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공부를 했을까
엄마의 삶에서 시작된 나
막연하게 글을 쓴다면 엄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엄마는 아래로 두 명의 이모와 막내 외삼촌이 있는 맏이였다. 늘 웃는, 순한 얼굴로 외갓집 가까이 살며 혼자 계시는 외할머니를 살피며 맏이의 삶을 사셨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지금과 다른, 날씬한 몸에 건강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결혼 전의 엄마의 사진을 어릴 적에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 이렇게 날씬했던 거야?"
"그럼. 원피스 입고 허리에 손을 착 대고 멋지게 찍은 사진이지? 너도 날씬하게 몸매도 유지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멋지게 살아."
엄마는 일찍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하셨다. 외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맏이인 엄마가 일찍 병원에서 일을 하셨다고 한다.
외갓집은 건축업을 하셔서 유복한 편이었으나 외할아버지 역시 그 아래 동생이 다섯이나 있는 장남이셨고 젊은 시절부터 몸이 약하셨다고 한다. 외갓집 오래된 앨범에서 본 결혼사진 속 할아버지는 엘리트 훈남이셨고 할머니 역시 너무나 고운 아기씨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병 수발로 곶감 빼먹듯 재산은 병원비, 생활비 등으로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병원에서 일하며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다고 하면 집에 잠시 와서 주사도 놓아드리고 다시 가고 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나는 네 할아버지가 아프다고 날 찾는 전화가 오는 것이 싫었어. 의사 선생님이 할아버지를 잘 아셔서 약을 주셨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어떤 날은 몇 번씩 진통제 주사를 놓거나 약을 드리는 일이 창피하기도 하고 무서웠어."
엄마는 결혼 후 방송통신고등학교와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니셨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 또래 여학생들이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고 하시며. 이모들도 직장을 다니고 막내인 외삼촌도 공부를 잘해서 대학교를 졸업 후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이 될 때까지 엄마는 맏이의 역할을 하느라 결혼도 먼저 하지 않으셨다.
둘째 이모가 먼저 의사와 결혼하고 부유하게 살게 되고 외갓집 식구들을 조금씩 더 챙길 수 있을 때 엄마는 결혼을 했다. 아빠는 응답하라 1988에 나온 봉황당 같은 시계집 청년. 여유는 있는 듯도 했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쯤 이미 장사는 잘 되지 않기 시작했는 것 같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면 위에 언니는 잘 살지 못한다더라. 그래도 이모들이 모두 잘 살고 서로 도와주고 사이가 좋으니까 얼마나 좋아."
그랬다. 우리는 형편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이모네와 삼촌은 더 잘 산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나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여자도 자신의 일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 '빙글빙글'노래가 나오면 신나게 춤을 추고 부끄럼이 없는 깨발랄한 아이였다. 늘 얼굴이 타서 까맣고 외동인 티가 나게 사랑도 많이 받은. 그때는 아빠차 타고 여행도 다 같이 다니고 그저 다 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점점 동네 시계금은방이 잘 되지 않고 하는 사업마다 잘 되지 않았고, 우리가 같은 골목 친구네 집 전세로 주택 2층에 살게 되면서 나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이모네와 다른 것과는 또 다른.
어쩌면 이때쯤부터 나는 하고 싶은 말도 속으로만 하고, 소리 내어 노래 부르고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는 조용히 책 보며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되었고, 어쩌면 정답이 딱 나오고 노력한 만큼 점수도 결과도 나오는 공부가 나에게는 가장 좋은, 배신하지 않는 친구였던 것 아닐까.
지금 나도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지만 덧셈뺄셈으로 힘들어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무릎 꿇고 구몬학습지 같이 만든 수학 연산 문제를 풀고 있는 나의 모습.
나도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잘하려고 했지만, 사실 엄마가 나에게 거는 기대와 단속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의 아들 또래일 때 연산이 잘 안 되니까 엄마는 회초리를 들고 무섭게 나를 가르치셨으니까.
"열심히 해서 자기 일을 해라."
그래서인가. 초, 중, 고등학교를 당연하게 다녔지만 지역에서 부러워하는 학군, 동네에 살면서 나는 하고 싶은 것 걸스카우트 활동, 학생회 활동, 피아노, 첼로 연주, 문화생활 등 할 거 다 하고, 공부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그런 착한 아이, 학생이 되었다. 이모들과 친척들이 늘 칭찬하고 기대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