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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n Jun 14. 2024

깨달음의 밤, 나의 연인에게

불행 끝 행복 혹은 모든 행복의 순간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쓰다가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어 올리는 글


한 달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고 이력서를 쓰다가

오랜만에 비도 오지 않는데 에어컨 청소를 하려고 배달을 쉬었어.에어컨 청소를 하고, 안방까지 터널을 달고, 식탁을 정리하고, 밥도 하고 앉아 유튜브도 봤어. 어찌보면 쉰 건 아니었어. 취업은 언제하지 한참을 고민했으니 말야.


에어컨 청소를 하다 문득 신나는 노래가 듣고 싶어 2015년 내가 많이 들은 노래 차트를 재생해봤어.

당시 유행하던 노래, 우울한 노래가 반이더라.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참 중요시하는데 그 맘때가 이별 직후이기도 했고

대학교 2학년때였지.


그러다가 든 생각이 '나는 10년 전에도 참 많이 힘들었구나' 싶더라.

지금도 많이 힘들지. 금전적으로도, 취업도 안되고.

그런데 있잖아 우리 작년도 힘들었더라. 작년에 이직을 4번이나 하고

회생을 시작하고, 왕복 5시간 거리의 회사도 다니고, 계약 강제 종료로 해고도 당했고.

자기도 갑작스레 부서를 바꿔야 했지. 집에 누수도 3번 이상이나 터지고, 간간히 우리 고양이들도 아프고.

더 생각을 해보니 21년도, 22년도 마찬가지로 힘들었던 거 같아.


3년, 5년, 10년, 15년 전에도 하다못해 20년 전에도 우린 어떠한 이유로 매일 힘들고 고민이었겠지.

하다 못해 요즘은 너무 다 힘드니 우울증에 허덕이며 툭하면 죽고싶던 매일이 그립기도 해.

적어도 돈은 쓸 수 있었고 차도 있었지, 이러면서 말이야.


우리의 남은 인생은 더 힘들겠지?


지금의 2배는 더 살아야 하는데 참 절망적이게도 말이야. 그 때도 우린 그러겠지.

아, 차라리 2024년이 나았는데.




책상 정리를 하다가 얼마전 법원에 가 발행받은 내 출생 신고서를 정리하다가 찾았어.

아빠의 글씨체로 쓰여진 내가 태어난 4일 후의 출생신고서.

우리 엄마 아빠는 너무 행복했을거야. 그런데 그 아이가 20년 후에 스스로 죽으려고 한다는 걸 알았을까?

그 아이가 본인들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들을 가져올 수도 있따는 걸 알았을까?


내가 전 어떤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며 이 사람이 내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연애가 끝나고 나의 우울증이 시작될거라는 걸 알았을까?

내 단짝의 고백으로 시작된 나의 모든 퀴어 라이프가 내 우울증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을까?

그리고 나와 엄마 아빠, 내가 그 불행들을 알고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우린 그 모든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하지 않고 싶은 선택들도 있지만, 나는 다 같은 선택을 할 거 같아.

그 선택 속에서 나는 지금 행복을 얻은 거니까.

그 전애인과 연애에서 얻은 내 인간관계의 문제점.

우울증을 겪으며 보았던 것들

그리고 퀴어 라이프와 엿같은 전애인을 거쳐 만난 너라는 사람.

우리 엄마 아빠는 20년간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행복을 기억했겠지.


우리의 힘든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는 내게 다가온 너처럼 행복의 씨앗이 될거야.그게 크지 않다 하더라도, 어떤 결말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순간 작은 행복의 씨앗을 뿌린거지.

내가 장난처럼 네게 이야기하잖아.

어떤 드라마의 대사처럼 내 모든 불행이 너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모든 불행을 받아들일거라고.

우리가 후에 어떠한 미래를 갖게 될지는 모르고

가정하는 것조차 싫은 말이지만, 설사 우리가 서로의 곁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때 언젠가 있을 작은 행복의 시작이 오늘일지도 몰라.


우리는 어제도 저번달도 작년도 몇 년 전도 힘들었고, 불행했고, 처절했지.

내일도 모레도 한 달 후도 n년 후도 우린 여전히 힘들고 불행하고 처절할거야.

나이가 들며 지금보다 덜 건강하고 더 아프겠지.

환경 오염으로 매년 기온이 올라가고

정치인들은 매일같이 개같은 소리를 할거야.


그럼에도 하루는 가고 한 달은 가고 10년이 갈거야.

그리고 그런 불행 속에서도 우리에게 사소한 행복은 찾아올거야.

길에서 천원을 줍고, 같이 게임을 하다 다시는 못 볼 우리만의 팀플레이를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고

웃긴 우리 고양이들 사진을 찍고


그런 사소한 행복이 모이고 시간이 흐르면


대한민국에서도 괜찮은 정치인이 당선되고

우리가 법적인 부부로 인정 받고

환경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우리는 그 수많은 불행하고 힘들고 처절한 모든 순간들을
사소한 행복이라고 생각하자.


대체 왜 사는거야? 라고 맨날 묻는 내게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라는 너의 말처럼

우리는 그냥 사는거야.

불행하게도, 행복하게도.


나는 매일 불행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라 치열한 내일이 다시 되고 시간이 흐르면

지금 나의 모든 감정을 잊을거야.

그럼 그 땐 내 행복인 네가 내게 말해줘.


불행 끝에 네가 날 기다리고 있었듯 지금의 불행이 언젠가는 나의 행복으로 피어날거라고.

유튜브에서 보고, 어느 노래 제목처럼 도로 옆에 핀 꽃도,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도 꽃을 피웠다고.

우리가 뿌린 행복이 불행이 되어도 그건 행복이었고,

우리가 뿌린 수많은 불행 100개 중 1개는 행복이 될 거라고.

우린 그 하나의 행복이면 살아가는 게 충분하다고.


정말 웃긴 게 방금 생각났어.

내 인생 불행의 시작이었던 전 애인의 생일이 바로 오늘이야.

그 전 애인은 6월 13일에 태어나 자라서 내게 불행을 주었지만

2024년 6월 13일인 오늘은 네가 옆에 있고 깨달음을 얻어서

행복이 되었어.


그렇게 삶은 알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인가봐.

불행 끝 찾아온 행복인지, 항상 행복했는데 불행만 바라본 나였는지 생각하게 되는

2024년 6월 13일 오후 11시 09분


- 나 역시 너의 행복이길 바라는 N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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