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한다. 나도 집을 지었다. 직접 집을 지으며 건축가나 설계사가 아니면 모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거주하는 방의 길이와 높이는 몇 미터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 2층으로 가는 계단들의 높이는 몇 센티 정도가 오르내리기에 가장 적당한지, 용도별 문의 크기와 여닫는 방향은 어떠한 지를 이제 안다. 한 채의 집이 완성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더해지고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 지도 안다. 내가 지은 집에 산다는 것은 그 집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집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을 때 아내는 선뜻 동의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내가 싫어해서 주택으로 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마당에서 텃밭 꽃밭 가꾸며 사는 게 좋다고 했다. 결혼 후 ‘남자는 태어나 성(城) 하나쯤은 있어봐야지’라며 호기롭게 나의 버킷리스트에 집 짓기를 올려놓았었다. 이런 마음을 알기에 나에게 맞춰주려 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 무척 만족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집을 짓기로 하면서 살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전세로 이사했다. 대지를 구할 돈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집터를 구하는데 몇 가지 원칙도 정했다. 외곽으로 나가더라도 교통이 편리해야 하므로 버스가 닿는 종점을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주택의 난방과 정화조 관리에 대한 어려움을 익히 듣던 터라 도시가스와 정화조 관이 연결되는 곳이어야 하며, 주민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동네 안에 위치한 터를 찾기로 했다.
주말이면 전주시 인근에 있는 살기 좋다는 집터를 찾아 무던히도 발품을 많이 팔았다. 예쁜 주택을 만나면 사진도 찍고 메모도 하면서 앞으로 지을 집에 대한 스케치도 함께 해나갔다. 전원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듣기 위해 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 좋은 대화도 많이 나눴다. 집을 짓기 위한 준비를 하던 1년여의 시간들은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결과보다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대지를 구입하고 우리가 짓고 싶은 집의 설계를 시작했다. 욕심만 앞서 그간 보았던 집들의 좋은 부분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지었다 부쉈다만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서야 우리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집의 설계도가 완성되었다.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조용한 마을에 외지인이 들어오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신 동네 분이 차량으로 길을 막아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고, 동네 부지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쳐서 곤궁에 빠지기도 했다. 가족 간에도 맘이 맞지 않아 다툰다는데 오랜 세월을 동네 분들만 지내다가 이방인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했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인상 좋다는 그간의 세평이 치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고, 인사성 밝은 천성도 도움이 되었다.
집을 완성하고 울타리를 두르고 잔디를 심고, 텃밭과 꽃밭도 만들었다. 텃밭과 꽃밭은 그렇다 하더라도 잔디는 내심 고민을 조금 했다. 전원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 중 잔디도 단연 선순위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뽑을 때 뽑더라도 초록 가득한 전원주택의 환상을 포기할 수 없어 마당에 잔디를 촘촘히 심었다. 충전용 예초기도 구입하고 일 년에 네 번 정도 잔디를 깎는다. 잔디를 깎고 나면 이발하고 나서의 깔끔함과 단정함에 한층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같은 희열을 느끼게 되어 오히려 나에게 기쁨이 되고 있다.
집의 소재는 목재로 하였다. 딱히 목재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단지 목재가 건강에 좋다는 말에 이끌렸던 것 같다. 집의 틀을 잡기 위해 세워진 목재들을 보는 순간 인간의 골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잘 통하는 목재로 이어진 벽면은 숨 쉬는 피부를 두른 느낌이었다. 이렇게 목재로 지어진 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온화했다.
이사하던 날,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에 이끌려 다 큰 아이들과 반강제로 이층 집 창문을 통해 지붕에 자리를 잡았다. 멀리 모악산 정상의 불빛이 깜빡이고,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그때 함께 나누었던 꿈들이 아이들의 옛날이야기에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좋겠다.
집 안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 살랑이는 바람결은 나를 스쳐 지나가고, 내리는 빗방울의 감촉은 나의 손등에 부딪혀 부서지며, 소록소록 내리는 하얀 눈은 텅 빈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 준다. 밖의 풍경이 온전히 나의 몸에 전해진다. 나와 집이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