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일을 생각하면 인생의 가장 쫄깃한 순간이었다.
집도의와 수술실 앞에서 이야기할 때 까딱하면 무릎을 꿇고 울뻔했다.
겨우 중환자 보호실로 내려왔다.
중환자 보호실은 지하 3층,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있었다.
중환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방 안에서 사람들은 모두들 매우 조심해서 움직인다.
내려오면서 가만히 보니 지상의 화려한 병원의 모습과는 다르게 지하로 내려올수록 시설은 소박해지고 약간은 낡고 답답한 느낌이었다. 늘 보이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의 자기 중심성이 반영된 것 같았다. 자신의 중심에는 좋은 것만 두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고 더구나 중환자 보호자라는 것은 움츠러들고 힘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건물의 가장 아래에 두었을 것이라 짐작해 봤다. 지하로 올수록 인간 사회의 하층민이 사는 것 같았다.
한숨 눈을 붙이고 눈을 떴는데 전화가 왔다. 환자가 상태가 괜찮으면 오후 4시경에 집중치료실로 올라간다고 한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큰 수술을 받았음에도 결과가 예상보다 좋았다. 병실에 올라가면 그래도 환자와 보호자만의 공간이 있으니 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사정이 나아지다 보니 여기저기 주의 사항(예를 들면 조용히 해야 한다는 등)이 곳곳에 붙여져 있는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의 무거운 분위기는 부담스러웠다. 조용히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오후가 되어서 집중치료실로 올라왔다.
의식 있는 아내를 어제 수술실로 보낸 지 28시간 만에 만났다. 새벽에 볼 때보다는 모습이 약간은 나아졌다. 수술 부위도 붕대가 칭칭 감아져 있지는 않았다. 패드를 대고 머리 전체를 망으로 씌웠다. 온갖 약물이 주렁주렁 정맥으로 들어가고 있었지만 다행히 미리 신청한 진통제를 맞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구토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온 옆 침대 환자는 이 약물을 주입했는지 구토를 하고 힘들어했다. 너무 힘들지 않으면 하지 않기로 맘을 먹었다.
아내는 의식도 명료하고 몸 상태도 괜찮았다. 다만 오랫동안 한 자세로 수술을 받다 보니 등과 엉덩이 쪽에 욕창이 생겼다. 마치 화상 자국 같았는데 중환자실에서 피부보호제와 패드를 붙여두었다. 통증이 있었고 한동안 아파했다.
오후 6시에 물 50cc를 먹었다.
중환자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내에게 물어봤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눈을 떠보니 시계가 10시를 조금 넘었다고 한다. 아내는 일단 의식은 있군,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손과 발을 움직여 봤다. 사지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자 목소리를 내 봤다. 아, 아, 이런 소리에 옆에 있던 간호사가 어머? 깨어나셨어요?라고 물었다고 했다. 거기에 간호사는 다시 여기 어디예요? 몇 시인가요? 등등 뇌신경 관련 환자들에게 묻는 여러 질문을 했다고 한다. 유쾌한 경험이었다. 결과가 좋으니까 말이다.
소식이 궁금한 지인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과가 좋으니 이야기도 신났다. 약간은 영웅담 같은 느낌의 대화였다.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기분 좋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통화를 하고 오는 길에 데스크에서 차트를 쓰고 있는 집도의와 눈이 마주쳤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긴가민가 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마침 잘 만났다고 하면서 자신이 보던 화면을 보여주며 수술 상황을 설명했다. 마치 의학 다큐를 보는 듯한 영상이 나왔고 집도의의 동의를 얻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수술 결과와 환자 상태가 좋으니 둘 다 기분이 좋았다. 농담으로 집도의에게 논문을 쓰려면 논문에 이니셜을 넣어 달라고 했다. 그도 흔쾌히 논문을 쓸 거라고 했다.
수액이 빨리 들어가고 있어 궁금해하던 차에 상태를 확인하러 온 주치의(집도의 말고 상태를 관리해 주는 담당의) 말로는 시간당 200cc 정도의 수액으로 피의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고 했다. 만약 과하면 뇌출혈이 생기고 적으면 뇌경색이 오기 때문에 소변 양 체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직은 소변줄(일명 폴리)을 하고 있으니 소변 팩에 차는 양을 확인하고 기록했다. 수액이 들어가는 속도가 빠르니 금방 주머니가 채워졌다. 그래도 입력되는 양과 나오는 양의 비율이 맞으니 양호한 것 같았다.
간호사가 내일 CT를 찍는다고 저녁을 금식해야 한다고 했다. 상태 확인의 목적이었다. 아직까지는 영양팩 같은 것을 맞고 있어 허기가 지지는 않아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자기 전에 수혈을 한 팩 받았다. 아무래도 출혈이 꽤 있었던 것 같았다. 아내에게는 여러 수액 줄과 함께 산소공급 콧줄과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기 위한 손가락 집게가 끼워져 있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줄 정리가 우선이었다.
피곤하지만 기분 좋은 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났다.
아내가 일어나는 기척이 있더니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대변 문제였다. 소변은 어떻게 소변줄(폴리)을 끼워 두었으니 괜찮았는 데 대변은 다른 문제였다. 아직 걸어 다니라는 확인도 못 받았는 데 이 새벽에, 불과 24시간 전에 수술을 받았던 사람이 걸어서 대변을 봐야 한다는 게 판단하기 어려운 난관이었다. 새벽이라 뭐라 하기도 그렇고 과감하게 대변을 보러 함께 갔다. 조마조마했지만, 이제는 대변도 같이 보는 사이라고 서로 농담하며 무사히 일을 치렀다. 다행이었다.
새벽에도 소변이 마려워 두 시간 정도 간격으로 수액줄을 주렁주렁 달고 소변 양을 체크하는 나름 힘든 활동을 한동안 해야 했다. 그래도 이만큼 잘 되었다는 게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