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을 죽이는 곳에서 예술가는 태어나지 않는다

한국식 미술교육은 나를 예술가로 키우지 않았다

by 김진경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한국식 미술 입시라는 좁은 문을 다시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후회라기보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수많은 작가를 지켜보며 깨달은 ‘결론’에 가깝다.

입시 체계는 예술가를 길러내기보다, 이미 정해진 틀에 학생을 억지로 끼워 넣는 장치였다. 석고 데생의 명암 단계는 암기 과목처럼 수치화되었고, 수채화의 색은 배합표처럼 외워야 했다. 정물화의 구도는 정답지가 존재했고, 시도와 모험은 ‘감점 사유’로 기록되었다. 조금만 다르게 움직이면 “떨어지고 싶냐”는 말이 날아왔다. 사고는 합격의 방해물이었고, 순응은 기계적인 칭찬을 받았다.

그곳은 예술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산업화 시대의 공정처럼 ‘비슷한 그림’을 양산하는 시스템이었다.


정작 미대에 들어가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기대했던 기술과 노하우는 별로 없고, 막연한 크리틱만 남아 있다. “왜 그렸냐”, “뭘 말하려 하냐”, “이건 아니다.” 질문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평가의 선언이었다. 학생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교수 개인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통보였다.

입시에서 창의성을 꺾고, 대학에서 실험 정신을 다시 꺾으니, 그 사이에서 학생들의 자존감은 거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졸업 후에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는 학생이 드문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창작의 척추’가 그 사이에서 꺾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대 합격’을 삶의 최종 목표처럼 착각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필요한 건 유화 기법이나 판화 기술만이 아니었다. 철학, 미학, 심리학, 사회학, 글쓰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언어와 사유의 기반이 더 절실했다. 그랬다면 작업의 논리를 세우고, 예술사에서 내 위치를 찾고, 인간을 바라보며, 시대와 대화를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설명되지 않은 기교만 매달렸고, 의미를 고민하지 않은 채 그저 손만 바쁘게 움직였다. 예술을 기술과 동일시한 결과였다.


졸업 후의 현실은 더 냉혹했다.

갤러리는 인맥을 물었고, 공모전은 경력을 요구했으며, 기업은 실무 능력을 따졌다. 포트폴리오 제작, 자기 소개, 전시 기획, 세무, 가격 책정, SNS 운영까지 모두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 대학은 이 필수 요소를 단 하나도 가르치지 않았다.

한국의 미대는 학생을 예술가로 길러내지도 않고, 취업을 책임지지도 않으며, 졸업 이후의 생태계를 안내해주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스스로 찾아 헤매야 하는 광야에 학생들을 던져놓는 셈이다.


결국 깨달았다.

한국의 미술 교육 구조는 예술가를 키우는 생태계가 아니었다.

입시는 창의성을 잠재우고, 대학은 학생을 방치하며, 졸업 후 사회는 아무런 안전망도 제공하지 않는다.

재능 있는 아이들이 회의감을 느끼고, 뛰어난 감각을 지닌 이들이 방향을 잃고, 대부분은 작업을 완전히 접어버린다. 학교는 목적지가 아닌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그마저도 매력적이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다.

입시 대신 도서관과 미술관에서, 교수의 크리틱 대신 동료와의 대화에서, 대학 커리큘럼 대신 독학과 레지던시에서 배울 것이다. 창작은 누가 시켜줘서 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술 교육 시스템은 그 길을 열어주기보다 오히려 막아섰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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