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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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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Feb 20. 2022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철학이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

구소희 씀

  2월 중순 경,  몇 시간 거리의 지역으로 새 학년을 준비하는 교사 연수 진행을 하러 갔다.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용산으로, 용산에서 KTX 타고  다시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는 여정이었다. 긴 여정의 거의 마지막 단계, 전철에서 버스를 갈아타려고 정류장에 도착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다음 버스는 29분 후에나 온다고 했다. 얼른 택시를 잡았다. 


  “○○ 초등학교로 가주세요.”


  “지금 방학인데 초등학교에는 왜 가세요?”


  “선생님들 새 학기 준비하시느라 공부하시는데 같이 하러 갑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갑자기 작금의 교육 현실을 개탄하며 이것은 모두 ○○○ 소속 교사들이 교육을 망쳐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율도 높아졌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며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분노한다. 본인은 60년대에 서울 사립대에서 기계 공학과를 3년 동안 다녔다고 했다. 동창 중에는 교장 출신이 여럿 있지만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 그들보다 공부를 훨씬 더 잘했다고 자랑한다. 또 갑자기 여자들이 모두 일을 하러 나가서 자녀를 돌보지 않아 아이들이 이 모양이라고 하기도 했다. 


  택시비 5,400원의 거리를 가는 동안 쉬지 않고 여러 이야기를 쏟아내었으나 모두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줄인다. 그의 결론은 ‘000 소속 교사들이 교육을 버려 놓았다.’는 것과 ‘여자들이 자기 욕심 때문에 일을 하러 나가서 가정교육을 망쳤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신박한 정리이지 않은가?


결국 인생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프랑스 사상가 모리스 리즐링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이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까지 한다. 7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도 13살의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는 사고방식이 놀라웠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길. 이것은 비단 특정 세대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학교 성적이나 출신 학교로 사람을 계급화하여 바라보는 천박한 시도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세대 불문하고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나 자신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살아가며 접하는 수많은 현상들을 그렇게 체계화한 근거는 무엇일까? 삶에서 철학에 대한 내용은 접하지만 철학하는 방식은 접하지 못해서이기 때문은 아닐까? 여러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지식이 사실과 정보라면 지혜는 세상살이의 길잡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일까 지혜일까? 단편적인 지식이 이미 수명을 거의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지식에 목말라한다. 그러나 이 지식을 얻는 방식도 스마트폰, 유튜브 등의 호흡이 짧은 매체들에 의존하고 있다.  


  지식과 지혜가, 교육과 학습을 같은 개념으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놀랍다. 그러나 이 때문에 검색만 하면 1초도 안 되어 나오는 지식에 현혹되어 우리는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주는 지혜를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술은 ‘맛집까지 가는 길’을 가는 작은 질문에는 탁월하지만 ‘공공선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등의 삶에서 정작 필요한 커다란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철학과 철학하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지혜는 늘 필요하다.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지혜가 다르다. 
철학은 각 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고,
루소처럼 걷고
소로처럼 볼 수 있을까?


  출판사에서 만든 책 소개 카드 뉴스의 문구이다. 철학은 한가한 자들의 생각 유희가 아니다. 철학은 매우 실용적이다. 저자는 철학은 내용 자체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며 그렇기에 철학은 스파보다 헬스장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그럼 이제 헬스장처럼 철학하기를 단련시키는 책과 만나보자.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들어가는 말: 출발

1부 새벽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3 루소처럼 걷는 법
4 소로처럼 보는 법
5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2부 정오
6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8 간디처럼 싸우는 법
9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10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3부 황혼
11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12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13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14 몽테뉴처럼 죽는 법

나오는 말: 도착 


  저자는 14명의 철학자 선정하여 삶에 필요한 지혜를 철학자들의 사상과 저자의 경험과 이야기에 녹여 편안하게 이야기해준다. 철학은 어렵다는 선입관을 깰 수 있도록 덜컹덜컹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듯,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가듯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자신의 경험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편안한 어조로 풀어놓는다.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편안하다. 그동안 이름만 알았던 철학자를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하고, 오해하고 있던 철학자를 재조명해 주기도 한다. 


  철학자들의 다양하고 방대한 사상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하다 보니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계몽 사상가였던 ‘루소’가 가장 세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사상은 ‘사회계약론’인데 책에서는 ‘걷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된 것은 쉽고 편안한 문체로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만나듯 다양한 이야기로 소개한 철학자들과 그의 사상과 사유의 방식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철학과 철학하기’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한 철학자들과 그와 관련된 책들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빌려보게 되었다. 저자는 기차여행으로 책을 소개하였고, 독자들은 이 책으로 철학과 다시 만나고 철학하기라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방통대 교수 유범상은 철학은 단순히 감정을 정화시키는 힐링(healing)이 아니라 아픈 부분까지 통찰할 수 있는 필링(peeling)이라고 했다. 철학을 삶에서 잘 써먹을 수 있는 ‘철학하기’로 관점을 전환하고, 헬스장에서 몸을 단련하듯 철학과 만나는 시간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그 시작을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초대하고 있다. 얼른 이 기차에 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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