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고민을 드디어 끝내었다
며칠을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드디어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아이가 곧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제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일만 남았는데 내가 직장을 다니는 것이 맞는지 고민되었다.
아이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원치 않는 학원 꼬박꼬박 보내주고, 가끔 쉬는 날 졸면서 전시회에 데려가고, 방학 때 사진 찍기 좋은 2박 3일 가족여행이 전부였었다. 늘 마음에 걸렸었다. 엄마로서 정말 해줘야 할 일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기만 하였다.
죄책감도 들었었다.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엄마 노릇을 잘하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를 질책했고, 담임 선생님 면담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족함을 반성하였다. 아이의 표정이 어두우면 나쁜 친구에게 괴롭힘 당했나 싶어 불안했지만 그럼에도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이 답답하였다.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때?” 아이는 말이 끝나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회사에 무슨 일 있어?” 온전히 나에 대한 걱정만은 아닌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이제 너 잘 챙겨주려고. 엄마가 그동안 엄마 노릇 못한 것 같아서” 아이의 칭찬을 바라기라도 하는 듯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이가 놀라며 대답했다.
“엄마, 그러지 마. 내가 더 열심히 할게” 뜻하지 않은 아이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나 더 공부 안 할 거 같아. 집에 오기도 싫을 것 같고” 연이은 아이의 이야기는 놀람을 넘어 마음에 상처로 다가왔다. 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지 고민했던 것도 잊고 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지가 궁금해졌다. ‘내가 그렇게 싫은가?’ ‘내가 무얼 진짜 잘못했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 또 다른 감정이 들었다.
‘다행이다. 나 회사 그만두지 않아도 되겠네’
분명 아이를 위해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했었고, 여차하면 내일이라도 사직서를 제출할 심산이었는데 그러지 말라는 아이의 말에 그만두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은 듯 안도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 이중적인 모습은 무얼까?
두 개의 감정이 뒤섞이는 것을 보며 나는 내 안에 상반된 두 마음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충실하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하였지만 한 편으로는 일을 계속하며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올 때마다 한 감정이 다른 감정을 시소처럼 눌러댔지만 결국 두 마음이 내 안에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아이의 이 말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지 않기로 했다.
“암튼, 나 엄마가 회사 그만두면 공부, 지금도 열심히 안 하지만 더 안 할 거야”
그리고 그 이후 적어도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오히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가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로 힘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껏 달리 살아온 나와 아이가 갑자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때의 갈등과 시행착오도 예상되었다.
대신 한정된 시간을 더 열심히 살기로 마음먹었다.
최대한 집중해서 일하고 아이의 방식대로 충분히 사랑하는 것.
그것이 나와 아이를 위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