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항준
장항준 감독은 이제 감독보단 예능인으로서의 명성이 더 높다. '김은희 남편'이라는 셀링포인트를 스스로 잡고 자칭 "부모 사랑 많이 받고 와이프 잘 나가고 걱정할 것 하나 없는 팔자"를 드높이며 사는, 꽤 부러운 인생이다. 전작인 <리바운드>에서도 큰 여운은 남지 않았다. 그냥 생각보다 잘 만든 청춘 성장 영화 정도의 감상으로, 장항준이 입만 산 사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네이버 웹툰 <가비지 타임>의 선풍적인 인기로 내 친구들은 더러 본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장항준 감독은 큰 인상을 남기는 영화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배우 덕을 봤다고 하더라도 <왕과 사는 남자>만큼은 오, 장항준 제법인데?라는 인상이 대중들에게 박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영화 전체적 만듦새에 대한 판단을 하기엔 애매하다. 초반부에 유해진, 박지환, 안재홍 배우가 나오는 부분의 씬은 특히 개그스러움을 과하게 넣어서 지루해졌다. 유해진 특유의 억척스러운 연기와 박지환의 휘둘리는 롤이 만나서 뻔한 그림이 된다. 그 사이에 있는 유지태의 한명회는 오히려 너무 무게를 잡아서 밸런스 맞추기도 실패하고 만다. 개인적으로 재미를 느꼈던 건 이홍위가 광천골 사람들에게 마음을 연 이후였던 것 같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결말을 알면서도 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후반부에 광천골 사람들 비중이 소멸되다시피 하면서 아쉬움 +1이 되었다.) 다만 중간에 등장한 금성대군의 존재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준혁 배우가 너무 현대물 페이스라서 그럴지도... 카리스마가 부족한 건지 연기력이 부족한 건지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금성대군의 등장은 필수적이고 물론 금성대군을 빼라는 말은 아닌데 차라리 금성대군과 이홍위의 관계성을 조금 더 설명해줬으면 나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대한민국에서 의무교육을 마친 한국인이면 대체로 잘 알고 있는 부분이겠지만. 전반적으로 하고싶은 이야기도, 해야할 이야기도 많은데 초장에 퍼트린 애매한 개그 욕심으로 밀집도가 떨어져버린 감이 있다.
그럼에도! 영화관을 나와서 내내 여운이 남아서 마음이 힘들었다. 최근 본 영화들이 죄다 용두사미였는데 <왕과 사는 남자>는 사두용미라고나 할까. 이홍위가 눈에 총기를 찾을 시점부터 한명회의 무게감이 더 이상 튀지 않았다. 태산 곤장 씬에서 죽을 때까지 치라고 반복할 때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좋아하는 배우라서 많은 작품을 봤고, 예능 등의 컨텐츠 나오는 걸 보면서도 유지태 배우에 대고 풍체가 좋다는 감상을 느낀 적이 몇 없는데 유지태 배우가 연기하는 한명회는 원래 저렇게 커다란 사람이었나 싶을만큼 스크린을 채우는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건 박지훈 배우의 연기력이다. 나는 아직도 박지훈이 내 마음속에 저.장♡하던 앳된 얼굴이 생생한데 그 앳된 얼굴이 버석버석해져서 눈에 총기도 잃고 후반에는 범의 눈이 되어 조선의 왕이라는 걸 상기시켜준다. 유해진, 유지태, 전미도 연기 잘 하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 사이에서 연기력 부족하면 튈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감 없이 주인공으로서 영화를 끌고가는 부분에서 감탄을 금치 못 했다. 박지훈 씨 프듀 나오고 데뷔해서 연기 시작하고 이홍위까지 맡아줘서 정말 감사해요... 후반부의 강가 씬에서 유해진은 배우 유해진이 아닌 엄흥도 그 자체가 되어 관객도 그 감정에 동화시킨다. 대체로 한국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될 감초 역할이고, 비슷한 톤을 연기해서 (유해진 배우가 아니라 배우를 쓰는 감독들의 상상력 부족 탓이라고 본다.) 겹쳐보일 법도 한데 매번 새롭게 그 캐릭터가 되어버린다는 게 정말 대단하고 소중한 배우다. 대체될 수 없는 이홍위와 엄흥도였고, 캐스팅 또한 감독의 역량이기에 영화 전반에 걸친 모든 아쉬움이 캐스팅으로 대부분 상쇄되었다고 본다.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이야기에 녹아들게끔 디렉팅하는 것까지 영화 전반에 걸쳐서 꽤 큰 파이를 차지하는 영역이다. 연출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다. 내가 느끼기에 촌스럽다고 여겨진 부분들이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전 연령대가 받아들이기 쉽게 연출되었다고 칭찬을 한다. 이토록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느끼는 바가 다른데 이 작품의 배우 캐스팅과 디렉팅에 있어서 장항준 감독의 실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이미 등장인물 소개 자체가 스포일러가 된다.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요즘 같은 고자극 도파민 추구 숏폼 시대에 정통 사극이 먹혀들기는 더욱 어렵다. 하루종일 박지훈의 이홍위를 생각하면서 수많은 '그렇긴 해'의 수용과 납득을 거치니 꽤 괜찮은 영화라는 감상이 남는다. 초중반까지 보면서 기억해두려고 한 대사와 아쉬웠던 장면들이 대부분 휘발될만큼 후반의 여운이 강렬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명회네이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