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이 짧으면 짐이 간단할까?
오히려 짧은 여정일수록 다양한 사진을 남기고 싶은 욕심에 옷도 여유 있게 넣고 필요한 아이템들을 주섬주섬 넣다 보면 어느새 커다란 캐리어가 가득이다. 간단하게 작은 캐리어 한 개 밀며 우아하게 가고 싶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늘 간단할 수가 없다. 여행을 자주 가면 가방 싸는 것도 점점 쉬워질 것 같지만 가방 싸는 게 항상 최대 난관이다. 미루고 미루다가 출발 당일에서야 간신히 캐리어 뚜껑을 닫는다.
짐 패킹 필수템
쪼리: 기내, 호텔 수영장 오갈 때, 슬리퍼 없는 객실 내에서도 유용
화장품&세면도구: 다 쓰고 버리고 올 수 있는 작은 용량 여러 개로 구성해서 버리고 짐 줄이기
구급약: 타이레놀, 해열제, 지사제 등 여러 가지 챙겨가지만 역시 더운 나라 필수템은 방수밴드!
usb 4핀 들이 멀티 플러그 1개와 3종 핸드폰 충전 케이블이면 온 가족 핸드폰 및 카메라, 와이파이 공유기 충전 안심
기내용 가방: 볼펜, 마스크, 이어폰, 핸드폰 충전 케이블 및 보조배터리, 넷플릭스 다운로드 영상들, 세안용품/미스트/마스크팩, 집업 후드
2019년의 마지막 날
별일 없이 지내도 분주한 12월 31일이다.
올해가 가기 전 꼭 봐야 하는 동생과 점심을 먹고 집에 오니 벌써 아이들 하교 시간이다. 1시 50분에 마치는 아이들을 빠르게 차에 태워 집 근처 공항버스 정류장에 가방과 같이 내려놓고 집에 차를 두고 혼자서 뛰어가서 2시 8분 버스를 타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2시가 다 되어도 아이들에게서 연락이 없자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차를 몰고 학교로 가서 아이들을 태우고 집에 오니 이미 2시가 넘었다. 그런데 이미 이런 스케줄에 단단히 단련이 된 아이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캐리어를 한 개씩 맡아 밀면서 달리기 시작한다. 맘속으로 슬며시 포기하고 느슨하게 주차하던 나는 저만치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차 키를 현관에 놓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좀 전에 먹은 점심이 목구멍까지 거슬러 올라오는 게 느껴질 때마다 차가운 공기를 연신 크게 삼키기를 반복하며 정신없이 달렸다. 한참을 달려가 봐도 아이들이 이미 내 시야에서 사라진 걸 보니 승산이 보였다. 간신히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시간을 확인해 보니 무려 1분이 남은 2시 7분이다. 여유 있게 캐리어를 줄 세우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으니 멀리 버스가 보였다.
모든 게 순탄한 이 출발을 어쩔 거냐며... 지금껏 닥쳤던 수많은 위기상황 속에 강하게 단련된 내 딸들이 어찌나 기특하고 대견하던지... 이제 아이들이 앞장서면 엄마는 저만치 뒤로 처져도 이끌어주겠구나 싶은 마음에 아주 뿌듯하고 벅찬 감동으로 버스를 맞이했다. 버스 옆구리에 트렁크 문이 열리고 기사님이 우리 캐리어를 실으려고 잡으려는 찰나! 큰 딸이 수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뭔가 이상 기운을 감지했지만 슬쩍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다.
"엄마, 내 크로스백이 없어요!!!"
애써 침착하게 잘 찾아보라고 웃으며 얘기하고 기사님께 캐리어를 건네드리는데 이미 큰 딸은 난리가 났다. 현관에 놓고 왔다는데 분명 차 키를 두려고 현관에 가서 둘러봤을 때 놓고 온 게 없는 걸 확인한 터라 가져왔을 거라고 안심시키는데도 아이는 이미 버스 탈 마음을 접었다. 외할머니께서 그저께 주신 5달러가 그 가방에 들어 있어서 꼭 가져가야 한단다. 그 정거장에 승객이라고는 우리 셋 밖에 없는데 우리가 머뭇거리자 난처한 듯한 기사님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돈을 줄게. 일단 타고 가자." 했더니
"내가 필요한 거 다 넣어놓은 가방이라 없으면 안돼요"
라며 결코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거 놓치면 3시 35분 버스라 우리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해. 그냥 타고 가면 안될까?"
더 이상 기사님이 기다려주실 것 같지 않아 간절히 얘기해봤는데 역시나 소용이 없다.
결국 그렇게 버스를 보내버렸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던 순간, 모든 게 원점이 되어 버렸다.
큰 딸은 자신이 맡았던 큰 캐리어를 다시 밀면서 집으로 가기 시작했고 둘째 딸은 내 기분을 살피며 옆에서 조용히 작은 캐리어를 밀며 나와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별일 없다는 듯 캐리어를 밀고 가는 큰 딸에게 갑자기 서운함이 밀려와서 얼른 가서 찾으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씩씩거리며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한 시간 반을 집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버스를 타러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공항에서도 빠듯할 것 같고... 집 근처 번화가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가면 배차간격이 짧아서 금방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걸으면서 핸드폰으로 카카오 택시를 불렀는데 인근에 택시가 없어 한참 검색을 하다가 10분 후 도착하는 한 대를 잡을 수 있었다. 먼저 집에 도착한 큰 딸은 현관에 가방이 없자 뭔가 생각난 듯 차키를 가지고 가더니 아까 내렸던 뒷좌석에서 가방을 찾아왔다. 생각해보니 아침 등굣길에 여행용 크로스백을 가지고 가는 것 같아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는데 역시나 그때 놓고 가라고 할 걸... 늘 찝찝함은 여운을 남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택시가 도착을 했다. 버스 기사님께 버스 도착 시간을 슬쩍 내비치며 살짝 푸시를 하며 티맵 소요시간에 맞게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고 약 2분 후인 예정 도착시간에 맞춰 버스가 왔다. 그렇게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우리가 놓쳤던 버스와 비슷한 시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만난 난관
12월 31일 공항은 예상보다 무척이나 한산했다. 항공사 데스크에 가서 캐리어를 맡기고 외투 보관소에 가서 롱 패딩을 맡기고 환전소로 갔다. 국적기에 일정이 짧다 보니 외투보관도 무료라 감사해하며 가볍게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은행 갈 일이 없어 한동안 지갑에 무겁게 넣고 다니던 100만 원 수표를 이참에 정리하고자 마음먹고 챙겨갔다. 일부는 환전하고 남은 돈은 ATM으로 통장에 입금할 야무진 계획이었다. 그런데... 환전소에서는 타 은행 수표를 사용할 수 없단다. 환전하려면 수표금액 전체를 환전해야 한단다. 여행지에 큰돈인 수표를 가져가는 것도 부담이라 ATM으로 통장에 입금할랬더니 타행수표는 입금도 안된다. 인천공항에는 KB가 없다...ㅠ 미리 환전한 금액은 10만 원 조금 넘는 액수고 가져온 현금은 고작 10만 원인데... 조금 더 환전해야 안심할 것 같은데... 3층에 입점한 환전소들 모두 수표는 안된단다. 체크카드도 없어 현금 출금도 안되는데... 혹시 나하고 당일 환전을 찾아보다가 삼성 페이에 은행계좌를 등록했던 게 생각났다. ATM에 가서 삼성 페이로 출금을 선택하고 핸드폰 NFC를 갖다 대니 20만 원이 바로 나온다. 당일 출금한도가 20만 원이라 더는 인출 못했지만 그만큼도 충분히 감사했다. 참 좋은 세상이다...ㅠ 그렇게 30만 원을 추가 환전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출국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라운지의 행복
입장비에 비해 먹을 것도 누릴 것도 딱히 없지만 딸들에게는 라운지가 최고의 공간이다. 마침 아이들 오락 공간 맞은편에 위치한 L라운지에서 40프로 할인행사를 하고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어느새 만 10세를 넘긴 큰 딸은 성인요금이다...ㅠ 새로운 라운지에 와 본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설렘 그 자체... 근처 점핑 공간에 가서 놀다가 다시 들어오기에 딱 좋은 위치다. 비행기에서 볼 넥플리스 영상을 다운로드하고 오는 길에 인도받은 면세품을 소소히 정리하면서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12월 31일, 평소보다 몇 배로 밀리는 길을 뚫고 드디어 남편이 공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도 주섬주섬 짐을 챙겨 탑승구로 향했다.
밤 9시 30분 출발이라 미리 양가 부모님들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이번 달 신용카드 실적이 다 충족되었는지 점검하고 올해 가기 전에 해야 할 게 또 남은 게 있나 곰곰이 둘러보다 보니 비행기가 서서히 이륙을 준비한다. 나머지 고민들은 비행기 모드로 덮어버리고 방콕으로 출발이다.
마지막 키즈밀을 설렘과 애정으로 맞이하고 있는 큰 딸 보신각 종 대신 방콕 불꽃놀이
현지 시각 00시 10분에 도착하는 비행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선물 받았다. 자정이 되어 착륙에 가까워지자 방콕 시내가 내려다 보이더니 곳곳에서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기장님의 Happy New Year 인사 외에는 별다를 게 없는 비행기 안이지만 밤하늘 수많은 불꽃으로 환영받은 방콕, 첫인상만큼이나 여정이 즐거울 것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