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재활 수업에서 마주한, 엄마로서의 하루
지적장애 언어재활 시간,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이번 학기 과제로는 지적장애 아동의 자발화를 표집해서 발표하세요.
해당 아동의 언어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약 100개의 발화가 필요합니다.”
동기 선생님들은
지적장애 아동을 찾기도,
짧은 만남 안에 발화를 표집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나는 지적장애 아동을 찾는 것도,
그 아동에게서 100개의 발화를 표집해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나는 지적장애 아동과 매일 같이 눈을 뜨고, 같이 밥을 먹으니까.
그 아이는 나에게로 태어나서
그 작고 힘든 일생을 모두 나와 함께한 나의 딸이니까.
그리고 과제 발표 시간,
나는 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한 대학원생의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결국 보인 것은 지적장애 아동과 소통하려 애쓰는 엄마의 일상이었다.
사실,
100개의 발화는 아이와 나의 하루를 통째로 꺼내놓는 일이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가 하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어서
스무고개 하듯 묻고, 또 묻고, 다시 묻는 일.
아이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그 의도를 끝까지 따라가는 일.
그건 과제가 아니라
내 삶이었다.
발표가 끝난 뒤,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 선생님 한 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발표를 듣다가 눈물이 날 뻔했다고.
아이와 얼마나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느껴졌고,
그걸 용기 있게 대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나의 삶이 힘들어 보여서 뭉클했지만,
그와 동시에 멋진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힘들지, 저는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지만
사실 나는
조금 고단하고, 가끔은 버겁고, 때때로 두렵다.
특히 아이의 말이
끝내 내 귀에, 마음에 닿지 못할 때는 더욱.
일주일이 지났다.
그 선생님이 편지와 함께 백문백답 책 한 권을 선물해주셨다.
편지는 두 장이나 되는 분량이었다.
나와 아이를 향한 응원으로 가득한 글이었다.
그 편지에는
“나래쌤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
책은 많을 것 같아서 글을 쓰는 책으로 골랐어요.
글을 읽는 모습도 잘 어울리지만,
글을 쓰는 모습도 잘 어울려요.”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고맙다고,
열심히 써보겠다고 말하자
그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 백 번째 질문에 대한 답까지
완성하고 사진 찍어서 보내야 해요?”
나는 꼭 그럴게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날 바로 새 펜을 샀다.
그리고 하루 만에
백 개의 질문 중 세 개에 답을 썼다.
세 개를 쓰고 다시 읽어보니
모두 장애 아이를 키우며
내가 깨달아온 이야기였다.
이 글은
나를 응원해준 선생님에게 보내는
첫 번째 인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