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을 이어 붙이는 일

이직 고민 70%가 보여주는 경력 설계의 구조 변화

by KI Ki

최근 어느 설문에서 3년에서 5년 차 직장인의 약 80퍼센트가 지금이 이직할 타이밍이라고 답했다는 기사를 봤다. 연차를 넓혀 봐도 70퍼센트 남짓이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한 번쯤 스쳤을 법한 숫자지만, 다시 보니 눈에 걸리는 것은 비율 자체가 아니었다. 같은 질문을 십 년 전에 던졌다면 다수가 같은 답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머무르는 것이 기본값이고 떠나는 것이 예외였던 시절에서, 언제 떠날지를 계산하는 것이 기본값이 된 시절로 무게중심이 옮겨온 것이다. 숫자가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더 불성실해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력을 바라보는 전제 자체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다.


오래 통용되던 전제는 직선이었다. 한 회사에 입사해, 맡은 일을 익히고, 천천히 위로 올라가, 정년에 가까워지는 모양. 이 직선은 모두에게 익숙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굳이 설명되지 않았다.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은 강력한 신호다. 기본값은 원래 그렇게 조용하다. 그러나 그 직선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전제들, 이를테면 회사가 개인보다 오래 존속한다는 가정, 한 직무가 이십 년 후에도 같은 모양으로 남아 있으리라는 가정,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의 다음 칸이 언젠가 반드시 내 차례가 된다는 가정이 하나씩 흔들리기 시작하면, 직선의 바깥 풍경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다.


직선이 흔들리는 시대에, 경력은 직선이 아니라 조각의 배치로 설계된다.


요즘 자주 들리는 말 가운데 '커리어 모자이크'라는 표현이 있다. 경력을 직선이 아니라 조각조각 이어 붙이는 패턴으로 본다는 뜻이다. 어느 조각은 대기업에서의 실무 경험이 되고, 어느 조각은 작은 조직에서의 리더 경험이 되고, 어느 조각은 사이드 프로젝트나 전혀 다른 영역의 학습이 된다. 이 조각들은 미리 정해진 순서대로 쌓이지 않는다. 붙이는 순서도 방향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각 조각이 얼마나 크냐가 아니라, 조각들 사이에 어떤 그림이 생기느냐다. 떨어져 있던 두 조각이 붙으면서 새로운 모양이 드러날 때, 그게 그 사람의 경력이 된다.


이 관점이 주는 가장 큰 실질적 변화는, 이직이나 전환을 단절이 아니라 설계의 일부로 보게 된다는 점이다. 직선의 세계에서는 옮기는 것이 실패에 가까운 일이었다. 계획대로 가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자이크의 세계에서는 옮기는 것이 설계의 한 수가 된다. 이 조각 옆에 저 조각을 붙여야 그림이 완성된다는 판단이 서면, 옮기는 행위 자체에 죄책감이나 불안이 덜 붙는다. 그러나 모자이크에는 직선에는 없던 어려움이 따라온다. 완성된 그림을 누구도 먼저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선의 시대에는 다음 칸이 어디인지 회사가, 시장이, 선배가 어느 정도 알려줬다. 모자이크의 시대에는 그 역할을 본인이 해야 한다. 어떤 조각들을 붙일 것인가, 이미 붙은 조각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를 발견할 것인가, 다음 조각은 어느 자리에 놓아야 전체 그림에 기여할 것인가. 이 질문에 외부가 답해주지 않기 때문에, 모자이크는 자유의 이름이기도 하고 동시에 책임의 이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이직을 "고민한다"고만 말하고 실제로 옮기지는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옮기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옮긴 자리에서 다음 그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자이크의 관점에서 보면, 이직을 결심하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은 다음 회사를 찾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붙여온 조각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먼저 읽는 일이다. 조각이 많아질수록 이야기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된다. 그중 어떤 이야기를 더 두꺼워지게 할 것인지, 어떤 이야기는 지금 여기서 마무리할 것인지, 새로 붙일 조각은 어떤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조각인지. 이 질문들이 먼저 정리되어야 다음 조각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옮기고 난 뒤에도 여전히 같은 곳에 서 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이 변화는 난감한 뉴스다. 개인이 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조직은 더 이상 그 사람의 그림 전부를 그려줄 수 없다. 직선의 시대에는 회사가 그 사람의 커리어를 보증하는 대신 충성을 받았다. 모자이크의 시대에는 회사가 그 사람의 그림에 필요한 조각 하나를 제공할 뿐이다. 그 조각이 매력적일 때 사람이 오고,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때 사람이 떠난다. 붙잡아두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조각을 거쳐 간 경험이 그 사람의 전체 그림을 얼마나 두껍게 만들어줬는지가 유일한 기준이 된다. 좋은 조직은 그래서, 오래 붙들어두는 곳이 아니라 거쳐 간 사람들이 자기 그림을 더 분명하게 가지고 떠나는 곳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이직이 많아진 시대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요즘 사람들이 가볍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그 반대에 가깝다. 사람들은 자기 그림에 대해 더 일찍부터, 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직선이 알아서 답을 주던 시대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됐던 고민이다. 답이 외부에서 오지 않게 되자, 질문이 내부로 돌아온 것이다. 머무를지 떠날지는 표면의 결정이고, 그 아래에는 내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라는 조금 더 오래 걸리는 질문이 있다.


오늘은 이 질문을 조용히 남겨두려 한다.

지금까지 내가 붙여온 조각들 사이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다음 조각을 어디에 붙일 때
그 이야기는 가장 두꺼워지는가.

2026년 4월 18일 토요일

K1.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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