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이식 밥상을 메고 고개를 넘는다. 20리가 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밥상은 무명으로 만든 줄로 묶고 어깨끈을 만들어 양팔에 끼워 메고, 양손엔 책 보따리와 이불 짐을 들고 있다. 옥정호에 물이 차면 버스가 다니는 도로가 잠기어 읍내에서 할머니 집까지 산등성이를 타고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산골 마을은 해가 빨리 져서 서두르지 않으면 어둠에 갇혀 버릴 수 있다. 고갯마루에 서서 동네를 내려 보니 할머니 댁이 한눈에 들어온다. 낮은 지붕 굴뚝에서는 손주의 저녁 준비를 위해 연기가 신이 났다. 마당에는 닭들이 모이를 쪼아 먹느라고 분주하다. 음식 장만에 정지와 우물을 정신없이 다니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반갑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게 될지 생각해 본다.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임실에 있는 옥정호 상류 산골 마을이어서 버스가 하루에 네 번만 다닌다. 비라도 와서 호수에 물이 불면 도로가 잠기어 읍내에서 내려 걸어가야만 하는 오지이다. 물론 지금은 도로도 새로 놓고 읍내도 이전하여 조성되고 옥정호의 제방도 정비되어 비가 와도 버스 다니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30년 세월의 흐름에 예전 모습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전벽해처럼 변하였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에 짐을 지고 고개를 넘어 할머니 댁에 갔다. 명절이면 어머니 손을 잡고 하루 이틀씩 찾긴 하였어도 두 달 정도를 혼자 가서 생활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손주가 온다고 아궁이에 장작을 얼마나 땠는지 방바닥 전체가 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지글지글 끓었다.
대충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밥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흰쌀로 지어 고봉으로 쌓이고, 장날에 미리 준비하셨을 조기와 계란은 밥 짓는 솥에 넣어 익혀 밥 내음을 품고 있으며, 항아리에서 적당히 익은 김장 김치와 산나물로 한 상 가득히 내주셨다. 식사를 마칠 무렵 가마솥에서 끊인 숭늉까지 마주하니 이보다 더한 진수성찬이 없었다.
저녁을 마치고 대청마루에 앉았다. 멀리 산등성이의 윤곽만 하늘과 지상을 나누고 온통 깜깜했다. 반짝반짝 선명하게 박혀 빛나는 별들은 도시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멀리선 짐승 울음소리가 들리고 마을 앞 개울에선 물 흐르는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흔들고 있었다. 잠자리를 펴고 할머니와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첫날 잠을 청했다.
산골 마을은 겨울에 할 일이 거의 없다. 눈이라도 많이 내리면 교통이 끊겨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이다. 남자들은 꿩을 잡기 위해 콩에 구멍을 내어 싸이나를 넣기도 하고, 토끼나 고라니를 잡기 위해 덫을 준비한다. 산짐승 날짐승이라도 잡은 날이면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할머니가 잔칫집에서 얻어 오셔서 처음으로 날고기를 먹어보기도 했다. 여자들은 주로 사랑방에 모여 고구마나 감자를 앞에 두고 여름내 지친 심신을 추스르며 수다를 떠는 것이 유일한 놀이이다. 가끔은 맘 맞는 사람끼리 날을 잡아 시내로 마실을 간다. 남부시장에서 옷도 사고 미용실에 들러 파마도 하고 오랜만에 식당에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돌아오는 것이 낙이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접이식 밥상을 펴고 육법전서를 펼친다. 들쳐 메고 간 밥상이 책상 역할을 했다. 방바닥에 장시간 앉아 있다 보면 온몸이 쑤셔 허리도 펼 겸 해서 마당으로 나선다. 산골이라 유독 추운 날씨에 동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할머니만 손주 뒷바라지에 여기저기 종종걸음이 바쁘다. 매일 같이 세숫물과 빨래를 위해 개울을 몇 차례씩 다니셨다. 장날이면 읍내에 나가 계란이며 야채며 주전부리를 사러 왕복 40리를 다니시곤 했다. 명절 무렵 동네에서 돼지라도 잡는다는 소문이 돌면 할머니는 남들보다 먼저 웃돈을 주고 맛난 부위를 주문하시길 놓치지 않는다. 내가 머무는 방학 동안엔 할머니는 사랑방에도 가지 않으신다. 오직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온통 나에게 매달리셨다.
산골 마을의 여름은 너무도 다르다. 해가 뜨기가 무섭게 모든 동네 어른들은 밭으로 나간다. 이른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다시 밭으로 내달린다. 새참이 나가고 해가 저물어갈 무렵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든다. 여름에는 모두 일만 하는 것 같다. 나의 일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새벽녘 소달구지 소리에 깨어 접이식 밥상을 펴고 자리에 앉는다. 한여름 불볕에 땀줄기가 멈추지 않을 지경이 되면 할머니가 개울에서 시원한 물을 길어 와 등목을 해 주신다. 저녁은 모기와의 전쟁이다. 산골의 모기는 한번 물면 물집이 잡힐 정도로 억세다. 할머니는 낮에 말린 풀을 쌓아 모깃불을 놓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개울가로 내려가 노천 목욕을 하고 냉기를 안고 잠을 청한다.
방학이면 할머니 집에 왔다가 개학을 맞아 올라가기를 세 번이나 했다. 할머니는 내가 내려오면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셨다. 죄송한 마음에 힘드시냐고 물으면 내가 와서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 같아서 좋다고 하셨다.
3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가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고 가지 않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에 직접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어머니를 통해 들으니 할머니가 접이식 밥상이 없으면 어떻게 공부를 하냐며 가져다주겠다고 하여 다른 곳엔 책상이 있으니 그냥 두라고 하셨다고 알려 주었다.
그 후 졸업하고 입대하고 취업 준비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며 할머니 댁에는 자주 찾아가지 못하고 들려도 인사만 드리고 바로 올라오곤 하였다. 직장을 잡고 할머니 댁에 가서 하룻밤 묵고 올 기회가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대청마루에 마주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여러 겹의 종이에 싸고 헝겊으로 잘 묶은 접이식 밥상을 꺼내 보여 주셨다. 언제가 다시 와서 공부를 할지 몰라서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취직을 했으니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오랜 세월 까맣게 잊고 있던 밥상을 보면서 울컥했다.
할머니는 내가 떠난 후에도 손주와 함께 했던 시간에 갇혀 계셨던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홀로 남아 있는 밥상을 나처럼 대했을 할머니의 마음에 한없이 숙연해졌다. 할머니를 위해 밥상을 가지고 왔다. 할머니가 떠나신 지 오랜 세월이 흘렸다. 아직도 접이식 밥상을 보면 할머니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