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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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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Feb 22. 2022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김현규 씀

최시한/모두 아름다운 아이들/문학과지성사/2008

  1996년에 출간된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청소년 성장소설로 2008년 개정판이 나왔다. 스토리와 문장을 섬세하게 다듬었고 다른 연작과 달리 <섬에서 지낸 여름>은 일기체가 아니었는데 이번에 일기체로 다듬어 총 다섯 편의 일기체 연작소설로 완성했다.


  이 소설은 청소년들의 욕망과 시선, 우정, 애정, 고독, 삶에 대한 성찰 등을 모두 다섯 편의 연작으로 그려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구름 그림자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반성문을 쓰는 시간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섬에서 지낸 여름

작가의 말


  이 가운데 <구름 그림자>나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은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과서를 가르쳐 본 교사들이라면 모두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작품일 것이다. 꼭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아니더라도 1990년대 전교조 문제를 학교 현장의 시각에서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잘 알려진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읽어 본 교사들 또한 많을 것이다. 사춘기 자아의 고뇌, 현실에 대해 알아가는 사춘기 소년들의 정신적 성장과 <허생전>을 해석하는 두 가지 관점을 통한 삶과 사회 읽기를 시간의 순차적으로 구성하여 보여 준다. 1992년 문예중앙을 통해 발표된 단편 소설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문학 작품의 의미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읽는 사람의 능동적인 참여에 의해서 재구성된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사실을 정작 1990년에는 물론 요즘도 우리 입시 제도가 부정하고 있다. 문학 작품을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해석한 학생은 수능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려고 하면 학생이든 교사든 간에 '유별나고 불만 많은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글을 짓는 건 수업이 아니고 교과서의 글을 읽어 외우는 것만이 수업인 질서.
아니오는 대답이 아니고 예만이 대답인 질서.
그런 질서들의 질서. 그런 질서의 질서의 질서

- <구름 그림자> 중에서


  학교 수업 시간에 교사는 학생들에게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가르친다. 무비판적으로 정답만 암기하는 것보다 문제의식을 갖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태도를 권장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식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그런 식으로 공부해서는 쉽게 통과하기 어려운, 명확한 정답과 매혹적인 함정 문항으로 무장한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그러니 학교는 보수적이고 순응적인 교사가 이끄는 주입식 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교사도 학생도 <허생전을 읽는 시간>에 나오는 '왜냐 선생님'처럼 파고들 여유가 없다.


  교육 과정과 수업, 평가, 기록(이른바 교수평기)은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 안에서 그 일관성을 확보하려고 애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최대한 노력한다. 그런데 수능을 평가로 본다면 정상적인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과 수업과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날로 복잡해져 가는 세상은 사람들에게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요구하는데 정작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거치는 대학을 가기 위한 수능 시험에서는 그런 태도가 별로 쓸모없다. 그렇게 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갈 수 없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이 된 학생이 정작 중학교 1학년 수학을 잘 모른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 이미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배웠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 다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앞서가고 싶다는 욕망, 앞서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실은 모든 걸 망치고 있는 거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교육은 1990년대 초와 같은 모순된 요구를 여전히 받고 있는 셈이다. 기성세대와 교육 당국은 학교에게 능동적이고 비판적이며 창의적인 인재인데 사회화가 잘 되어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모범생을 길러내라고 요구한다. 일종의 블랙 코미디다. 비유하자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청소년은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성찰하고 성장한다. 그야말로 고군분투가 아닐 수 없다. 기성세대는 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청소년들 입장에서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탈선과 방황은 누구에게, 어디를 향한, 무엇을 위한 절박한 송신인가? 작가는 개정판 '작가의 말'을 통해 '성장하려는 청소년'과 '모순적 환경의 사회'가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짚으며, 그러나 그 대립 과정에서의 성찰과 모색을 통해 청소년들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음을 재차 강조한다.

                                                                                                     - <출판사 서평> 중에서


  성장하려는 자는 모순 속에 있다. 그는 환경의 자식이지만, 환경을 극복하고자 한다. 환경은 그에게 어머니인 동시에 적이다. 그의 방황은, 모순의 구체적인 모습과 내면의 꿈을 드러낸다. 성장은 바로 그것들의 성찰과 모색에서 비롯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교육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30년 간 정말 많이 바뀌었다. 지원되는 예산 규모도 커졌고 유입되는 교사의 질적 수준도 높아졌다. 세상이 요구하는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교육 당국과 교사들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것들이 여전히 그대로다. 교사의 정치권은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다. 세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는 정작 시민권조차 제한당하고 있다. 정치적 견해를 학교 밖에서조차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교원단체법 시행령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학생 자치, 교사 자치는 실현되지 않았다. 교육은 여전히 교육 외적 논리에 이리저리 휩쓸린다.


  '왜냐 선생'이 학교에서 쫓겨날 때 유일하게 침묵시위를 했던 윤수가 한 이 말은 왜 우리의 아름다운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사라질 수밖에 없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 말에 동의하지만 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저렇게 말하는 우리의 아름다운 아이들에게 기성세대와 교육은 뭐라고 응답해야 할까?


우, 우, 우리는 마, 마라톤 선수, 선수가 아닙니다.
모, 모두 승리, 승리하면 누가, 패, 패배합니까?

-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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