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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Nov 23. 2022

상무님은 왜 명품가방을 고집하실까?

대기업 임원에게 주는 명품 가방의 특별한 의미

 “상무님, 프OO 좋아하시나 봐요”

오전 업무를 마치고 협력사 방문을 나가는데 함께 하는 후배가 물었다.

 “매일 뵈면 프OO 가방만 가지고 다니세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어, 그러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늘 큼지막한 검은색 명품 가방을 들고 다녔다. A4 파일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무겁기 짝이 없는 소가죽 가방, 딱히 내 스타일도 아닌 이 가방을 언제부터 들고 다녔던 것일까?     


수개월 전,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임원이 되었다. 내가 임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대표님께 승진 축하 메시지를 듣고도,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신규 임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무조건 잘 해내고 싶었다. 나를 믿어준 회사에 보답을 하리라 다짐했다. 일만 잘한다고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당장의 업무 성과는 물론 미래의 먹거리를 개발하며, 후배에게도 귀감이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회사 또한 신임 임원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컸다. 주말을 활용한 갖가지 교육을 통해 임원이 가져야 하는 역량을 강화시켜 주었다. 손익 분석법을 시작으로 트렌드와 각종 법규 등 그 영역도 다양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일정 속에서 회사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매너 교육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에 모기업 상무의 갑질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던 터라 특히 더 강조되었다. 임원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며, 제대로 처신하지 않으면 회사에 누가 된다는 경고를 수도 없이 받았다. 늘 품위 있는 언행과 모습을 유지하라는 반복된 메시지 속에서 임원으로서의 기품을 갖추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교육을 나는 왜 그렇게 적용했을까     


대기업 임원이면 회사의 위상에 걸맞은 치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소재 좋은 슈트와 고가의 구두는 물론 명품 브랜드 로고가 각인된 가방은 필수라고 느껴졌다. 당장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임원의 이상적인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구매하기 시작했다. 무리가 되었지만, 평소 가보지 못한 브랜드에서 쇼핑을 하며 회사의 격에 맞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풀 착장을 하고 출근을 하는 데 살짝 불편한 감이 있었다. 재킷 소매의 진동이 좁아 팔이 잘 올라가지 않았고, 바지 앞선에 무릎이 나올까 신경이 쓰였으며, 발볼이 좁은 듯한 구두로 살짝 쥐가 날 것 같았다. 가방은 왜 그리 무거운지, 필요한 개인물품을 모두 넣으니 가방을 들고 있는 손의 어깨가 한쪽으로 축 처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임원이라면 당연히 감당해야 할 무게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임원으로서의 시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게 흘러갔다. 대부분 늦은 밤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 들어왔고, 전날의 귀가 시간과 상관없이 다음 날은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해야 했다. 자연스레 무엇을 입을지에 대한 고민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큰맘 먹고 구매한 슈트 몇 벌과 커다란 명품 가방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중 들은 후배의 말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임원의 품위는 무엇이었을까. 순간 외면적 이미지를 지나치게 중시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겉모습이 주는 느낌이 중요하다 쳐도 내면과 실력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부족한 부분을 명품 가방으로 감추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보는 대상에게 온갖 깃털을 펼쳐대며 폼나게 보이려 애쓰는 공작새처럼 값비싼 물품으로 치장하면 내 가치도 올라갈 것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첫 협력사간 임원 미팅을 위해 나는 회의 주제보다 외모에 더 많은 신경을 썼었다. 생각 외로 회의가 길어지고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시간이 부족해 더 꼼꼼히 준비하지 못했음을 후회했었다. 겉모습을 가꾸는데 쓸 시간을 준비에 더하였다면 회의가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곧바로 무거운 명품 가방을 던져 버렸다.       


그 후로는 비가 와도 가방만큼은 젖지 않게 하려 겉옷을 벗어 감싼다거나, 붐비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방이 짓눌릴까 다리 앞쪽으로 조심스레 붙이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맞춤형으로 뜨는 명품 브랜드 인터넷 홍보에도 반응하지 않게 되었으며, 무거운 것을 들지 않아야 오십견이 빨리 낫는다는 의사의 권유에도 그러겠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상무님, 가방 바뀌셨네요. 어느 브랜드예요?”

후배가 내 손에 들려진 큼지막한 캔버스 가방을 보며 물었다.

“모르겠네” 라벨을 한참 찾다 대답했다.

“잘 어울리세요” 무엇이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으나 더는 묻지 않았다.     


나는 지금의 내 가방이 좋다.

때가 탈까, 형태가 변할까, 비에 젖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참 좋다.      


무엇보다 가벼워서 좋다.

가벼워진 가방의 무게만큼이나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덜어내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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