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다, 한쪽 눈만. 그것도 눈썹이 서로 닿을 정도로 가느다란 실눈을 떠본다. 두 눈을 뜨면 숙면의 달콤함이 도망 칠 것 같은 아쉬움이 묻어 있다. 아직 창문으로 새벽의 여명이 들어오지 않은 시간인지 방은 어둠에 갇혀 있다. ‘제발’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돌려 화장대 위의 시계를 본다. 아직 잠자리에서 버티기에 괜찮은 시간이다.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정확히 말하면 잠을 자고 싶은 게 아니라 소위 게으름이란 걸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곁에 있는 아내를 본다. 아직 꿈속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 자는 척을 하며 일어나기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잠자리의 달콤함에서 빠져나오기를 주저하는 심정인지도 모른다. 오늘만큼은 어둠에서 깨어나는 세상처럼 아내의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깨어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로 한다. 고개를 돌려 다시 아내의 얼굴을 본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시간의 흐름처럼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내가 깰 때까지 그대로 누워있다. 방안 가득 햇살이 들어오면 아내도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듯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어난다. 나도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다.
아내의 아침은 항상 바쁘다. 집안 곳곳의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 집안으로 햇살을 초대한다. 데크로 나가 꼬리를 살랑거리는 창식이와 살갑게 인사하고 식사와 간식을 차려 준다. 나보다 먼저 식사를 챙겨주는 걸 보면 서열이 나보다 빠른 게 확실하다. 아내는 오랫동안 해오던 익숙함으로 세탁기를 돌리고 음식물 쓰레기통도 밖에 내놓고 여기저기 전날의 잔해들을 빠르게 정리해 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의 말이 점점 사라져 간다. 이쯤 되면 나도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난다.
가장 경계해야 할 때는 아내의 말수가 적어지기 시작할 때이다. 나는 잽싸게 가장 손쉽고 표가 날만한 일거리를 찾는다. 청소기를 꺼내 우렁찬 모터 소리를 내며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아내는 환한 모습으로 모처럼 주말인데 쉬지도 못하고 애쓴다고 한다. 한참을 서대다 아직 아침 식사도 못한 공복의 사실을 깨닫게 될 즈음에 식탁에 둘 만의 조촐한 성찬이 준비된다.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내리는 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내가 내린 커피 향이 훨씬 좋다는 한마디에 평생 바리스타를 자처하게 된 것이다. 데크에 자리를 잡고 이런 때만큼은 들어줘야 할 것 같은 클래식 음악도 준비하여 둘만의 카페를 만든다. 둘 사이에 커피 향 가득한 토요일의 아침이 흘러간다.
토요일 오전의 시간을 둘이 함께 하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최근까지는 애들이 대입이라는 치열한 과정에 있어서 토요일도 무척 바빴다. 애들이 대학에 가면서 부부 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철없는 남편은 이때다 싶었는지 토요일을 자신의 취미 시간으로 챙겨 가 버렸다. 매주 토요일이면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씻고 옷을 챙겨 입고 준비물을 가지고 집을 나선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뭐라도 요기를 하고 가라면서 나가는 남편을 따라 나와 조심히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손에 요구르트를 쥐여 주곤 한다. 남편은 토요일까지 자기 계발을 위해 뭔가 열심히 사는 자신을 대견해하며 별 다른 생각 없이 다른 곳에서 새로운 기쁨을 즐기곤 했다. 가끔이지만 아침 식사까지 하고 오는 날이면 아내는 이미 정리를 마치고 일상을 따라 한참을 바쁘게 달려가고 있었다. 조금 미안해도 나의 발전이 가족의 발전을 위한 것이니 아내도 당연히 좋아하리라 생각했다.
일 년 정도가 지나서 목 디스크 증상이 생겨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직장 때문에 토요일만 치료가 가능했다. 아내는 매주 진료 예약을 잡고 저녁이면 디스크 치료에 좋은 마사지를 하여 주며 정성껏 돌봐 주었다. 토요일에는 일찍 일어나서 대충 정리를 하고 아침 식사도 영양식으로 준비해 주었다. 죽을병도 아닌데 아내는 항상 직접 운전을 해서 병원에도 동행해 주었다. 극진한 보살핌으로 두 달 정도가 지나면서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하루는 병원 진료를 마치고 카페에서 커피를 같이 마셨다. 증상이 호전되어 이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였다. 아내는 증상이 좋아져서 좋다고 하면서도 마냥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내가 아프기는 하였지만 두 달 동안 토요일마다 나와 같이 일어나서 나를 위한 아침 식사 준비도 하고 병원에도 같이 다니고, 진료 후에는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셨던 것이 너무 좋았다고 하였다. 이제 그러지 못할 것 같아서 아쉽다고도 했다. 나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해야만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닌,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제 토요일만큼은 나만의 취미생활을 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평생을 같이 가야 하는 길은 혼자 빨리 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