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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균 May 30. 2017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

우리에게는 평생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두 친구가 있다. 바로 '두려움'과 '불안'이다. 이 두 친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대해 가장 지혜로운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아마도 알랭 드 보통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는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이며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불안」,「뉴스의 시대」 등 펴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깨달음으로서 치유해 주고 있다.


먼저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알랭드 보통이 알려주는 방법을 시작으로 캐롤라인, 케빈 코스트너 그리고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씨가 쓴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글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세 번째는  서울대 공대 출신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김진애 박사의 「한 번은 독해져라」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불안'의 이야기를 다뤄 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부를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고전평론가인 고미숙 작가가 들려주는 방법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럼 네 명의 전문의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가 보자. 첨언하자면 아래 글은 알랭의 '불안'이라는 책과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에서 공통으로 발췌했다.



알랭은 우리가 두려움과 불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의 삶을 너무 타인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과 향하는 것을 알면 타인의 중요성은 뚜렷하게 약해집니다. 당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이 모호할수록 타인의 목소리와 주변의 혼란, 소셜 미디어의 정보 등이 점점 커지면서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알랭은 또 

"진정한 성공이란 평화로운 상태에 놓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선 동. 서양의 인문학자들의 생각이 거의 유사하다. 물론 이 부분은 나의 생각이니 뒤로 하자. 


평화로운 상태를 얻으려면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고 타인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며 당신에게 화를 낸다고 해보자.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라. 그는 당신의 이해부족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니다.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신의 불안 때문에 당신에게 못 되게 구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타인의 반응보다는 '자기 자신의 반응'을 더 깊이 살펴야 한다. 타인에게 상처받는다는 건, 결국 자신에게서 상처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알랭의 마지막 조언을 들어보자.

"불안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의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끝이 있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죠. 규칙적으로 의도적으로 멈춰 서서 그 사실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들판에 핀 야생화를 보고 탄성을 지르는 사람을 보고 당신은 '머지?' 하며  잠시 하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련의 파도를 극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언제부터인가 들판에 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뺨을 스치는 바람, 아름답게 만들어진 뭉게구름을 보며 일상의 사소함에 대해 감사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해고에 대한 불안, 신체의 질병, 경제적 압박등 조금만 상황이 틀어져도 우리는 쉽게 무너집니다. 약간의 좌절만으로도 그렇게 됩니다. 따라서 이 같은 나약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별 큰일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에 진심을 다해 감사할 때 극복의 길이 열립니다. 감사야 말로 불안과 두려움을 보내오는 운명의 여신에게 맞설 수 있는 인간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입니다".


감사를 어떻게 느낄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숙제이자 알랭이 우리에게 준 솔루션이다. 


두려움이 목표를 가로막을 때는 샌프란시스코 구조 2팀 캐롤라인의 극복 예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캐롤라인 폴은 최고의 여성 소방관이다 구조 2팀 역사상 최초로 화재 현장에 투입된 여성 소방관이다. 


그녀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아직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던 시절, 캐롤라인은 무엇보다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한 발자국도 못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 보기 위해 세로로 설치된 케이블 선을 타고 230미터 높이의 금문교를 올라간 것이다. 


한밤중이었다. 나는 케이블 선을 올라 70층 높이의 둥근 가로 바 위를 걷기 시작했다. 발아래는 아무도 없었다. 양 옆으로 뻗은 두 줄의 와이어가 안전을 위한 유일한 장치였다. 
첫 발자국을 떼는 건 기적 같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두 걸음, 세 걸음쯤 걷고 나자 그냥 보통 평지를 걷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그러니깐 두려움에서 용기까지는 두 세 걸음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자 캐롤라인은 아찔한 허공 위에서도 자신을 찾아온 감정 모두를 고요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깨달았다. 정말 해내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어느 정도의 순위에 배치할 것인가를 정하고 거기에 넣어두면 충분하다는 것을, 


그녀는 또 이렇게 말했다.

공포와 불안, 두려움을 느낄 때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벽돌처럼 따로 하나하나 떨어뜨려 놓은 다음 다시 한 개의 선 위에 그것들을 올려보라. 인생이란 이 벽돌들을 단단히 쌓아가는 작업임을 알면 '두려움'이란 벽돌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해야 무너지지 않을지 깨닫게 된다. 두려움은 무조건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반드시 부수고 없애야 할 벽돌도 아니다. 적당한 순위에 재배치된 두려움은 우리를 안전하게 이끈다. 안전하면서도 근사하고 멋진 집을 짓고 싶다면 두려움을 어떻게 쓸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인생은 용기의 양에 따라 줄어들거나 늘어난다."는 문구가 이제야 이해가 되는 문장으로 다가온다...


이번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 케빈 코스터너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그의 가장 큰 두려움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가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원하지 않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의 지혜로운 깨달음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케빈 코스터너는 '원하는 일, 원하는 삶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도 지혜를 나눠주었다. 


"떠올릴 때마다 약간 두렵고 긴장되고 떨리는 일, 그게 바로 당신이 원하는 것입니다. '와우, 잘하면 인생이 완전히 종 칠 수도 있겠는걸!' 하는 일이 바로 당신이 찾아 헤매던 모험인 것이죠. 두려움이라는 친구를 멀리하는데 시간을 쓰지 마십시오. '용기'라는 새 친구를 초대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주세요."


이것이 케빈이 우리에게 알려주고픈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였다. 



두 번째로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인 양창순은 "우리는 왜 변화를 두려워하는가?"라는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양 박사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관계, 사랑, 금연 및 생활의 모든 면에서 나타나며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질과 상관없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상담을 해보면 낯선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우리에게 어떤 종류든 변화에 따른 집착이 생겨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바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집착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사랑이 멀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관계가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계 자체가 변화했건만 그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다 보니 집착이 생겨나는 것이다. 관계 자체가 변했는데 그걸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착을 하는 것이다.


양 작가는 관계와 사랑과 그 속에서 기인하여 나타나는 모든 불안의 심리를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준다.

그의 이야기로 한 발짝 더 들어가 보자.


사랑만이 아니다 그건 인생의 모든 면에서 다 적용된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도 음식에 집착하는 것도 음식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명백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연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일과도 정해진 순서대로 전개되어야 견디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가리켜 완벽주의와 소심함의 합병증이라고 불렀는데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분명 떨치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을 알면서도 현실에 안주해 오직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계속해서 투덜거리면서 자신이 그래야만 하는 온갖 이유를 다 수집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하나뿐이다. 행동해야 하는 변화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삶의 어느 불행한 순간에 고착되고 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어떤 종류든 집착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관계가 변했다는 사살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변화, 사람에 대한 변화 즉 일에 대한 Fact 가 변한 것이다. 


양창순 박사는 '불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불안이라는 것은 왜 생기는가?


누구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공격적인 충동, 성적 충동, 적개심, 원망, 분노와 좌절감 등등.. 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날것으로 드러낼 수는 없다. 그랬다가 당장 미친 사람 취급받기 알맞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들을 억압하느라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불안은 바로 그런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감은 가지만.. 고개가 약간 갸우뚱한다.



'한 번은 독해져라'의 김진애 작가는 "왜 나는 나를 괴롭힐까?" 그리고 "왜 나는 괴로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녀가 제시하는 해결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괴로움은 잠시 떠났다가 또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새 나는 또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김진애 작가는 '괴로움의 패턴을 관찰하는 습관'을 보라고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괴로움을 객관화하는 습관이다.

문제가 터지고 난관이 생겨 고민이 깊어지고 흔들리고 괴로움이 더해질 때마다 자신을 한번 잘 관찰해 보라.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심해지고 또 대범해지는 법을 배운다. 세심해진다는 것은 전후좌우를 잘 살피게 되어 원인을 파악하는 능력이 는다는 것이다. 대범해진다는 것은 하나의 현상을 현상적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대응 원칙을 세우게 된다는 뜻이다.


나 자신의 괴로움에 대해 세심하게 관찬하고 대범하게 그려보라!


이것은 인생 내내 해야 할 일이다.


첫째, 나 자신을 관찰하는 습관이다.

괴로워할 때마다 내 마음속을 세심하게 관찰해 보라. 스스로 관찰의 주체이자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왜 괴로운가?

내가 왜 마음이 상했을까?

어떻게 해야 풀릴까?

이런 일이 있었을 때 지난번 나는 어떻게 했나? 관찰일지를 참조하라.

결국 경우의 수 등이 쌓이고 나 자신만의 장치를 고안하게 된다.


둘째,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공부하는 습관이다. 사람에 대한 공부가 궁극적으로 자신에 대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나와는 다르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괴로움을 다스리는 주체들이니 그들의 경험과 지혜는 크게 도움이 된다. 행동과 선택의 최종 결론을 내릴 때까지 '레퍼런스'가 되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을 관찰함으로써 그들의 고민과 약함과 무지와 지혜를 잘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셋째, 고백이라는 아주 중요한 습관이다.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는 행위란 나의 생각, 심리, 선택, 의견, 걱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과정이다. 괴로움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더 이상 괴로움만은 아니게 된다. 괴로움을 털어놓기만 해도 무게가 덜어지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세속에서 일어나는 고백은 자기 통찰의 과정이 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행위의 시작이다. 일기 쓰기, 책 쓰기도 일종의 고백행위가 될 것이다.


넷째, 괴로움의 패턴을 그려보는 습관이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대범하게 자신의 패턴을 그려보는 것이다.

괴로움과 반응의 관계

생각과 행위의 관계

어떨 때 행복해하고 어떨 때 불행하다고 느끼는지.

왜 일이 잘되고 왜 일이 안 되는 것인지?

놓친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지?

붙들어야 할 원칙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고정관념은 무엇인지? 차츰 더 잘 보이게 된다.

전체적으로 나 자신의 감정패턴, 생각패턴, 행동패턴, 멘털패턴이 그려진다.

나 자신의 그림을 그려보면 나는 기꺼이 대범해질 수 있다.


리스트를 쓰는 도중 문득  작가가 영화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에서 요다가 충고하는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은 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구심이 들었다.

"두려움을 없애려면 그것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  추상명사인 두려움을 눈에 보이는 실체로 만들고, 그것에 구체적인 이름과 정의를 붙이는 방법을 통해 생각보다 쉽게 두려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말이다. 한 마디로 최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여하튼 이건 나의 생각이고 다시 작가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산다는 것은 작은 괴로움들과의 무수한 전투다. 괴로워하더라도 소모적인 괴로움이 아니라 성장하는 괴로움으로 작동하게 되어야 한다. 깊은 고통은 차라리 너무 아파서 빠져버릴 수 있다. 그런데 일상을 어지럽히는 괴로움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갉아먹는다. 의미 있는 괴로움으로 스스로 강해지자.


나를 괴롭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이 책은 이 지점으로부터 시작한다. 괴로움은 결코 없어지지 않지만 괴로움을 다스리는 지혜는 커질 수 있다. 어떻게 그 지혜를 키워야 하나?, 자신의 괴로움을 잘 관찰하고 그 패턴을 그려보자. 왜 괴로운지, 어떻게 그 괴로움을 의미 있는 괴로움으로 만들 것인지, 더 집중해 보자. 괴로움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더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궁극에는 정면으로 응시하고 원인을 찾아보며, 정면 승부하면서 의미 있는 괴로움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세심하고 대범하게.




마지막으로 고전평론가인 '고미숙'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의 존재는 단 하나의 명령을 받는다. 

살아 있으라! 그리고 행복하라!.

행복하게 살기가 존재의 유일한 명령이다. 그런데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구를 해야 한다. 무엇이 행복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를.. 상품으로 주입된 행복의 이미지를 버리고 돈이 행복의 전부라는 고루한 노예의 행복을 버리고 자기 구원으로서의 앎.


핵심은 관찰이다.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을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 바로 글쓰기다. 


내면의 치열한 관찰. 새삼스런 말이지만 독서의 최종목표는 글쓰기다. 책을 읽는 건 삶의 길을 찾는 탐색이다. 그 길 찾기는 반드시 자신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언어를 통한 철저히 나만의 ‘사유의 지도’를 그리는 것. 바로 번뇌의 커밍아웃을 통해 철저히 자신을 해부하는 것. 그것이 곧 지성의 정점이자 귀결처이다. 


그러면 정말 중요한 건 바로 여기서부터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다음엔 반드시 그것을 삶의 지혜로 바꾸는 훈련이 아우러져야 한다. 아무리 커다란 역경을 겪어도 그것을 배움의 과정으로 변환하지 못하면 모든 것은 그저 산산이 흩어질 뿐이다. 아니면 평생 원망과 분노을 안고 살아가거나, 고난과 역경을 ‘삶의 기술’로 변주하기 위한 최고의 과정이 바로 자신의 해부다. 나는 무엇을 겪었으며 어떻게 고난을 이겨냈으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내 몸의 습속과 욕망 그리고 팔자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하나씩 집어 본다. 그렇게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습관의 중력이 무장해재 되면서 새로운 리듬이 조성될 테니 말이다.


결국 그의 언어도 자기 삶의 최고 기술자가 되기 위해선 관찰 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최고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네 
삶의 최고기술이란 무엇인가? 
요컨대 오늘보다는 내일을 잘 살기 위해 지금과 다르게 살기 위해 질병과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 모두는 ‘자기 몸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오직 한 가지만 기억하자.


인간은 불안전한 존재다. 빈틈없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지금도 자기 내면과 치열한 전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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