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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했다고

by 김똑띠 Feb 20. 2025

오랜만에 편지를 쓴다.
글씨가 무너지는 데에 오랜만이란 핑계를 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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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그다지 우러름 받지 못하는 것 같으나, 어찌되었든 교사라는 나쁘지 않은 자리를 받고 결혼도 하고 딸도 있고 건강하게 지내는 시절을 보내며 더욱 선명해지는 깨달음이 있다. 가진 것 없는 시절에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그러한 인연에 시절과 무관하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


두세 권의 책을 쓰고, 자식을 낳고, 결혼을 하고, 연인을 만날 수 있었던 사연은 분명 그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직장이 있고, 그 직장이 나름 괜찮고, 나 자신이 그곳에서 나쁘지 않은 평을 얻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소위 말하는 '경력'이란 것이 전무한, 그래서 후무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는 일어나기 어려웠을 일이다.


그러니, 가진 것 없고 이뤄낸 것 없을 시절에 나를 알아봐 주고 거둬 주고 믿어 준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보통은 부모가 그러하고, 친구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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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좋게도 부모, 친구 외에 한 분을 더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를 강사로서 거둬 주셨던, 대구 어느 학원의 원장님. 대학을 갓 졸업한 것도 아니고, 임용 시험에 여럿 낙방하였고, 스펙이랄 것도 없어서 이력서에는 달랑 '1종보통'만 써 놓았던 나를.


그런 나에게서 무엇을 보셨는지 모르겠으나 꼭 나랑 일을 같이 하고 싶다 하셨던 분. 그러고서도 내가 무엇무엇을 해 보고 싶다고 하면, 두 말 않고 "김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세요!"라 호쾌하게 말씀해 주셨던 분.

강사 일을 정리하고 창원으로 내려올 때에, 마침내 교사가 되어 떠난다는 기쁨보다도 학원을 뒤로하고 가야 한다는 죄송함과 송구함이 마음에 먼저 일었더랬다.


시절이란 참으로 원망스럽다. 이제는 입시도, 수학도, 수업도, 학생도 조금 알게 되었지만, 정작 그것을 드릴 수 있었던 때는 지나고 없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구르는 재주밖에 없는 단이를 보면서 가진 것 없던 나의 그 시절과, 떠나가는 나의 손을 잡고서 "혹시, 김쌤이랑 내가 더 오래할 수 있을 방법이 없겠나...?" 하며 속 아픈 말씀을 하시던 순간이 자주 떠오른다.


가진 게 없어서 드릴 게 없었고, 신뢰와 추진을 받기만 한 나로서는 죄송함까지 한가득 떠안아 창원으로 내려왔다. 대구를 떠나고 5-6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두세 번 학원 앞을 지날 일을 부러 만들었지만, 그중에 직접 뵈어 인사를 드린 것은 결혼 직전에 아내와 함께 찾아갔던 일이 유일하다.


몇 번은 학원 문을 열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었던지 학원 문이 닫혀 있어서 못 뵈었다. 5-6년 동안에 고작 두세 번만 찾아뵈었던 이유는, 글로 쓰지는 못할 어떠한 여운 때문이었다. 가난하여 가진 것 없던 시절을 보냈던 학원을 떠나서 내가 잘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드리기에, 과연 그런 모습을 보여 드려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아름다운 누구를 사랑하면 흰 눈이 아름답게 푹푹 내리는 법이지만,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아서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진심을 내어 주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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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그러한 수혜를 받은 사람이지만, 그런 나에게 정작 그리 할 수 있겠느냐 물으면... 모르겠다고 솔직히 답해야겠지. 할 수 있는 게 없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문자 그대로 마음이 가난한 이를 믿어 주고 기다려 줌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그리하여 오늘 편지를 한 통 썼다. 편지와 함께 책을 보낸다. 여전히 손가락 몇 번이면 목소리 들으며 전화할 수 있지만, 그래도 편지를 썼다. 굳이 전화가 아니라 편지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말은, 너무 쉬워서, 손으로 쓰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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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했다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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