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이 퇴직을 직감하던 순간

미래를 안다는 것은 오히려 고통이다

by 경아로운 생각


내 이름이 불리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부서로 발령이 났다. 예상치도 못한 임원의 자리에 오른 지 꼭 1년 만이다.


1년 전 오늘, 점심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중에 인사 상무의 전화를 받았다. "1시까지 25층으로 오세요" 25층은 대표실이 있는 곳이라 순간 당황했는데 그 순간 문자 한 통이 왔다. "상무님, 영전하심을 축하드립니다" 그 문자에 보낸 나의 답장은 "말만이라도 고마워^^~"였다. 그렇게 상무의 자리에 올랐다. 부족한 것을 알기에 그저 감사하고 더욱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저기서 오는 축하 연락과 협력사의 미팅 제의, 수많은 교육과 회식들로 한 달을 보내느라 체력이 바닥 날 지경이었다. 저녁 때는 술로 낮에는 새로운 업무 계획으로 쉴 새 없이 나를 몰아붙였다. 내가 부여받은 막중한 직책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적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나도 팀원들도 점점 지쳐갔다. 내가 처음 임원이 되었을 때 나에게 해준 어느 선배 임원의 충고가 생각났다. "괜히 의지 가지고 덤벼들어 잡음 만들지 말고, 임원 1년 차는 그냥 조용히 흘려보내고, 2년 차 초에 하나 터뜨려. 그럼 3~4년은 갈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나를 믿어주고 기회를 준 회사를 위해 그저 롱런을 위한 연명 근무는 하고 싶지 않았다. 신독의 자세로 새롭게 추진하는 업무를 상사분께 어필하지 않고 오로지 업무에만 매달렸다. 워낙 어려운 업무를 맡았기에 그 누구도 나보다 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고, 1년 차에 실행한 계획에 대한 결과물이 이제 막 나타나려던 참이었다.


실적이 저조한 임원은 모두 교체하라는 대표님의 의중이 있으셨다 한다. 부정부실의 치명적 문제가 있지 않는 한 같은 업무를 2년 이상 보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결국 나에게 같은 자리, 같은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임원회의 시 내년도 임원인사 발표 중,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이번 임원인사의 배경을 듣는데 솔직히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력을 다해 일한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꿈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멍하기까지 하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는 밝은 표정이고 누군가는 어리둥절해하며 누군가는 아예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임원인사의 명암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이번 임원인사를 통해 나는 중심에서 벗어난 자리로 이동하였다. 순간 직감했다. '올해가 마지막이구나. 내년에는 나가라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모두가 나를 보며 비웃는 것 같았다. 인사 상무가 회의가 끝난 뒤 한 마디 했다. "잘하세요" 그 말을 들으니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내 예감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회의가 끝나고 바로 사무실에 올 용기가 없어 그동안 마음을 나누고 지냈던 임원 한 분과 점심을 먹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이미 내 후임이 사무실에서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팀원들의 태도가 깍듯했다. 뒤이어 내 자리로 온 후임자는 "책상 다 치우셨네요. 천천히 치우시지.."라고 말하고 그의 자리로 돌아갔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서운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친한 친구에게 문자를 하였다. "XXX"


짐 정리를 끝내고 새로 모시게 된 상사분께 인사를 한 후 조금 이른 퇴근을 하였다.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내가 힘들 때마다 내게 힘이 되어 주시는 우리 엄마.. 회사 주차장을 빠져나오고 나니 눈물이 흘렀다. 아니 엉엉 흐느껴 울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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