대화 내용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당시 무척 멋쩍고 어색했었던가 보다. “어머니세요, 저 큰애인데요, 식사하셨죠? 건강 잘 챙기세요. 딸깍.” 딱 두 마디를 하고 끊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와의 통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오랜만에 통화를 하면 할 말이 많을 것 같지만, 실은 통화를 자주 할수록 할 말이 많아진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요즘 날씨가 풀려서 봄이 성큼 다가왔다느니, 시장에는 무슨 나물이 나왔다느니, 누구네 집에 무슨 일이 있다느니, 옆집에 이사 온 총각이 인사성이 밝다느니... 어머니의 일상이 매일 통화를 통해 일기처럼 써지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어머니가 나와의 대화거리를 위해 좀 더 바삐 움직이고 있으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머니의 대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어머니의 통화 목소리가 커지는 때도 종종 있다. 한때는 어머니의 청각에 이상이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의 통화 목소리가 높아진 때는 틀림없이 누군가와 같이 있는 때이다. 아들이 전화를 매일 해준다는 사실을 같이 있는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소리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만큼은 아무리 바빠도 어머니가 끊자고 하실 때까지 전화기를 들고 어머니의 웅변 같은 목소리에 맞장구를 치며 나도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어머니가 외출을 하시면서 꼭 챙기는 것이 있다. 바로 휴대폰이다. 한 번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신호만 가고 연락이 되지 않아서 부랴부랴 집으로 가보았으나 문이 잠겨 있어서 오랜 시간을 문 앞에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자식 걱정시키면 안 된다면서 문 앞 구멍가게에 가실 때에도 휴대폰은 꼭 가지고 다니신다고 했다. 어머니와 매일 전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휴대폰은 어머니와 나를 이어주는 사랑의 끈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요즘은 가족이 집에 같이 있으면서도 서로 톡으로 연락을 한다고 하니 부모 자식 간의 의사소통도 세태에 따라 참 많이도 변한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아이들은 대화나 전화보다는 톡이나 문자를 통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하여 좋다고 하니 자식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나만해도 ‘행복한 우리 집’이란 가족 톡방이 있어서 아내와 아들들과의 약속이나 연락도 이 톡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니 나름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좋은 경치나 좋은 글귀, 멋진 사진이 있으면 즉시 톡방에 올려 가족들과 공유하며 잠시 즐거움을 나누기도 하고, 말로 하기 쑥스러운 표현도 톡방에서는 용기를 내어 올려 볼 수 있고, 서로 귀가 시간대가 다른 가족의 모임 시간이나 장소를 협의하여 정하기도 톡방만큼 좋은 공간이 없으니 이제 톡방은 우리 가족을 이어주는 행복지킴이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톡방이 해체될 위기도 있었다. 가족 간에 의견 대립이 있거나 다투는 경우가 다반사이긴 하지만, 서로 상처를 주는 말들로 인해 아들과 아내가 톡방을 나간 적이 있었다. 톡방의 구성원이 네 명이어야 완전체가 되는데 두 명만이 남아 있는 톡방은 지붕이 없는 집처럼 방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즉시 다시 초대를 하였으나 둘 다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둘째와 모의를 해서 가족모임을 하기로 하고 일방적으로 톡방에 시간과 장소를 올려 보았다. 일방적이라고 하였지만 톡방에는 상대방이 확인을 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놀라운 기능이 있어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둘 다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 사실을 알고 모임 장소에 가보니 둘 다 정시에 나타나서 우리 가족은 다시 합체가 되었다. 그날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다시는 톡방에서 나가지 않기로 맹세하는 톡방 결의까지 하였다. 지금 큰애는 현장 학습을 가고, 둘째는 군대에 가서 함께 하지 못하지만, 톡방에서는 여전히 가족의 일원으로 한쪽 구석을 지키며 행복한 우리 집에 함께 하고 있다.
어머니는 톡방에 함께 하지 않으신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전화를 하거나 찾아뵙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스마트폰을 사드리고 용법을 알려 드릴까 하는 고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과의 소통 방식을 따라가 주고 있듯이 어머니와의 소통 방식도 존중해 드리기로 했다. 어머니는 멋진 풍경이나 좋은 글귀보다 자식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자식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신다.
오늘도 어머니는 세상 돌아가는 좋은 소식을 가장 먼저 생생하게 전해주기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고 있을 것이다. “따르릉~~ 아범이냐.” 전화기 속 어머니의 힘찬 목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