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규 씀
1,300도의 뜨거운 불에서 태어난 눈부신 바다
어느 날, 풍물 전수관에서 만나 친해진 후배에게서 택배가 왔다. 풀어보니 책이다. 그것도 웹툰을 엮은 만화책.
정형적이지 않은 표지 제목 글자체와 <마음을 담은 그릇>이라는 서정적인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서툰 듯하면서도 순수해 보이는 그림체도 좋았다.
한 편에 도자기 하나씩 소개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다 읽더라도 도자기에 대한 지식은 별로 늘지 않는다. 다만, 도자기를 비롯하여 내 주변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사물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이다. 사랑은 관심에서 시작한다. 어쩌면 두 단어는 같은 뿌리에서 갈려 나온 두 가지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작가가 고고미술사학과 학부생 시절에 네이버 웹툰의 아마추어 코너인 <나도 만화가>에 연재했던 웹툰을 묶은 것이다. 책은 절판됐지만 아직도 네이버 웹툰에서 이 만화를 볼 수 있다. 나는 확실히 이 만화를 통해 도자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었다. 작가는 도자기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도자기를 보면서 떠오르는 감상이나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본래 일상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에서 출발한 도기와 자기는 점차 조형미를 갖추고 아름다운 색깔과 광택을 더해갔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해지면서 생활 용품과 예술품을 넘나드는 그릇이 됐다.
모든 그릇이 비어 있으므로 가치를 얻듯, 이 만화도 비어 있다. 거기에 나는 어떤 마음을 담을 것인가. 서툰 만화 솜씨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한국 도자기를 공부하는 고고미술사학과 학생이라는 작가의 이력을 보고 기대했던 전문 지식이 나오지 않아 실망할 수도 있겠다.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실제 그런 내용이 나온다. 작가가 우연히 마주친 전공 교수님에게 도자기를 소재로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하니 <만화>라는 갈래를 탐탁해하지 않았다는 내용. 진지한 태도의 모습이 꼭 어떠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랑을 드러내는 방식이 한 가지가 아닌 것처럼.
이 만화를 보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릇 같은 나 자신과 학생들을 떠올린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진로도 정해야 하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다그치고 있진 않았나 스스로 돌아본다. 어른들이 답을 정해 놓고 이야기하는 한 아이들은 절대로 자기를 온전하게 드러내 보이지 않을 것인데도 나는, 우리 기성세대는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가. <큰 그릇은 천천히 완성된다.>는 문장을 다 알고 있으면서 자신만의 방식과 모습으로 천천히 만들어지고 있는 그 아이를 혹시 내가 서툴고 성급하여 기다려 주지 못한 것은 아닌가.
똥을 퍼 나르던 장군도 시간을 견뎌내면 문화재가 된다. 나도, 아이들도, 사람은 다 그런 것이 아닐까. 백자를 이리저리 살피던 선비가 아, 너는 난초를 품고 있구나 하며 난초를 그려 넣어 '청화백자 난초무늬 각병'이 만들어진다. 그림을 그려준 이의 예술성이 뛰어나기도 했었겠지만 시작은 관심과 관찰이었을 테다. 우리의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시작도 마땅히 같을 것이다.
연재되던 웹툰은 아직 남아 있지만 책은 절판되어 중고로만 구할 수 있다. 책으로 만들면서 추가한 부분들이 있으니 가볍게 보려면 웹툰을 무료로 보면 되고 책으로 읽고 소장하고 싶으면 정가의 1/5 가격 이하로 중고를 구하면 된다.
<도자기: 마음을 담은 그릇>을 나는 <사람: 마음을 담은 그릇>으로 읽었다. 이가 조금 나가고 깨지고 대수롭지 않은 용도로 쓰이던 도자기라도 거기에 담긴 마음을 볼 줄 아는 선생이고 싶다.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