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성희
구교환 배우를 한창 좋아할 때 평이 극악무도했던 영화
늘 보고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던 영화
넷플릭스에서 추천하는 영화라면서 메인에 올려줬길래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올해 마지막 영화로 이런 걸 볼 순 없어! 라는 생각으로 이 뒤에 두 편 더 봤다.
<남매의집>이라는 제목답게 반지하집에 남매가 살고 있다. 모종의 이유로 세상은 위험해졌고 아버지는 나가서 돌아오질 않았다. 아무도 집에 들이지 마라, 순이 잘 챙겨라, 빨간펜 숙제 해라. 같은 말만 남기시고. 비현실적인 라디오 음성 또한 기이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한 몫 했다. 쌀도 떨어져가고 아빠는 오지 않는 상황에서, 화장실 작은 창문으로 낯선 사람의 운동화를 보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정확히는 그 사람이 집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시작된다. 낯선 사람은 전래동화 <해와 달>의 호랑이처럼 문 밖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한다. 배달 음식이 왔다는 거짓말로 시작했지만 통하지 않자 물 한 잔만 달라고 불쌍한 척을 한다. 물만 먹고 간다는 말과 다르게 집 안으로 들어와서 소파에 자리 잡는 '라오우', 그리고 뒤따라 들어오는 두 명의 남자. 그들의 외관은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자극한다. 동남아 계열의 외국인 노동자, 어딘가 불쾌한 느낌의 남자(근데 이놈은 실제로 불쾌한데), 화상 흔적 같은 게 안면에 있는 대머리. 인종차별 멈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라오우'의 외관은 정말이지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인권에 대한 인식이 밑바닥일 때 "사장님 나빠요"라며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 희화화의 전형이라서 정말이지... 여기까지 생각하고 다시 스스로의 편견을 들여다보며 혼낼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튼 '어쩐지 기분 나쁜' 남자 셋이 반지하집에 멋대로 침입한다. 아빠가 집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였거늘.
누가봐도 아동성범죄자인 놈이 하나 있고 아무래도 분노조절장애(비하x 합리적 의심o)인 것 같은 놈이 하나 있고 '라오우'는 친절한 척 하면서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런데 연필로 썼다 지웠다 한 빨간펜 학습지 가득 볼펜으로 써버린 것 보면 제일 나쁜 놈인 건 확실했다. 그들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 되지 않았고 5살 순이에게 노골적으로 성희롱인 발언을 하는 연출은 연출로 받아들이기엔 그 선이 아슬아슬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짧은 순간동안 여러 추측이 들었다. '해부가 된 걸까?', '복제품 같은 건가?', '시간선이 뒤바뀌었나?' 그 추측들을 단숨에 덮는 김빠지는 마지막 대사가 이 영화의 킥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내내 긴장감을 느꼈지만 문을 열고 둘이 마주보고 걸어들어오는 그 짧은 장면이 가장 긴장되고 인상깊었다.
불쾌하고 찝찝한 영화, 그럼에도 인상적인 영화였다. 장면에 담기지 않는 소리들이 있다. 아빠로부터의 전화, 사이비종교 같은 라디오 방송과 TV음성,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 같은 것들이 관객의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세상이 망했다는 시놉시스를 두고 어떻게 망했는지, 왜 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사실 보여지는 거라면 아무 일도 없었다. 맹구도 여전히 맹구고, 남매도 여전히 남매다. 되돌아오지 못하는 건 볼펜으로 적어버린 빨간펜 학습지 정도. 그럼에도 영화는 관객들의 상상력을 쿡쿡 찔러가며 최악을 그리게 만든다. 아빠가 어떻게 되었는지, 침입자들은 누구였는지, 그들의 윗분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어디서 뭘 하는지, 세상이 왜 망했는지, 어떻게 망했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생존자는 얼마나 되는지, 사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고 아이들만 갇혀있는 건 아닌지, 등등. 그런 상상을 했다. 남매의집은 여전히 남매의집으로 남아있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