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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다 Kdiversity May 09. 2024

구성원들이 다양한 리더 유형을 경험하게 해 줄 책임

'키자니아'라는 곳이 있다. 어린이들이 다양한 직업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테마파크이다. 소방관, 경찰, 승무원, 수의사, TV앵커, 패션모델 , 햄버거 요리사, 항만 엔지니어, 고생물학자, 은행원, 달걀 농장 경영인까지 160여 개에 이르는 직업을 소개한다. (공식 홈페이지 소개 기준)


아이들이 알고 있는, 알게 되는 직업의 범위란 부모님 또는 끽해야 친척들의 직업까지일텐데, 그 세계를 넓혀주는 이 경험은 매우 귀할 것이다. 이런 '일'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아이들의 천지차이이므로. 그들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일상의 범위가 넓어질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꿈꿀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게 될 것이므로.




비단 자라나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다 큰 성인에게도 다양한 세계의 경험은 필요하다, 경험의 확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직장생활 약 10년차 만에 처음으로 여자 팀장님을 만나면서부터다.


지금까지 내가 모신 팀장님들과의 2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작고 사소하긴 해도, 내게는 굉장히 크게 느껴졌기에 말해보고자 한다.


1) 밥을 천천히 드신다. & 걸음이 느리시다.

남초회사 인턴으로 입사한 첫 날 점심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밥이 국에 다 말아져서 나오는 하동관을 갔는데, 정말 내가 딱 3숟갈째를 뜨려고 할 때 모든 식사가 끝나있었다. 이후 정식 채용되어 공장에 발령 받은 이후에도 그들의 식사 속도는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나는 이제는 누구보다 밥을 빠르게 먹고, 심지어 상대에 맞춰 밥 먹는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여러 회사를 다니고 다양한 팀장님들을 만나게 되면서 국밥 외에 '미식을 즐기는 남자 팀장님'은 종종 뵈었지만, 밥을 천천히 드시는 분은 거의 뵙지를 못했다. 딱 한 분 계셨지만, 그분도 상대적으로 팀 내 다른 남자분들에 비해 느린 것이었지, 절대적인 속도가 느리진 않았다.


걸음걸이도 이 식사와 마찬가지다. 남자 분들은 키가 커서 보폭이 큰 건지, 걸음이 정말 빨랐다. 나도 성격이 어지간히 급하기 때문에 이건 맞추기 어렵지 않았다. 아무튼 이런 '빠름빠름'의 세계에 살다가, 식사하는 속도도 걷는 속도도 느린 여자 팀장님과 업무를 함께 하게 되자, 뭔가 다른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한 기시감도 들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아무 문제 없네?' 싶은.



2) 일하는 현장과 삶의 현장이 섞여있다.

프로젝트 방향성 논의로 한창 열을 올리다가 팀장님께서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하신다.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저녁으로 피자를 시켜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고객 미팅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신다. "영어단어 재시험이라고? 괜찮아, 재재시험만 아니면 되지. 이번엔 5개 말고 4개만 틀려봐." 팀장님께서는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으신 적이 없다.


내가 지금까지 남초회사 숱하게 보던 풍경들과는 조금 다르다. 과거 회사의 그녀들(워킹맘들)은 자기 자리에서 전화를 받는 법이 없었다. 그녀들은 늘 화장실에 있었고, 그곳에서 휴대폰을 붙잡고 아침에는 숙제와 준비물을 챙겼으며, 점심에는 아이를 봐주시는 어머니/시어머니께 연신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녀들은 분리되어 있었다. 본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들키려 하지 않았고, 본인들이 지나가고 있는 삶의 구간을 내색하려 하지 않았다. 자랑스럽게 보여주거나 떠벌릴 필요까지는 없어도, 그렇게 숨길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지만... 그랬다. 그냥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돌이켜보면 이건 워킹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인 나의 직속선배는 조부모님 상을 당했지만, 그 와중에도 상갓집에서 팀장님/실장님의 전화를 받으며 임단협 숫자를 계산하고 설명해 드렸다. 다른 팀 남자 선배는 첫 아이가 태어났지만, 며칠 되지도 않는 출산휴가를 다 쓰지 못한 채 돌아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고객 미팅에 임했고, 시즌이라는 이유로 연이어 야근을 했다. 그게 미덕이었다. 그냥 당연했다.


그렇게 일하는 현장과 삶의 현장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곳에서 수 년간 일하다가, 둘이 blur되어 있는 현장에 들어오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갑자기 팀장님이, 함께하는 팀원들이 '사람'으로 보인다. '일하는 사람' 말고, 그냥 사람. 각자의 가정과 인생을 갖고 있는, 회사는 그 중 일부분일 것만 같은 '사람'들.




내가 만난 여자 팀장님이 뭘 특별히 한 것은 없다. 본인이 뭘 보여주려고 한 것도 없고, 강조하려고 한 것도 없다. 어떤 환경을 조성하고자 애쓴 것도 없다. 그렇지만 그녀가 그녀의 존재 하나만으로 내게 열어준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모든 여자 리더가, 모든 워킹맘 리더가 다 그렇다는 식으로 또 퉁치고 싶지는 않다. 입체적인 개인을 납작하게 축소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만난 팀장님이 그랬을 뿐이다. 그분이 그랬을 뿐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존재'란 얼마나 특별한가. 그 특별한 존재로 인해 넓어진 내가 또 다른 동료들에게, 후배들에게 보여줄 세계는 또 얼마나 넓어지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기업은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유형의 리더를 경험하게 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책임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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