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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r 24. 2020

이방인이 된다는 것

호주 워킹홀리데이와 영어식 이름

인생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살아볼 기회가 있을까?


2016년,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까지 나는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이방인이었던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나는 김지현으로 살아왔다. 나를 이뤄온 모든 것들, 이를테면 가족과 친구, 학생. 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의 딸도, 선후배도, 친구도 아닌 철저한 나로 살아가는 순간들이 나에게는 즐거움이었던 거다. 물론 동양인 여성이라는 사실이 가끔 나를 귀찮게 할 때도 있었지만.

철저하게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순간, 자유라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이 피부로 와 닿는 순간에 나는 김지현이 아닌, 리브였다.


사실 영어식 이름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의견이 많으나, 나는 왜 굳이 한국식 이름을 고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이름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다. 나는 내 이름을 선택할 수 없고, 나에게 주어진 그 이름에는 수많은 것들이 딸려온다. 나는 누구와도 관계되지 않고 오롯이 나로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리브(Liv)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리브는 live와 leave의 뜻을 담았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언제든지 정착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호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나는 liv로 살았다.


Liv라는 이름에는 어떤 책임도, 의무도 없었다. 공부하러 온 학생도, 놀러 온 관광객도, 비즈니스차 온 회사원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방인으로써 이곳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나를 책임져줄 사람도, 나를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 이 땅에서.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이자 소수인종으로써 살아간다는 것. 그곳에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건 딱히 많지 않았다.


고향을 알 수 없는 이방인들끼리 만날 때마다 내가 나를 소개할 수 있는 것은 내 이름과,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정도였다. 처음에는 어디서 왔는지를 말했지만, 이 개념이 모호한 수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내가 온 곳은 그저 내가 태어난 곳 정도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그만큼 어딘가에 정착하지 않았다. 모두 잠시 들르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무서웠던 건 한국이었다.

나의 소설의 대부분에 '빈대'가 등장하는데, 빈대는 수많은 역할과 책임에 매여 살아가는 나를 상징한다. 주어진 역할과 그 역할에 기대되는 것들에 기생하는 빈대 말이다.


호주를 가기 전의 나. 자유를 갈망했고, 또 자유로운 척했지만 단지 조금 더 많은 공간을 움직이는 데 사용했을 뿐, 새장은 넓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다. 호주에서 나는 처음으로 기생할 숙주를 찾지 못했다. 숙주가 없다는 것은 사실 처음에는 좀 두렵다. 모든 것들이 내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따라 미래가 바뀐다. 다른 변수들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내가 일을 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구해주지 않고.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 모든 것들이 온라인에서 이뤄지던 한국과는 달리, 소통도, 구직도 모든 것들이 오프라인에서 이뤄졌다. 직접 사람을 대면해야 했고, 영어를 써야 했고, 거절을 당해야 했고, 의심과 조롱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숙주가 없는 삶의 자유로움에 대해 깨달았던 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막연히 생각했겠지만, 글로 표현하고 보니 내 삶이 얼마나 독립적인지 깨달았다. 어떠한 시선도, 강요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내 행동을 일일이 계산하고 제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화장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옷도 중고가게에서 산 옷을 돌려 입었다. 처음으로 나의 섹슈얼리티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다.


육 개월 정도는 도시에 정착해서 살았다. 투 잡, 쓰리 잡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술을 마시고, 산책을 하고, 도서관을 가고,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떠나보내면서.


남은 육 개월 정도는 정착하지 않고 지냈다. 반 년동안 나름 모은 돈을 갖고, 페이스북에서 구한 처음 보는 독일 친구 둘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났다. 끝없는 사막을 달리면서 세 번이나 새로운 기후를 만나는 꽤나 긴 여행.


여행 내내 우리는 늘 수영복을 입고 사막을 달리다가, 바다나 워터폴이 나오면 뛰어들어가곤 했다. 며칠 만에 마트가 있는 도시를 만나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할인 식료품들을 죄다 싹 쓸고, 4달러짜리 도미노 피자를 한 판 씩 먹었다. 몰래 주차한 차에서 자다가 경찰에게 걸려 쫓겨나기도 하고, 온몸에 벌레 때문에 간지러워도 은하수를 보며 길바닥에 놓은 에어 매트리스 위에서 잠들곤 했다. 그렇게 살았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만나고, 헤어지고. 떠나고, 멈추고. 의 반복.


나는 사정상(꽤 위생 관념이 없어서 렌즈를 수돗물로 씻어 끼다가 눈에 박테리아를 얻어 실명할 뻔한 사정) 반강제적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100만 원이 넘는 브라질행 환불불가 티켓과, 어쭙잖지만 공부하던 포르투갈어 사전을 들고서. 공항철도를 타고 집으로 오는 순간,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무채색이었다.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온 나에게 12월 31일의 차가운 한국의 공기는 현실이었다. 큼지막한 백팩을 매고, 쪼리와 코끼리 바지를 입은 채 사람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을 느끼던 나는, 꽤나 무서워졌다. 빈대로 돌아가버리는 것과, 반대로 빈대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나는 공항철도에서 차가운 새해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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