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이레 8월호

동구 이발소

우리집 1층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발소다. 이발소 창문이 집으로 오르는 계단 쪽으로 나 있어 이발소에 누가 있는지 다 안다. 이른 아침부터 동네 할아버지들은 이발소에 모여 장기를 두거나 소파에서 뉴스를 보고 또 본다. 이발하러 오는 손님보다 놀러오는 할아버지가 두 배는 많다. 동네 할아버지들의 놀이터가 바로 우리 동구 이발소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이발소 앞을 쓸다 살얼음판에 미끄러졌다. 평소 허리가 안 좋았던 탓에 더 크게 다쳤다. 아빠가 서둘러 119를 불렀다. 아침부터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사이렌을 울리며 앰블런스가 골목길을 달렸다. 할아버지는 퇴원해서도 여러 날 누워 있었다. 이러다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 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식사도 잘 못하고 누워 있는 할아버지 모습이 이발소 앞에 힘없이 기대어 있는 빗자루 같았다. 할머니와 아빠가 할아버지의 팔, 다리를 주무르며 돌보았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날마다 진을 치던 동네 할아버지들의 발길이 갑자기 뚝 끊긴 거다. 평소 같으면 막걸리며 인절미를 사서 몇 번은 왔을 분들이 할아버지가 아픈데도 병문안은 커녕 이발소 앞을 지나지도 않아 이해할 수 없었다. 의리없게.

“우리한테는 친구끼리 의리 있게 지내야 한다더니 어른들이 더 배신자야.”

“맞아. 우리는 절대 그러지 말자. 동구, 아니 준수 너 아프면 내가 만날 병문안 갈게.”

“도연이 너까지 그럴래? 가뜩이나 할아버지들이 자꾸 동구라고 불러서 짜증나는데.”

“미안 미안. 버릇이 돼서. 그런데 너도 떡집 할아버지한테 짱구 할아버지라고 하잖아.”

“아니, 그건 할아버지가 먼저 나를 동구라고 부르니까 복수하는 거지. 그리고 그 할아버지 이마 툭 튀어나와 짱구 맞잖아.”

“하긴. 멀리서 봐도 딱 알아볼 정도긴 해. 히힛.”

교문을 나서며 친구 도연이에게 할아버지들 이야기를 하자 도연이가 맞장구를 쳐 주었다. 내 마음 알아주는 건 역시 도연이 밖에 없다. 아껴둔 용돈으로 도연이에게 슬러시를 사 주었다. 슬러시 한 모금에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한참 도연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오는데 큰길가에 있는 미장원으로 짱구 할아버지가 들어가는 게 보였다. 도연이 말대로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짱구 이마.

“어? 저기 좀 봐. 짱구 할아버지다.”

도연이도 손가락으로 할아버지를 가리켰다. 나는 도연이 팔을 잡아 끌고 미장원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가 창문으로 할아버지를 훔쳐 보았다. 아줌마 미용사가 겉옷을 받아 옷장에 넣고 할아버지한테 보랏빛 커트보를 입혀 주었다. 잠깐 머뭇대던 할아버지는 의자에 앉았다. 미용사가 커피를 건네니 할아버지는 얼굴까지 발그레해졌다. 그 모습에 괜히 화가 났다. 숨을 쉴 때마다 콧구멍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쳇, 내가 저럴 줄 알았어. 배신자! 우리 이발소에 오시기만 해 봐라.’

저녁을 먹는 내내 할아버지께 고자질을 할까 말까 한참 망설였다.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입술이 달삭거렸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이 사실을 안다면 실망해 몸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꾸역꾸역 입안 가득 밥을 넣었다.

그 뒤로 나는 길을 다니다 할아버지들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도연이도 탐정놀이에 신이 난 듯 누구 할아버지가 누구를 만나네, 누구 할아버지가 어디를 가네 하며 보고를 했다. 할아버지들이 모여 이야기라도 나누면 왠지 미장원을 서로 소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귀가 자꾸 할아버지들 쪽으로 향했다.

“준수야, 할아버지들 이제 이발소에 안 오면 어떻게 해?”

“흥, 그러거나말거나. 어차피 할아버지들 때문에 젊은 손님은 들어오다가도 가는 걸 뭐. 차라리 잘됐어.”

“그러다 너희 할아버지 왕따 되는 거 아니야?”

“왕따는 무슨. 봐봐, 이발소 안 오니까 할아버지들 다 못 생겨졌잖아.”

도연이가 대놓고 그렇게 말하니까 화가 났다.

털레털레 이발소로 와 높은 이발의자에 올라앉아 멀뚱히 가게 안을 살폈다. 벽에 걸린 할아버지의 이용사 자격증은 그새 더 누렇게 바래졌다. 달그락대며 한껏 거품을 내던 면도솔은 끝이 말라비틀어졌다. 매섭게 날이 서 있던 가위들은 힘없이 널브러져 버려진 강아지 같았다. 끼이익 소리를 내며 돌던 이발소 앞 삼색등도 멈춘지 오래였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매웠다.

마을 입구를 온통 꽃으로 수놓던 벚나무에 어느새 잎이 무성해졌다. 할아버지는 한의원과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매일 운동도 해 점점 건강해졌다. 할아버지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니 할머니도 한시름 덜었다며 좋아했다.

일요일 오후, 할머니가 열무김치를 담갔다. 엄마는 큰 양푼에 보리밥과 열무김치를 넣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나는 얼른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에 넣었다.

“역시 할머니 김치는 최고!”

할머니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할머니가 많이 먹으라며 내 밥그릇에 수북이 밥을 담아 주었다. 아빠와 나는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웠다. 할아버지도 오래간만에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며칠 후 학교를 갔다오니 이발소의 낡은 간판이 반짝이는 새 간판으로 바뀌었다. 군데군데 벗겨졌던 선팅지도 새로 붙였다. 삐걱대던 삼색등도 최신형 LED등으로 바꿔 달았다. 겉만 봐서는 동구 이발소 같지 않을 정도였다.

“할아버지, 뭐예요?”

“이발소 다시 열어야지. 허리도 다 나았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

기다리는 사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들이 다시 올 거라고 믿는 모양이다. 배신 이야기를 지금이라도 해야 되나. 할아버지 왕따라고 알려줘야 하나. 곰곰이 생각하며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할아버지 주위만 맴돌았다.

공사가 끝난 토요일 아침,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이른 아침에 이발소로 내려갔다. 나는 화장실 가는 척 하며 할아버지 뒤를 쫓았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할아버지는 늘 그랬듯 가죽띠에 쓱쓱 면도칼부터 갈았다. 얼굴에 대보고 또 몇 번을 갈아 얼굴에 대보며 칼날을 세웠다. 그리고 플라스틱 거품통에 생크림 같은 거품을 잔뜩 내 솔을 문질러 얼굴에 발라 정성껏 면도를 했다. 할아버지 얼굴이 훨씬 생기 있고 건강해 보였다.

이번에는 커트보를 두르고 갈아놓은 가위로 혼자 머리를 다듬었다. 앞뒤로 거울 두 개만 놓았을 뿐인데 할아버지는 마치 남의 머리를 자르듯 사라락 가벼운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다듬었다. 할아버지의 이발 실력은 몇 달을 쉬어도 여전했다. 세면대에 고개를 푹 숙여 시원스레 머리를 감은 뒤 옷장에서 새 가운을 꺼내 입고 옷매무새를 만졌다. 냉장고에 요구르트도 채웠다. 종이컵을 가득 채우고 일회용 커피 박스도 새로 뜯어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TV를 틀어 뉴스 채널을 맞추고는 흥얼흥얼 노래까지 불렀다.

살짝 들뜬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마음이 안 좋았다. 얼른 집으로 가 벅벅 세수를 하고 숙제를 했다. 이상하게 구구단이 외워도 외워도 자꾸 헷갈려 더 짜증이 났다. 도연이가 벌컥 문을 열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작은 눈을 있는대로 크게 뜨고 호들갑까지 떨었다.

“준수야, 이발소 가 봤어? 할아버지들 진짜 많이 왔어.”

“흥, 여태 안 오다 왜 왔대? 배신자들.”

나는 화가 나 퉁명스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할아버지들 되게 웃기다.”

“뭐가?”

“가서 봐봐. 진짜 웃겨.”

도연이 말대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렸다. 할아버지들이 많이 오긴 온 모양이다. 빼꼼 이발소로 내려가 안을 들여다보니 할아버지들로 이발소가 북적였다. 거기에 짱구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할아버지들 모습이 모두 이상했다.

“내가 웃기다고 했지? 저 할아버지 얼굴 좀 봐.”

도연이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면도를 언제 했는지 희끗희끗한 수염이 얼굴을 반이나 덮은 할아버지다. 또다른 할아버지는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자라 귀를 반이나 덮은 장발이었다.

“이 씨가 안 깎아주니 머리가 엉망이야. 내 몰골 좀 봐.”

“나는 어떻고. 수염을 못 잘라 산신령이 될 판이라고.”

“내 텅 빈 정수리는 옆머리로 슬쩍 가려야 그나마 낫잖아. 아무리 비싼 돈을 주면 뭐해. 다른 데는 그런 센스가 없어서 머리를 다 망쳐놓는 통에 외출도 못하고 아주 혼났어.”

“그게 어디 돈으로 될 일이야. 이 씨 솜씨는 아무도 흉내 못 내지. 암!”

할아버지들은 전쟁 무용담이라도 되는 듯 서로 이야기 하느라 바빴다.

“내가 미장원이란 델 가 봤잖아. 아이고 나는 당최 남사스러워서 못 가겠드만. 보자기는 왜 그리 미끼덩대는지 원.”

짱구 할아버지의 말에 다른 할아버지들도 맞장구를 쳤다. 모두들 안부를 묻는답시고 괜히 들여다봤다가 덥수룩한 당신들 모습에 할아버지 마음이 불편해질까 봐 삼색등이 돌기만을 기다렸단다.

“오늘 삼색등이 뱅글뱅글 힘차게 도는 걸 보고 이젠 다 나았구나 싶어 달려왔지.”

“아이고 내가 뭐라고. 수시로 안부전화했으면 됐지. 그래도 나 믿고 찾아주니 다들 고맙네.”

할아버지가 겸연쩍은지 멋쩍게 웃었다.

“우리는 여기 아니면 안 돼. 그러니 다시는 아프지 말라고.”

“갈 데도 없이 집에서 마누라 눈치 보느라 좀이 쑤셔 혼났어.허허허.”

“그럼 그럼. 동구 이발소가 최고지.”

할아버지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 하자 할아버지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었다.

“이 친구들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기분이다. 오늘 이발비는 공짜네. 자, 차례대로 앉아. 동구야, 여기 요구르트 좀 내와라.”

내가 훔쳐보는 걸 할아버지가 알고 있었나 보다. 나는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

얼른 냉장고를 열어 시원해진 요구르트를 꺼내 할아버지들께 드렸다.

“저, 혹시 이발 될까요?”

그때 젊은 삼촌 한 분이 문을 빼꼼 열고 들어왔다. 왁자지껄 떠들던 할아버지들이 놀란 토끼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삼촌을 보았다. 서로 먼저 잘라달라고 아우성일 때는 언제고 선뜻 자리를 내주며 먼저 깎으라고 양보까지 했다.

“되고말고. 어서 앉아요. 그런데 낯이 좀 익네?”

할아버지가 삼촌에게 커트보를 씌워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몇 달 전에 여기서 머리 자르고 간 적 있어요. 그날 머리 자르고 갔더니 아내가가 잘 어울린대서 몇 주 뒤 다시 왔더니 문이 닫혀 있더라고요. 이발소가 확 바뀌어 다른 곳인 줄 알았어요. 저희 부부가 미용실을 하거든요. 제가 곱슬에 뒤통수가 납작해 어떻게 잘라도 스타일이 안 살아 늘 고민이었는데 사장님이 단번에 제 스타일을 찾아주셨어요. 아내가 기술 좀 배워오라고 어찌나 성화를 하는지.”

“스타일은 무슨. 사람마다 두상이며 머리카락 상태가 죄다 다르니 그에 맞게 자르는 거지. 나는 멋내기 이런 건 몰라. 그냥 바리깡이랑 가위로 맞춰 자르는 거지.”

“암만. 5억 짜리 이 씨 솜씨를 5천 원에 누리니 이런 호사가 또 어디 있으려고. 이씨 솜씨야말로 진짜 명품이지.”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사장님한테 한수 배우러 왔습니다. 사장님, 기술 좀 가르쳐 주세요.”

짱구 할아버지 말에 아저씨는 박수까지 치며 맞장구쳤다.

“허허허, 한수라니. 젊은이가 농담도 잘하는구만.”

쑥스러운 듯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바리깡을 든 할아버지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가볍게 잘린 머리카락들이 포올폴 날려 햇살 깃든 바닥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발소에는 한참동안 이야기꽃이 가득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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