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와인을 한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술이란 것이 어디 돈주고 배워가면서 마셔야하는 것이던가. 은근히 올라가는 취기에 기대, 심신의 빗장을 풀고 평소에는 꽁꽁 숨겨두었던 흥(?)을 사람들과 나누는 해방감을 즐길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술맛 같은건 아무래도 좋았고 주종이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다시 말해 나는 술보다 술자리를 더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대학원 시절, 유독 와인을 좋아하시는 교수님들이 많았다. 처음 입학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겸 학과 엠티로 떠났던 제주도에서 나는 술을 즐기는 방법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전세버스를 타고 어느 해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바깥에 펼쳐지는 풍경에 감탄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배경음악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러더니 일군의 선배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플라스틱 와인잔을 순식간에 나눠주는 것이었다. 얼떨떨하고 있는 사이 내 와인잔에는 레드 와인이 절반 정도 따라졌다. 나는 와인의 붉은 빛깔 너머로 제주도 해변 풍경을 겹쳐 바라보며 내 손에 주어진 알콜의 즐거움을 조금씩 맛보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잠깐의 '와인 타임'은 한 교수님의 지시였다고 한다. 반드시 그 해변도로를 지날 때 그 음악을 틀고 그 와인을 마셔야 한다고. 와인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모든 감각이 새롭게 셋팅되며 풍경과 와인과 음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순간의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술은 그렇게도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의 와인 지평을 열어준 두 분의 은사가 있다. 한분은 온라인으로만 만났지만 길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만인의 와인 선생님, Peter Koff 와인마스터 할아버지다. 언젠가는 캘리포니아든 어디든 Peter 할아버지가 계실만한 와인 시음회장에 가서 직접 만나 티셔츠에 싸인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Peter 할아버지는 와인마스터라는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유튜브 화면 넘어서까지 느껴지게 만드시는 분이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넘치는 와인 지식을 허세스럽게 자랑하거나 고오급 와인만을 찬양하지 않는 품위가 있다. 그는 와인을 어렵고 고급스러운 무언가로 포장하지 않는다. 어떤 와인을 논하든 그것이 얼마만큼의 가치(worth)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 가장 열중하신다. 그 가치라는 것은 가격이 아니다. 가격이 싸면 싼대로, 비싸면 비싼대로, 그만큼의 좋은 포도와 노력과 기술이 들어갔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가치에 맞는 가격대의 와인을 'quality wine'이라 부른다. 쉽게 말하면 '가성비 좋은 와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Peter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quality wine은 단순히 '가성비가 좋다'고 하기엔 2% 부족하다. 이 가격을 지불하고 '마실 가치가 있는 와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다보면 수십만원을 호가해도 사실은 그 정도까지의 가치는 없는 와인도 있었고, 2~3만원대이지만 10만원짜리보다 마실 가치가 있는 와인도 있었다. 비싸고 유명해서 좋은 와인이 아니라 포도의 가능성을 정직하게 담아냈기 때문에 좋은 와인이라는 배움은 와인에 대한 태도를 꽤 많이 달라지게 만들었다.
그런 Peter 할아버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신다는 와인 중에는 2014년 샤블리가 있다. 샤블리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서도 기후가 서늘해 샤블리에서 생산되는 샤도네이는 다른 지역의 것보다 산도가 높고 단맛도 적다. 그러면서도 쇼비뇽 블랑과는 다른 풍미가 있어 나 역시 샤블리 와인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때문에 최근에는 예전과 같이 날카로운 미네랄리티의 특징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며 Peter 할아버지는 연신 탄식을 하셨다. 하지만 그 탄식의 이유는 샤블리 포도들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포도의 맛이 예전같지 않으니 자꾸 샤블리답지 않은 인공적인 특징을 만들어 넣으려는 생산방식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표현에 의하면 '수백만원을 들인 새 오크통질' 혹은 '나무조각(오크칩)을 집어 넣는 짓' 같은걸 말한다. 그에 비해 2014년은 기후도 좋았고 생산자들이 샤블리 포도 본연의 잠재력에 집중하던 때였다는 것이다.
Peter 할아버지가 샤블리를 유독 좋아한다는걸 아는 아들들이 주류판매점에서 2014년 샤블리를 발견하면 늘 전화가 와서 "이게 가격이 얼마인데 살까요?"라고 물어보는데, 그럼 할아버지는 이렇게 소리치신다고 한다.
"2014년 샤블리는 무조건 사!!"
다른 한분의 은사는 나의 대학원 지도교수님이다. 대학원에서 배운 지식을 비중으로 따지면 전공지식보다 와인지식이 더 크게 차지할지도 모른다. 일회용 와인잔을 갖고 다니며 달리는 버스에서도 와인을 마시는 곳이니까 말이다. 몇해전부터 나 역시 여행을 갈 때면 꼭 휴대용 와인잔을 챙기고 있다.
풀타임 대학원생이 되어 연구실에서 가장 많은 노동시간과 가장 높은 충성도를 자랑하던 어느 날, 나는 그 노고를 인정받아 지도교수님이 본인을 포함해 단 3명만 초대한 어느 고급 술자리(?)에 참석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교수님은 좋은 자리에서 좋은 사람들과 마시려고 아껴둔 것이라며 와인 한 병을 꺼내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지 딱히 잘 모를 때였다. 우리 연구실 술자리는 시작했다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 와인도 인당 한병 정도는 준비해야 술이 모자라서 중간에 사러 나가는 일이 없었는데, 그런 자리에서 와인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리가 없었다. 똑같은 와인인데 아까보다 이게 낫다느니 하는 헛소리도 종종 나왔다.
하지만 이 와인은 달랐다. 일단 와인잔 가득 올라오는 풍부한 과일향에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달콤한 딸기향 가운데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한 모금 조심스레 맛을 봤는데, 정말 그때까지 마셔본 세상 어떤 음료보다 매혹적이었다. 술을 마시면서 "맛있다!!"라는 생각을 진심으로 한 것은 그 와인이 처음이었다. 와인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 향만 맡고 있어도 황홀했고, 같이 먹던 음식이 오히려 와인의 맛을 해친다는 생각이 들어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와인이 더 맛있게 변하는 신기한 현상을 목도했다. 향이 더 진하게 올라오고, 더 부드러워졌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 또한 처음 겪어보는 즐거움이었다. 이후로 유명하다는 와인, 비싸다는 와인도 가끔 마셔봤지만 그만한 감동을 주는 건 없었다.
문제는 시간이 흘러 그 와인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어도 교수님이 전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신다는 거였다. 나 역시 그때는 와인의 이름을 외우거나 사진을 찍어둘 열정은 없는 쌩 와린이(?)여서 아무 기록도 남겨두지 않았었다. 그나마 교수님이 겨우 제공해주신 단서는 에티켓이 푸른색인 이탈리아 피노누아라는 것, 그리고 밀라노 공항 면세점에서 사셨다는 것 뿐이었다. 정확한 정체를 알려면 언젠가 밀라노로 여행을 가서 푸른색 에티켓의 피노누아를 발견하면 무조건 먹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와인이 피노누아라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 나의 피노누아 집착증이 시작됐다. 그것이 얼마나 방대하고, 또 복잡한 미로 같은 세계란 것도 모른채. 온갖 지역의 피노누아를 다 마셔본 끝에 결국은 부르고뉴 피노누아가 가장 취향에 맞는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거기서부터 또 다른 미로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와인의 미로 속을 본격적으로 헤매기 시작한지 이제 만 8년 정도 되어간다. Peter 할아버지의 전문성과 지도교수님의 자본(?) 덕분에 적지 않은 종류의 와인을 접해보게 된 나는 어느새 남들보다 와인을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 돼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른다고 했던가. 한번도 돈주고 와인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이제 왠만한 와인리스트 앞에서는 쫄지 않게 된, 와인 추천해드릴까요 하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여유가 생기게 되기까지 그간의 여정을 한번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