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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Feb 13. 2021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글. 차승민 씀.

“이 책을 읽으면서 차쌤이 생각나더라고요. 이유는 묻지 마시고 한번 읽어보세요”


지인에게 받는 책 소개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보통 다른 이에게 책을 권한다는 건 알게 모르게 그의 지적 수준도 나타나기 때문이죠. 

도대체 책 속에 어떤 모습이 있기에 추천해준 것인지 궁금해하며 책을 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평소 글쓰기에 관한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의구심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도 들었습니다.

우치다 다쓰루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는 14회에 걸친 그의 마지막 고별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글쓰기를 주제로 했다고 해서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것은 없습니다. 만약 그런 내용이 필요한 책을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하진 않겠습니다.

먼저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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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말과 글의 영역에서 사랑이란? 

제2강 하루키가 문학의 ‘광맥’과 만난 순간 

제3강 전자책을 읽는 방식과 소녀만화를 읽는 방식 

제4강 시인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을까? 

제5강 아직 쓰이지 않은 글이 나를 이끈다 

제6강 세계문학, 하루키는 되고 료타로는 안 되는 이유 

제7강 계층적인 사회와 언어 

제8강 어째서 프랑스 철학자는 글을 어렵게 쓸까? 

제9강 가장 강한 메시지는 ‘자기 앞으로 온’ 메시지다 

제10강 살아남기 위한 언어 능력과 글쓰기 

제11강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하여 

제12강 창조성은 불균형에서 나온다 

제13강 기성의 언어와 새로운 언어 

제14강 ‘전해지는 말’ 그리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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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글로 옮긴 책의 특징상 현장감을 살릴 순 있지만, 현장에 없던 독자는 오히려 그 현장감이 이질감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거기다 우치다 다쓰루 선생이 든 사례는 일본의 고유한 문학가나 문장을 예시로 들기 때문에 집중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펜을 들고 책 속에 나와 있는 보석 같은 구절에 줄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느낌입니다.


전 과거에 사진에 관심을 가질 무렵 사진 기법을 배우기 위해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쁘고 멋있게 찍을 수 있는지, 그런 편집은 어떻게 하는지 단계와 순서를 제시한 책들을 만났지만 뭔가 이질감이 들었습니다.

사진을 왜 찍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책의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화각], [조리개]. [노출] 등 사진의 중요한 기능을 중심으로 풀어나간 책을 발견하곤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역시 그런 느낌을 줍니다.

책에서 받은 중요한 감흥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글을 쓰고 있을 때 ‘지금 쓰고 있는 글자’가 이제부터 쓸 글자를 데려온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제부터 쓸 글자'가 '지금 쓰고 있는 글자'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p102


- 초반의 혼란은 이 문장을 접하면서 저자의 내공에 감탄했습니다.

글을 쓰면 글이 날아다닙니다. 글은 쓰면서 글 자체의 생명력을 가집니다. 쓰는 사람의 의도와 글 자체의 생명력이 충돌하면 글은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이 됩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어렵다고 하죠. 저자는 그 비유를 ’바늘구멍에 실이 움찔움찔 접근하는 ‘시간의 흐름’에 비유했습니다.

트라우마는 ‘적절하게 언어화할 수 없다’는 무능력 자체가 인격의 근원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는 경험을 말합니다. 트라우마를 언어화할 수 있는 사람은 ‘트라우마를 끌어안은 사람’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 p116-117

언어는 가장 알기 쉬운 교양입니다. 


-중략-


언어는 단적으로 소속 계층을 나타냅니다. -p144


-평소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단어와 언어 사용에 힘을 기울입니다. ‘말은 곧 인격이다’인 평소 저의 지론을 책에서 발견하니 기뻤습니다. 


일본에서는 ‘학문의 질’과는 별도로 ‘학문의 앎을 얼마나 널리 공유할 수 있는가’를 문제 삼습니다. -p149


- 평소 저의 생각과 일치했습니다. 앎을 삶으로 다시 삶을 앎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글쓰기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과 현실적으로 일체화하기 불가능합니다. 가능한 것은 동화일 뿐입니다. 하지만 가상적으로 동일화만 하면 어떤  전능감이 찾아옵니다. 이 대가를 바라고 인간은 반복적으로 동일화를 추구합니다. 


-중략-


금방 타자와 동일화할 수 있는 인간을 우리는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타인의 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p242


- 어른이 무엇인가? 선생은 무엇인가? 저자의 깊은 내공이 글쓰기란 소재로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개성은 일단 자아가 발달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자아의 기초를 마련하지 못하면 개성이고 뭐고 없습니다. -p 245


- 평소 기초와 기본 교육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저의 모습이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현대 일본인의 언어적 빈곤함은 ‘바깥으로’ 향하는 자기 초월의 긴장감을 잃어버린 결과라고 봅니다.- p264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와 우쓰다 다쓰루 선생의 대화입니다.


“난 일본 아이들을 상정하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던 작품의 비결을 묻는 우쓰다 선생의 질문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 대답입니다. 책에선 그가 어떤 뉘앙스로 이런 말을 했는지가 흥미롭게 나옵니다.

한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있었지만, 그 의미의 해석이 조금 다른 결로 읽힐 때 느끼는 쾌감이 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며칠은 서평을 어떻게 쓸지 고민했습니다. 

책 속에 글 쓰는 방법은 나와 있지 않으나, 서평을 쓰는 순간부터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을 하게 하더군요.

그 고민의 종류와 질이 이전보다 훨씬 정교해진 느낌입니다. 

담금질이 아주 잘되어 단단하고 날이 잘 선 명검을 글로 읽은 느낌입니다. 


#실천교사서평단

#북적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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