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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어느 무직자의 하루

by 이종범


퇴직자의 하루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알람이 울려도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할 필요가 없고, 바쁘게 회의를 준비하거나 쏟아지는 이메일을 확인할 일도 없다. 처음에는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이 반갑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전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1. 여유로운 아침, 허전한 시작


출근하던 시절에는 알람이 울리면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늦잠을 자도 되고 여유롭게 일어나도 된다.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창밖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 퇴직 후 바뀐 일상을 실감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무슨 까닭인지 불편한 생각이 자리한다


"이제 나는 어디에 속해 있지?"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자, 예상치 못한 공허함이 밀려온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즐거웠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하루가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다. 덩달아 허전함도 깊어진다.


2.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게 된다. 운동을 해볼까, 책을 읽을까, 동네 산책은 어떨까?

생각은 많은데, 정작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퇴직 전에는 회사에서 주어진 일정에 따라 움직였지만, 이제는 스스로 하루를 계획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목표가 없으니 의욕이 생길 리도 없지 않은가?


TV를 켠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아침 뉴스, 드라마 재방송,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니 말이다. 식사 후에는 피곤함이 몰려오고, 소파에 기대어 한숨 돌리다 보면 또 하루가 기울어진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도 괜찮을까?"


걱정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딱히 대안도 없다


3. 사라진 사회적 관계


퇴직 전에는 점심시간마다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하루의 활력이 되곤 했다. 하지만 퇴직 후에는 그런 자리가 사라졌다. 어떤 땐 그런 자리가 그립기도 하다. 그렇다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밥 먹자. 술 먹자 불러낼 수도 없다.


혼자 식사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듯한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일이 힘들어도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버텼지만, 이제는 대화할 상대가 많지 않다. 가끔 친구들에게 연락해 볼까 생각하지만, 각자 자신의 삶이 바쁜 것 같아 망설이게 된다.


4. 작지만 변화가 필요한 일상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작은 것부터 변화를 주어야 한다. 산책이 가장 쉬운 선택지다. 예전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공원이 이젠 새롭게 다가온다


무엇을 배우면 좋을까? 어떤 취미가 좋을까? 애꾸진 구글 검색만 늘어간다.

독서 모임은 어떨까? 온라인 강의를 들어볼까?

생각은 많은데 늘 거기까지다. 의미 있는 일상을 보내려면 하루라도 빨리 저질러야 하는데...


5. 새로운 길이 있긴 할까?


퇴직은 끝이 아니라는데, 새로운 시작도 처음에는 혼란스럽고 막막할 수 있지만, 그래도 계속하면 익숙해질 텐데... 시작이 반이란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퇴직 후의 삶은 누구에게나 처음 겪는 낯선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을 어떻게 채워갈지는 내가 선택할 몫이다. 알면서도 선뜻 나서질 못한다.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게 다르다는 말은 이런 나를 두고 한 말이란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당신은 퇴직 후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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