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하 Jun 23. 2023

'말' 할 수 있다는 권력

안산뉴스 


김명하 (민교협 회원,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매일 내 자리를 나 대신 쓸고 닦는 자유관 2층 청소노동자는 오늘도 연구실 쓰레기통을 비우고, 강의실과 복도, 화장실을 쓸고 닦습니다. 학생 없는 방학이라고 손이 쉬는 것은 아닙니다. 교직원은 단축 근무를 해도 파견직 청소노동자는 빈 학교 이 곳 저 곳을 쓸고 닦습니다. 캠퍼스 여러 곳에 정돈된 휴게공간이 있지만 그들을 위한 곳은 아닙니다. 깨끗하게 쓸고 닦을 수는 있어도 커피 한 잔 마시며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청소노동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건물마다 한 곳, 가장 낙후한 곳이기 쉽습니다. 화장실 옆이거나 지하거나 창이 없거나, 벽이 낮거나, 지나치게 협소하거나. 청소노동자는 어디에나 있지만 그들이 휴식하는 장소는 일상의 시선으로부터 숨겨져, 배제되어 있는 공간이기 쉽습니다. 청소는 필수 노동이지만 지저분한 쓰레기와 냄새를 견뎌야 하는 일입니다. 일의 특성이 노동의 가치로 전복되며 쓰레기, 냄새는 직업 자체가 됩니다. 그렇게 청소 노동은 일상에서 삭제해야 할 일로 취급받습니다. 일상은 흠결 없이 깨끗해야 하지만, 청소는, 청소노동자는 사회에서 투명해집니다.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이 역겹습니다.” 업무 중 사망한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건을 두고 서울대학교 학생처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 “피해자 코스프레”, “역겨운”. 이 세 단어가 한 문장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과중한 업무, 업무와 관련 없는 모멸적 평가는 당신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기에 어쩌면 비현실로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표준이나 평균으로 현실을 이해할 당신에겐 이런 죽음과 모멸이 영화나 소설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됐을 수도 있겠습니다. 모멸 받지 않는 것, 죽지 않을 환경에서 죽지 않을 정도로 일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고려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설명하고 설득하고 허락받아야 할, 그러면서도 과도한 욕망이나 탐욕으로 취급받는 일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아마도 비슷한 일로 모멸 받았다는 증언, 혹은 목격했으나 진술하지 못해 힘이 되지 못했던 말들이 한 번에 발화되었겠지요. 사회학자 정희진씨는 “고통 자체도 상처지만, 말하는 것은 그보다 더한 상처다. 그래서 말한다는 것은 묘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개입하고 헌신하는 실천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개입해서 실천이 되는 행위는 이미 무언가에 고통받고 모별 받은 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당신과 달리, 비슷한 사건이 터졌을 때에야 그 고통과 모멸에 기대어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행위는 결국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좌표와 사고방식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어떤 말에는 이미 말하는 사람의 권력이 작동됩니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약자나 타자가 아니라 가해자나 권력자에 대한 비판으로 만들어진 단어이지, 고통받고 모멸 받는 이들을 다시 숨죽이게 하는 권력의 언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당신과 나의 처지가 어떻든 간에 우리는 누군가의 양보, 배려, 희생으로 여기에 설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비애는 당신을 탓하거나 당신을 공격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비애로움은 분노해야 할 일이 아니라 슬퍼하고 위로하고 그 비극으로 다시는 같은 비극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할 실천의 다른 말 아니겠냐고, 이미 주어진 기득권으로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저작권자 © 안산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작가의 이전글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정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