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조절하는 테크닉
화(火)
요즘 사회는 타인에 대해 약간의 자비조차 없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가차없이 응징과 복수를 한다. 분노의 폭발은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도 파괴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감정을 언어로 표현 하는 일” 이다. 이를테면 시작점은 이러하다.
부적절하게 화를 내는 사람에게 “왜 화를 내냐” 고 따질게 아니라 “네가 화났다는걸 충분히 알겠다” 고 일단 수긍해 주는 것이다.
분노는 감정이다.
그리고 감정은 에너지이자 커뮤니케이션의 한 수단일 뿐이다.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화(火)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그걸 잘못 다루고 있는 내가 잘못인 거다. 수치심,외로움,질투 등 다양한 감정이 오로지 ‘분노’ 하나로 표출된다. 왜냐면 분노가 가장 쉽기 때문이다.
‘분노’ 에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분노 憤怒 : 분개하여 몹시 성을 냄. 또는 그렇게 내는 성
외로움이나 수치심은 표현도 어렵고 주목 받기도 힘들다. 반면 화(火)를 내면 사람들이 바로 긴장하고 쳐다봐 준다. 존재감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분노한다.고로 존재한다’ 고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이가 화를 내면 ‘어른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란 훈계로 시작하며 감정을 억누르게 한다.
그것이 발단이다.
상대와의 다양한 대화의 기술이 싹이 트지 못하도록 잘라 버리는 것이다.일단 감정을 펼치게 해준 뒤에 훈계를 해도 늦지 않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분노의 언어를 다시 배워보자.
자신이 부적절하게 화를 내는 건 아닌지,
분노를 언어가 아닌 행동으로 표현하진 않는지
가까운 사람에게 유독 화를 많이 내진 않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내면의 깊은 성찰을 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우리는 보다 나은 삶,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소득이 늘어야만 삶의 질이 늘어나고 여가가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허나 삶은 생각만큼 녹녹지 않다.
요즘 ‘시간빈곤층’ 이란 말이 있다. 본인 스스로가 여가시간이 없으면 자신의 가치를 일터에서 직급과 권위의 위치에 따라 매기게 된다. 직장인,노동자 외에 다른 정체성이 커져야 한다.
직장 외에 또 다른 세계, 누구도 나를 평가하거나 비교하지 않는 안전한 곳이 있어야 한다. 거기서 매력적인 사람으로 스스로를 가꿔나가야 한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면 자존감은 당연히 올라간다. 그런데 그걸 여유가 없으니 인정에 더욱 목을 매고 갈증을 낸다. 그리고 화를 낸다. 그렇게 분노에 끌려다니는 노예가 된다.
불운도 행운도 함께한 인생이지만, 앞으로 맞을 인생후반전이 더 중요한 인생이기에 우리는 이 점을 인지하고 가야 한다. 타인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이성과 감성을 연결하는 언어가 항상 중요한 지점에 서있다.
성인도 하기 힘든것이 바로 감정조절능력이다.
하물며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아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시간과노력, 기다림이 필요한데 더구나 우는 아이에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좋은 마음이야. 지금 니 마음상태가 많이 힘들다고 너에게 이야기 하는거야.하지만 우는것도 중요하지만 네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해”
라고 말하며 감정을 다루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것임을 알려주고 가르쳐줘야 한다. 이런 반복과정을 통해 스스로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게 되며 마음속 감정도 풍부해지고 밖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표현도 적절히 제어할줄 아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
반면에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으로 대하는 부모의 아이들은 감정의 공감을 받지 못하기에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감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기쁨과 슬픔, 노여움,분노 모두 소중한 아이의 감정이다. 아이의 감정조절능력을 키우겠다고 감정 표현의 기회를 억압하고 통제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해주고 그러한 감정을 발산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분노조절일지를 쓰는게 도움이 된다.
딱 하루 만이라도 화를 낸 시간과 장소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황을 객관화 할 수 있다. 내가 굉장히 헛된 것에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상황을 피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를 낼 만한 상황인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도 격한 감정은 어느 정도 누그러지지만 앙금은 계속 남을 수 있다. 그러면 바로 화를 내면 되는 일일까. 사람이 화를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황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과연 겉으로, 화로 표출되는 것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순간의 후련함 대신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다소 누그러진 화라도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화를 내지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떠올리고 그것에 집중한다.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고 능사는 아니다. 억누르기만 하면 오히려 화병이 된다.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말해야 한다. 부정적인 말은 나를 주어로 시작하되 좋은 말은 상대방을 주어로 시작하는 것이다.
‘당신 때문에 이렇게 망쳐버렸다’
는 식의 말로 시작하면 분노했던 상황으로 되돌아갈 뿐이다.
‘나는 ~~였으면 좋겠다’
는 식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고 있다.어색함 수줍음 스스로에 대한 불신. 수치심등 자신을 향한 부정적 감정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툭 건드리면 욱 하는 경향도 잦은것이다.
더불어 낮은 자존감을 겸손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간혹있는데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겸손은 건강하고 활기에 넘치는 감정이다. 허나 낮은 자존감은 그렇지 않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지나치게 순종적인 성격을 갖기쉽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 이나 의사전달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전달하는것을 꺼려한다. 괜한 소리,쓸데없는 말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인간관계를 잃게될까 두려워한다. 정작 자신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낮은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절망감을 키운다. 마음의 평정이 유지될때 어디에서 나의 부정적이고 낮은 자존감이 흐르게되는지 발견해 보자.
나는 지금 중년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인생후반기는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춘기, 30대 그리고 아버지이자 중년남자의 꼬리표로 살고 있지만 다가올 노년과 죽음 또한 생애의 흐름에 맞게 진행되고 있다.
진짜 삶은 중년부터, ‘지금 시간부터 바로 여기 에서' 라고 생각된다. 그전까지는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삶 자체가 수동적이고 도구화 되었으니까.
만약 내가 이 시기에 제대로 된 중년을 거치지 못하면 여전히 미해결된 허욕이 남아있고 그래서 더욱 대접만 받고 싶어하는 추한 어른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