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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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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Feb 09. 2022

아몬드

구소희 씀

손원평 / 창비 / 2017

  최근 악플과 루머에 몇 해 동안 시달리던 BJ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며칠 후 한 스포츠 선수가 같은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슷한 사건은 연예인부터 평범한 학생들까지 수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한 법의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사이코 패스'가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 형태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 인간이 스스로 삶의 끈을 놓을 정도로 악플을 다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 중 상당수는  너무도 평범한 얼굴을 한 우리의 이웃일 것이다. 타인의 아픔에 둔감하며, 둔감함을 넘어 잔혹함을 띄기까지 하는 감정 불능, 공감 불능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을까? 그렇게 길러졌을까? 


  문득 청소년 소설 ‘아몬드’가 떠올랐다. ‘새로운 키덜트 소설이 나타났다.’는 수식어를 가진 아몬드와 다시 만났다.


1. 첫 문장이 파격적이었다.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이후의 이야기도 강렬했다.


먼저 엄마와 할멈. 다음으로는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그 후에는 구세군 해인의 선두에 섰던 50대 아저씨 둘과 경찰 한 명이었다.
그리고 끝으로는 남자 자신이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까지 버린 남자. 자신의 고통에 압도되어 타인을 해하는 모습을 보며 악플러들의 모습과 묘하게 닮은 구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2. 다른 듯 닮은 두 소년, 윤재와 곤(이수)


  태어나면서부터 느끼지 못하는 아이와 느낄 수 있게 태어났으나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게 된 아이가 있다. 편도체가 작게 태어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두 손을 잡아주는 엄마와 할머니 덕분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해 갔다. 상황에 대해 늘 솔직했고 스스로 묻고 답하며 자신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면 곤(이수)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나 유괴를 당한 후 상처투성이였던 성장과정을 겪었다.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자신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잘라내며 분노로 치환하여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선택한 아이였다.


3. 사람마다 표현하는 사랑이 다르다


  윤재의 엄마에게 사랑이란 아이가 사회의 일원으로 어울리며 살 수 있도록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교육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안달복달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윤재를 가르쳤다.


  할머니가 엄마를 부르는 '썩을 년', 윤재를 부르는 '괴물'도 본디 단어의 뜻과는 다르게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7년 만에 다시 만난 엄마와 윤재를 보듬고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처참한 죽음을 맞기 직전 윤재가 나오지 못하게 문을 온몸으로 막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온몸으로 피를 흘리며 지켜내었다. 윤재는 할머니가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어도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이층에서 빵집을 하시는 심 박사는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기억하며 빵을 굽는다. 아내가 살아생전 그를 위해서 직접 구워주던 고소한 빵. 그 빵을 먹으며 느꼈던 아련한 감정들. 그것을 기억하며 그는 아내를 위해, 아내를 기억하며 빵을 구웠다.  그것이 그에게는 사랑이었다. 사람마다 표현하는 사랑은 다르다.


4.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윤재는 삶에서 겪은 아주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같은 표현이라도 상황이나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타고난 어려움으로 삶에서 넘어질 수 있던 윤재가 뚜벅뚜벅 걸을 수 있었던 건 양손을 잡아주던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 덕분이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사랑의 경험이 아닐까? 작가는 이 책에서 사랑을 자두맛 사탕으로 표현하였다. 할머니는 ‘사랑이란 달콤함으로 피 맛이 어우러져 자두맛 사탕의 맛을 만든다’고 했다. 삶을 통해 사랑의 달콤함과 고통을 온몸으로 경험했기에 가능한 표현일 것이다.


5. 왜곡된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것


  과학기술과 사회 제도가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점점 감정 불능 상태가 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장보다는 성취, 연결과 연대보다는 경쟁, 공동체보다는 각자도생의 삭막한 사회가 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권위주의 세대를 살아온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며 똑같이 권위주의적이거나 반대로 경계 없이 너무 허용적이고 과도한 사랑으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본다. 너무 많은 사랑도 너무 적은 사랑도 모두 독이 된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주기 편하고 익숙한 형태의 사랑을 표현한다. 그리고는 나는 널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안다. 그 사랑은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향해 있었고 심지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다는 것을.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감정을 왜곡하기도 한다. 사랑에 대한 고통의 근원은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 있을 수 있다.


6.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주인공 선재는 순간순간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대신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묻는다.


왜 그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흉기를 휘둘렀을까요?
사람들은 가까이 있었지만 왜 돕지 않았을까요?
그 읽을 겪지 않았다면 식당을 나와 우리는 어디를 갔을까요?
왜? 왜?? 왜???


  순간의 상황에 휘둘리더라도 이후 그 상황을 바라보고 다시 자신의 질문과 대답을 찾아가는 선재의 성찰적인 태도가 그를 남다르게 한다. 그것으로 성장하고 주위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이었고 가족의 부재 후에는 이웃인 심 박사 덕분이었다. 


7. 선재처럼 질문을 던져 본다.


자신의 고통에 민감한 이들이 왜 타인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것일까?
타인에게 말과 글로 고통을 주는 이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오늘날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회복시켜 나갈 것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성장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수용의 경험과 함께 행동의 경계를 배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가정과 학교, 우리 사회의 문화로부터 아이들이 배워 나가게 된다. 우리 사회가 감정 불능, 공감 불능이 되어간다는 것은 가정과 학교, 사회 문화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교육의 기능 중 중요한 것이 사회화와 주체성을 동시에 키워나가는 것이 아니던가? 자신의 욕구에만 집중하고,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보다 경쟁을 통해 성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느낄 겨를 없이 문자 교육으로 내몰리며,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 진심 어린 감정교류보다는 과업과 성취 중심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우리 사회의 문화를 어떻게 진단하고 고쳐나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할수록 질문이 더 많아진다. 


감정 불능, 공감 불능 사회에 우리 교육이 기여해온 것은 무엇인가? 
혼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순응하여 잘못된 문화를 거드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학교는, 우리 교육은 이러한 문제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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