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생인 안내서 (連生人 案內書)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기관, 기업, 지명, 사건 배경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음악과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1. 연생인(連生人)이란?
연생인은 무속신인 당금애기가 담당하는 무속인을 지칭한다. 신점을 봐 미래를 점지하는 다른 무속인과는 다르게, 연생인은 의뢰인(손님)이 전생에 지은 업장을 없애는 일, 즉 과거를 관장한다.
연생인의 피를 가진 이는 스무 살 이후에 개전이 가능하다(개전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4번 항목에).
2. 업장을 없애는 이유는 무엇인가?
업장은 현생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인간이 쏜 화살이 아주 느린 속도로 지구를 한 바퀴 돈다. 화살이 지구를 도는 동안, 그는 죽고 윤회한다. 다시 태어난 그의 뒤통수에 그가 쏜 화살이 꽂힌다. 즉, 업장이란 전생에 본인이 저지른 일이 현생의 본인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3. 연생인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의뢰인이 지금 겪는 고통은 전생에 저질렀던 업보 때문이다(물론 업장 없이 현생에서 고통받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이 경우 연생인이 아닌 다른 무속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연생인은 의뢰인의 전생으로 가 의뢰인이 악업을 짓지 못하게 저지한다. 이 행위를 개전(改前)이라 칭한다. 악업을 저지하는 행위는 오직 설득뿐인데, 이때 의뢰인의 전생에게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발설해서는 안 된다. 만약 발설하게 되면 시간의 축이 뒤틀리게 되고 전생과 현생, 내생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그로 인해 연생인은 전생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
4. 개전(改前)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의뢰인과 연생인(혹은 연생인과 조수)이 성지에 지어진 사당으로 들어가 의식을 치른다. 여기서 의식이란, 사당에 놓인 방석에 앉아 연옥을 미간에 붙이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개전하는 인물이 둘(연생인과 의뢰인)일 경우 서로 마주 보고 앉고, 셋(연생인과 조수, 의뢰인)일 경우 바닥에 그려진 정삼각형 각 꼭짓점 위치에 앉는다. 넷(연생인과 조수, 의뢰인 두 명)일 경우 바닥에 그려진 정사각형 각 꼭짓점 위치에 앉는다.
의식을 시작하면 의뢰인의 업장이 시작되었던 전생으로 가게 된다. 연생인은 의뢰인의 전생을 찾아내는 게 첫 번째 임무이고, 7일 안에 업장을 짓지 못하게 저지하는 것이 두 번째 임무이다. 만약 7일 안에 업장을 저지하지 못했을 경우, 자동으로 현생으로 복귀하게 된다. 업장은 소멸하지 않는다. 7일 안에 업장을 소멸했을 경우, 미간에 연옥을 다시 붙이면 현생으로 돌아오게 된다. 전생에서 얻은 찰과상, 타박상 등은 현생으로 돌아와도 그래도 남아있다. 전생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면, 현생에서도 목숨을 잃게 된다.
5. 연옥이란 무엇인가?
연옥은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옥(玉), 즉 벽(璧)을 일컫는다.
예시. ◎
다만 일반적인 벽(璧)과는 다르게, 연옥은 당금애기의 기운이 깃든 벽(璧)이다. 연옥 사용법에 대해 알아보자.
사당 안에서 연생인은 비취색의 연옥을 미간에, 의뢰인은 붉은색의 연옥을 미간에 붙인다. 의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연생인은 의뢰인의 전생으로 가게 된다(이때 의뢰인은 자신이 전생으로 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의뢰인의 전생과 가까워질수록 연생인이 지닌 연옥이 빛을 내기 시작하고, 의뢰인의 전생과 마주했을 때 연옥은 진동한다. 연옥은 의뢰인의 전생을 찾는 도구이다. 연생인은 전생에서도 연옥을 지니게 되는데, 연생인이 아닌 이(조수)는 이 연옥을 지니지 않는다.
6. 연생인이 아닌 사람, 즉 비연생인은 개전을 할 수 있는가?
단독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연생인과 함께라면 가능하다. 실례로 꽤 많은 연생인들이 조수와 함께 개전을 하기도 했다. 명종 2년서부터 경상도 지역에서 연생인으로 활동했던 차연심은 그녀의 노비였던 솔개와 함께 개전을 하였다. 솔개는 그녀의 조수다.
7. 비연생인은 연생인이 될 수 없나?
가능하다. 연생인이 되기 위해선 세 번의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시험을 치르기 전, 연생인이 비 연생인을 당금애기에게 데려가 심성을 평가받아야 한다. 평가에서 통과하면 시험을 치를 자격을 받는다. 그 후 시험이 치러지는데, 시험 과제는 의뢰인의 업장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조수는 혼자서는 개전을 행할 수 없으므로 연생인과 함께 시험을 치른다. 세 번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다면 연생인이 된다. 연생인은 성별의 제약이 없다(물론 연생인이 되지 않고 조수로만 활약하는 이들도 있다).
8. 연생인의 분류.
일반 연생인과 담당 연생인으로 나뉜다. 담당 연생인은 도(道)를 담당하게 되는데 만약 후임을 정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그 지역의 토지신이 된다. 연생인이 죽더라도 그의 후임 혹은 자손이 3개월 안에 그 지역 연생인이 되는 시험을 통과한다면, 윤회하여 내생에 다시 연생인이 된다.
죽은 연생인은 후임 연생인이 나타나기 전 3개월 동안은 이승과 저승 사이 삼도천에서 머물게 된다. 3개월이 지나도 후임 연생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삼도천에 머물렀던 전담 연생인의 혼이 이승으로 다시 내려와 토지신이 된다. 연생인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조수는 후임 연생인 시험을 치를 수 없다.
9. 담당 연생인이 되는 시험은 무엇인가?
담당 연생인이 되는 시험 또한 연생인이 되기 위한 시험과 같다. 당금애기에게 가 전담 연생인이 될 시험을 치르겠다고 고지하면 된다. 이때 치르는 시험 역시 조수를 대동할 수 있다. 총 세 번의 시험을 치르는데, 의뢰인의 업장 소멸이 과제이다. 세 번의 업장 소멸을 마친다면 시험에 통과해 전임 연생인과 면담을 하는데, 만약 전임 전담 연생인이 사망했다면 삼도천에 있는 마천루에서 면담하게 된다. 면담의 목적은 지혜 계승이다. 면담뿐만이 아니라 그간 쌓아왔던 개전 경험과 지식을 대물림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경험은 전임 연생인의 개전 경험을, 지식은 주로 연생인 안내서에 기재되지 못한 지엽적인 것들을 얻게 된다.
10. 연생인은 꼭 연생인의 삶을 살아야하는가?
당금애기에게 가 연생인 자격을 반납하면 된다. 불이익은 없다. 보통의 삶을 살 수 있는 아주,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김선자 이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