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과 의도
나는 종일 환자들의 술, 담배, 운동, 체중 증가, 그리고 약 복용에 대해서 의논한다.
이들은 그동안 자신이 했던 노력과 앞으로 실행할지도 모를 운동, 금주, 금연, 다이어트에 대해서 포부와 자신감을 앞세워 나를 설득하려 한다. 고혈압, 고지혈증 등 만성 성인병이 생기는 분들은 진단을 받기 훨씬 전에 이미 알고, 술, 담배, 운동, 비만에 대해서 귀 따갑게 듣는다. 나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 할 수 있다면, 하세요. 하지만, 얼마나 쉬울지 모르겠네요. 정 그러시면, 계획대로 하시고 잘 안되면 다시 오세요."
내가 반대하면 할수록 더욱 내 의견에 대항하려 하지만, 내가 물러서면 내 말을 듣기도 한다.
생활습관 계선. 이것만큼 낭비되는 말이 또 있나 싶다. 습관을 고치겠다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오다니. 습관을 고친다는 말이 나에게는 희망고문 같다.
나는 습관에 대해서 말하고, 이 분들은 자신의 의도에 대해서 말한다. 습관은 의도가 아니다. 습관은 의도를 넘어선, 의도 밑에 숨은 그 무엇이다.
의도는 거짓일 가능성이 있지만, 습관은 거짓이 불가하다. 내가 술을 안 좋아하는데, 매일 술 마시는 습관을 가질 수는 없다. 내가 술을 좋아하지만, 금주하려는 의도를 가질 수는 있다.
의도는 무언가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라면, 습관은 현실이다. 대체로 자신의 현실은 인정하지 못하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명확한 경우가 많다. 지향하는 목표가 명확할수록, 의도는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 지향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면 지향할 필요가 없다.
내가 이미 운동을 하고 있다면, 운동을 하려는 목표를 가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운동이 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며, 이미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거창하고 좀 현실감이 떨어질수록, 현실이 초라한 이유는 지향하는 목표의 크기는 대체로 현실과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거창한 대의명분은 가끔 현실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목표를 이루는 첫발은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초라한 모습이 나의 모습이다. 겉으로 얼마나 성공했거나 얼마나 가졌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면 초라한 구석이 있긴 마찬가지다. 겉모습의 성공은 노력보다는 행운(환경, 시대 등)에 좌우되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이 보통사람과 뭔가 달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내면은 겉보기 성공과 상관없이 언제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오늘 일어나서 세수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다시 자신의 허물과 성공 사이에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