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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하 Jan 07. 2023

4.16 민주시민교육원, 우리가 지켜야 할 이름의 무게

경인일보 수요광장 

안산에 있는 대학에 임용되던 2017년, 안산은 내게 세월호의 도시였다. 단원고등학교는 지척에 있었고, 희생 학생들의 고등학교 선후배나 동기, 형제자매들은 우리 대학의 재학생이거나 신입생으로 여전히 대학에 입학하고 있었다. 캠퍼스의 4월은 조용했다. "기억하겠다"는 애도도, "진상규명하라"는 분노도 없었다. 몇몇 학생들이 세월호를 호명하여 수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세월호 관련 다큐를 함께 시청하기도 했고, 세월호가족협의회 사무실 컨테이너를 칠하는 페인트 봉사를 다녀오기도 했으나 그것은 소수 학생들과의 작은 이벤트일뿐이었다. 손목의 노란 팔찌를, 가방의 노란 리본 고리를 더 이상 서랍에서 꺼내지 않게 된 것처럼 조용한 4월의 캠퍼스를 반복하며 '어떻게', '왜'와 같은 질문도 무뎌졌다.


250명이 공부한 2학년 1~10반 교실
11명의 선생님 교무실 그대로 복원


올해는 세월호 참사 8주기였다. 4.16민주시민교육원은 2016년 4.16 안전교육시설 건립을 위한 협약 이후로 여러 난항을 헤치고 5년만에 개원됐다. 교육원 내부에 복원한 단원고 4.16 기억교실 이전을 두고도 여러 혐오표현이 오갔으나, 돌아오지 못한 250명의 학생들이 공부한 2학년 1반부터 10반까지의 교실과 돌아오지 못한 11명의 선생님이 근무한 교무실의 책상, 의자, 칠판, 게시판은 물론 문틀, 창틀, 창문 등의 기록물이 그대로 복원되어 희생 학생 부모들의 해설을 통해 기억되고 있다. 4.16민주시민교육원은 사회적 참사에 대한 당연한 애도와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가 어느덧 정치적 진영싸움이 된 시대에서 공감과 기억, 참여와 연대로 나가는 민주 시민의 역할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지난 9월 시작하여 11월 마무리된 4.16민주시민교육원의 프로그램 '청시민의 눈'도 그런 프로그램 중 하나다. 단원고등학교 학생 15명이 참여했고,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와 멀티미디어디자인과 학생 10명이 멘토로 참여한 강좌였다. 고등학생 3명과 대학생 멘토 2명이 조를 이루어 혐오와 차별이란 주제로 4주간 토론을 했고, 토론결과를 영상으로 4주간 제작하여 마지막 주차에 5개의 조가 5개의 영상작품을 발표했다. 차별과 배제가 담긴 일상적 언어들, 장애를 지니거나 내향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배려조차 공감없이 진행될 때는 선량한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발견, 261명의 희생자를 낸 단원고등학교 선배들과 선생님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에 대한 문제제기, 기울어지는 세월호 속에서 자신들의 삶의 유사성을 찾아낸 이야기 등 8주간의 시간들은 고스란히 질문이 되어 세상에 말을 건넸다. 참여한 학생들은 처음으로 시선을 인식하게 되었다고도 말했고, 어떤 말들은 편견과 모멸을 노골적으로 담고 있다는 걸 인식했다고도 말했다. 그런 인식들이 서슴없는 행동이나 발언들을 머뭇거리게 했다고도 말했다.

여전히 어떤 이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부끄러움 없이 자행되고 있다. 158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은 이 비극적인 순간에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 가장 마지막의 방법으로 이동권을 요구하는 지하철 4호선의 아침에도, 이슬람 사원 건축 공사장 앞에 놓여진 돼지머리의 잔혹에도 함께 울고 분노하고 위로하는 대신 작지만 끈질겨서 큰 혐오와 모멸은 여전히 입 밖으로 당당히 튀어나오고 언론은 이를 기어이 증폭해 낸다.

학생들 '청시민의 눈' 프로그램 참여
한 글자씩 또박또박 새긴 말 인상적
'당신은 어떤 시선으로…' 문구 움찔

4.16민주시민교육원, '청시민의 눈'에 참여한 학생들이 만든 영상 말미, 검은 바탕에 흰 자막이 한 글자씩 또박또박 새겨지며 던졌던 말은 인상적이었고 움찔했고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당신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신가요?",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서로 다른 영상의 각기 다른 엔딩이었으나 결국 이런 우리를 향한 무겁고 슬픈, 혹은 절박한 읊조림이다.

내년이면 안산에 온 지 7년이고 세월호참사는 9주기가 된다. 4월의 캠퍼스는 여전히 조용할 것이다. 4.16민주시민교육원은 청시민의 눈을 통해 지역의 학생, 청년, 교사, 학부모, 시민을 만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란 자조와 비난 대신 조용한 캠퍼스의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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