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Y를 기리며

by YW

처음 눈물이 난 건, Y의 부고 소식을 들은 지 16일째 되던 날이었다. 미국에서 오래 공부를 하고, 결혼해서 아들까지 낳아 잘 살던 Y에게 갑작스럽게 그런 사고가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그냥 다음과 같은 마음이었달까. '와. 정말 그럴 줄 몰랐다. 너무 안타깝다. 돌도 안 된 어린 아들이 너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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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와는 꽤나 친했다. 가끔 한국에 들어오면 연락해서 잠시라도 만났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였다. Y의 부고 소식에도, 공부하고, 일하고, 밥 먹고, 잠도 자는 내가 너무 나쁘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다. 15일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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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이와 놀고 있었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놓고 어찌나 첨벙거리는지, 주말 육아에 지친 나는 화장실 입구에 걸터앉아 첨벙거리는 아이의 뒷모습을 물끄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돌도 안 된 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Y가 생각나, 깊은 슬픔에 빠져 10분이 넘도록 엉엉 울었다. 나는 괜찮은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15일 동안 받아들이지 않고 있던 현실이, Y의 죽음이 이제 나의 현실 세계로 침투,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의 장례가 한국에서도 있을 예정이었고, 나는 그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므로, 이제 Y의 죽음은 나의 현실로 성큼 다가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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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묘했다. 아직 Y가 죽지 않았는데,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고, 마치 꼭 그 장례식 날짜에 맞추어 Y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번 소용돌이친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그 16일째 되는 날부터는 계속 펑펑 울었다가, 추억에 젖어 웃었다가, 훌쩍거렸다가, 피식 웃었다가, 했던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찾아온 A형 독감 확진 판정에 몸져누웠는데, 내가 독감에 걸려 아픈 것마저도 Y에게 미안했다. 너는 죽었는데 나는 겨우 독감 따위나 앓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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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청주에서 있었다. 나는 Y의 영정 사진을 보고 울어버릴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너무 심하게 우는 것은 유가족분들께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판단 미스였다. 청주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점차 무거워졌고, 청주 IC로 빠지라는 도로 안내판을 보자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운전이 어려울 만큼 심하게 슬펐고, 울고, 또 울었다. 어째서, Y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주차하고 차에서 한 번, 1층 화장실에서 한 번, 3층 화장실에서 한 번, 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또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며 '울지 말자' 다짐했던 순간들이었다. 첫 번째 절을 하고, 올라오며 그의 사진을 보았다. 검은 띠가 둘러진 Y의 얼굴이 보였고,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내 등을 토닥이는 Y의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졌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자리를 잡고 앉아 Y와의 추억을 되뇌이며 시간을 보내다 집에 갈 생각이었다. 혼자서 계속 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Y의 누나가 내 앞에 앉았다. 그 지친, 담담한 얼굴을 마주하고도 나는 계속 울었다. 위로를 받았다. 와줘서 고맙다고 했고, 나는 울었다. 가끔씩 Y를 생각해 달라고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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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식장을 빠져나와 Y의 영정사진이 보이는 먼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기억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20대의 앳된 얼굴이 아니라, 미국에서 교수 임용이 될 때 썼을 듯한 증명사진 같은, 내가 모르는 Y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Y를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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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온통 n수생 형, 누나들 밖에 없던 동기 모임에서 거의 유일하게 동갑내기였던 너와 나. 그래서 선배들이 우리를 "후배다운 후배"라며 좀 귀여워했던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처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했을 때 너의 당황하는 표정이 생각났다.
대학교 4학년 때,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나 임용시험 5일 전이었는데, B와 함께 술에 취해 새벽 4시에 들어와서는, 나보고 술 한잔 하자며 깨우고 ㅋㅋㅋ 진상 부리던 것도 생각났다.
GRE 보고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친구들 여럿이랑 다 같이 만나서 놀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예전만큼 체력이 안 따라주는지, 하나씩 둘씩 집에 가버렸다. 당시 경기도에 거주하던 내가 괜히 집에 안 간다고 하는 바람에, 너도 집에 가기 미안했던지, 같이 심야영화도 보고 밤새 놀았다. 그때 네가 찍어준 뒷모습이 참 잘 나와서 한 동안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었었는데, 옷을 잘 버리지 않는 내 성격 탓에, 그 옷이 나에게 아직도 있다. 덕분에 너를 조금 더 자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박사 공부하러 대학원을 가기로 마음먹고, 너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며 한국에 있는 다른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12월 8일. 너의 생일이다. 내 주변에 12월 8일생이 셋, 이나 있는 바람에 그 날짜가 참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래서 나는 사실 매년 12월 8일이 되면 그 셋 중 가장 친한 너를 떠올렸던 것 같다. 오늘도, 네가 태어난 지 정확히 38년이 된 2025년 12월 8일에도 너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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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누나가 말한 것처럼 살면서 중간중간 Y를 기억하고, 추억하고자 한다. 돌도 안 된 어린 아이, 청주라는 도시, 지리산, 축구, 평생교육, 인적자원개발, 독일어, 심야영화... 같은 뜬금없는 단서들이 살면서 Y를 떠올리게 할 것 같다. 한동안은 그것이 나를 슬프게, 눈물 나게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Y가 항상 말하던, '특별한 꿈은 없고 그냥 놀고 싶다'는 꿈, 거기서 편안하게 이루었길. 키는 작았지만, 배울 점이 많았고, 항상 밝고 건강했던, 작은 거인 Y를 기리며. 너의 생일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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