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수술

by Dr Jang

날이 밝았다.

어제부터 금식이니 먹는 것도 없었다.

아침 일찍 수술방으로 가는 줄 알았는 데 11시가 넘어서 수술실로 간다고 한다.

짐을 주섬주섬 쌌다.

병실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정상적으로 여기에서 회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짐이라고 해봐야 캐리어 하나에 가방 하나,

노트북을 켜고 앉았다. 둘째 방과 후 프로그램 신청을 위해서였다.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과정을 꼭 신청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뭔가 좀 우습지만 병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방과 후 학교 수강 신청을 했다. 다행히 선착순 안에 신청을 마쳤다.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다.


시간이 다가오자 아내는 눈물을 보였다. 마음이 착잡하기는 매 한 가지이겠지만 본인은 더 할 것이다. 다만 그 복잡한 속내를 미뤄 짐작할 뿐이다.

드디어 운송팀 직원분이 오셨다. 이동식 침대에 몸을 눕히니 바로 이동하였다.

사무적인 이동 과정이었다. 이송팀 직원이야 늘 이런 일이 있으니 그들에게는 이것도 일상이다.


수술실 앞에서 인사를 하라고 했다.


손을 잡고 인사를 하려는 데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자칫 아내의 정상적인 의식과 마지막 만남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스쳤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 데 좀 늦었다. 사진의 결과물은 좀 흔들렸다. 저 멀리 아내가 수술실로 사라져 갔다.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자 이내 할 일이 없어졌다.


병동에 올라가 짐을 가지고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뭔가 할 일이 없어진 느낌이다.


약간은 공허함이 들었다. 그러다 순간 수술실에서 힘든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아내 생각이 났다.

수술자 명단을 나타내는 화면에 아내 이름이 가운데 글자가 ○로 되어 올라왔다. 개인정보 때문일 것이다. 수술 시작 시각이 12시 33분이었다. 들어간 지 약 1시간 후에 이름이 올라왔다.

짐을 자물쇠로 묶어 두고 병원 여기저기를 다녔다. 앞으로 약 2주간 생활할 곳이니 탐색 겸 걸어 다녔다.

사실, 불안감을 없애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점심으로 빵을 하나 먹었다.

시간은 참 더디면서도 속절없이 흘러갔다.

다니는 것도 지루하고 힘도 들어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자 하나둘씩 수술자 명단에서 환자들이 병실 혹은 중환자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보호자들도 자리가 복잡을 정도도 있었는데 어느새 몇 명 남지 않았다.

문득 저 사람들은 어떤 병으로 저렇게 수술을 오래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종의 동지의식이 느껴졌다.

수술 전 담당 의사 선생님이 수술은 약 10시간 정도라고 했는 데 시계를 보니 어느새 밤 10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텅 빈 보호자 대기실만큼이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수술 중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혈관을 잇는다는 게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혈관은 내가 알기로도 여러 층으로 되어 있을 것이고 더욱이 뇌혈관은 크기가 매우 작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른 변수가 생긴다면,,,,어쨌든 생각의 연속은 불안함만 증가시켰다.

알 수 없는 지루함과 무료함,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불안함이 몸속 맴돌았다.


차라리 혈관 내 시술을 하고 만약 실패를 한다면 수술을 할 것을 그랬나?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선택의 동전은 이미 던져졌지만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불안함에 더욱 증폭되었다.

밤 10시를 넘기니 아내와 비슷한 시간에 수술에 들어간 환자 1명과 아내 두 명만이 수술방에 있었다. 불안함과 긴장감에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르고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 들락날락했다.

11시 30분쯤이 되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얼른 받아보니 어제 동의서를 받아간 의사 선생님이었다.

CT를 찍어야 하는 데 우선 구두로 보호자 동의를 받는다고 하였다.


얼른 동의를 하고 수술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수술이 좀 시간 오래 걸렸지만 잘 되었다고 했다.

순간 남들이 보면 크게 변화가 없는 표정과 말투였겠지만 아, 얼마나 기다리던 소리였는가, 마음속으로는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다. 아까는 긴장감에 누군가 다리를 툭치면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정반대의 느낌이다. 살면서 이렇게 마음 졸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잘 될 거라 생각했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게 만약이라는 단어가 있어 늘 반전이 있지 않는가? 이번에는 그런 만약이 생각하기도 싫은 단어였다.


아내와 비슷하게 수술방에 들어간 환자의 집도의가 보호자를 찾았다. 그런데 보호자 대기실에는 나 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한참 전부터 보호자는 나 밖에 없었다. 분명 수술방의 환자는 둘인데 말이다.

나의 급한 일이 조금은 안심이 되니 저쪽 사정도 궁금해졌다.

몇 번 보호자를 찾는 소리에 “보호자가 여기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조금 있으니 모자로 보이는 세 사람이 등장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수술방 대기실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서로 잘 몰랐던 점을 탓하며 앉았다. 아무도 없던 대기실에 그래도 사람이 있으니 좀 덜 무서웠다. 텅 빈 대기실은 어두운 곳 없이 밝은 불빛으로 눈이 부실 정도였지만 혼자는 역시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사람은 혼자 있지는 못하는 존재인 것 같다.

조금 있으니 아까 보호자를 찾았던 의사가 다시 나왔다.


수술 결과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는 데 대기실이 조용하다 보니 또렷이 의사의 설명이 들렸다. 여러 번 뇌경색이 왔던 모양이었는 데 이번이 처음 수술은 아닌 모양이었다. 의사는 혈관을 우회하여 혈액 흐름을 관찰했으나 곧 그 흐름이 멈췄다고 하였다. 그래서 뇌를 들어 올려 살펴보았고 결론적으로는 무슨 유전적 질환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들도 검사를 받을 것을 권유했다. 자상한 설명이었다. 저체온 치료를 위해 체온을 떨어뜨린다고 하면서 보호자가 할 일은 없으니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했다.

어디서 잘 것인지,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을 하며 그들은 사라졌다.


결국, 또 혼자 남았다.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좀 더 기다리니 의사가 나를 찾았다.


보호자 대기실에 한 명 밖에 없으니 그냥 자연스럽게 수술방 앞으로 갔다.

의사의 표정은 뭔가 모르게 뿌듯함이 드러났다.

마스크 너머로 말이다.

그는 딱 내가 듣고 싶던 말을 했다.


“수술은 성공했고 곧 CT 찍고 중환자실로 이동할 겁니다.”


다행이었다. 그 노력을 하고 가슴을 졸이면서 기다린 이유는 바로 이 말을 듣기 위해서였다.

의사는 혈관 문합술을 하고 스텐트 팀이 스텐트를 넣어 문제가 되는 혈관을 폐쇄하려고 하니 혈관의 상태나 모양이 시술하기 어려워 자신이 직접 혈관을 절개하여 혈관 내의 혈전과 기타 물질을 다 제거하고 정리했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이 좀 더 걸렸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오히려 좀 더 근원적인 완치라고 의사는 말했다. 아무래도 스텐트로 혈관을 폐쇄하면 일말의 찜찜함이 있었을 거라 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수술 담당 의사가 위대해 보였다. 의사가 그렇게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의사는 수술방으로 다시 들어가고 CT를 찍으러 이동하는 아내를 기다렸다. 한참 있으니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에 수동 호흡기를 입에 문 아내 모습이 나타났다. 언뜻 보아도 여기저기 피가 묻은 모습이 보였다. 의식은 없었다. 의사 두 명이 아내를 밀로 1층 CT실로 이동했다. 좀 있으니 다시 아내가 올라왔다. 벌써 끝났나 싶었는 데 수술한 쪽에 링거를 맞고 있지 않아 그 반대쪽에 다시 혈관을 잡아야 한단다. 조영제를 넣기 위해서는 수술한 쪽 정맥혈관을 잡아야 하는 것 같았는데 공교롭게 그렇지 않아 다시 올라온 것이다.

좀 있으니 수액을 반대쪽에 다시 잡고 아내의 침대가 나왔다.

CT를 찍고 올라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내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시간을 보니 새벽 1시가 훌쩍 넘었다.


아주,


긴 하루가 끝났다.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수고했어요. 마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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