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둘째 아들 출산 후 사람이 그리웠다. 지역카페에서 [ 15년 양띠 엄마들이 모임] 가입하고 만나게 되었다. 동생들 만나서 육아 고민을 이야기하니 좋았다. 계속 듣고 있으니 '언제쯤 끝나지... 피곤한 내색을 하면 동생이 실망하겠지? 흔틀어지지 않게 온신경을 다해서 집중을 했다. 신경을 쓰다 보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누워서 한참동안 있었다. 사람을 장시간 만나면 에너지가 빠지면서 지쳤다.
한 해가 지나가고 다시 찾아온 12월 호프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날 남편도 늦게 오고 아이들이 잠을 안 잤다 그래서 1시간 정도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동생들이 볼은 붉어진 상태였다. 빈 의자에 앉아 한 살 많은 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데.. 대각선에 앉은 동생이 나에게 손짓하면서 뭐라고 말했다. 무슨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달라는 말이었다. 동생은 웃으면서 말했다."언니는 착한 거예요? 아님 미련한 거예요?." 순간 잘못 들었나?.. 했는데.. 날카로운 말에 심장에 찔려서 아팠다. 여러 명 모인 자리에서 그런 말 들으니 기분도 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목구멍에서 말이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말하면 분위기 망치겠지.. 술 취해서 한말일 거야.' 아무 말 못 하고 집으로 갔다. 씩씩 ~ 이불킥을 날리는데 분이 풀리지 않았고 결국 새벽이 되었다. 새벽에 문자를 보낼까 말까 고민했다. 내 감정이 상했는데도 동생 감정을 살피고 있는 내가 바보처럼 느꼈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붙잡고 용기 내서 문자를 보냈다. "어제 눈치 없이 행동해서 미안하다." 띵동 하고 답장이 왔다. "언니가 착해서 좋아요.." 내 감정을 솔직하게 보내지 못했다. 동생은 지금 내가 화가 난 상태인지도 모르고 있다. 혼자 끙끙대다가. '연락을 하지 말아야지..' 관계에서 멀어지기로 했다. 그 계기로 문제점을 찾고 나를 바꾸기로 했다.
[문제 ]
타인 감정을 살피다가 내 감정을 살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도 고갈이 되고 타인의 삶을 따라가는 살았다. 타인을 존중과 배려를 하는 데 나 자신에게 그러지 않았다.
© lauren_317, 출처 Unsplash
나를 보호하는 경계 울타리를 짓기로 했다. 울타리를 짓고 나서 내 안에 감정을 살피고 행동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가벼워졌다. 사람들과 만남시간이 길어지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말하거나.. 짧은 시간 만나도록 했다. 안으로 돌리니 내 안에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상대방에게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말하는 연습을 말했다. 기분이 나쁘면 예전에 참았다.. 이제는 부정적인 감정도 자연스럽게 말한다. 처음에 이래도 되나..?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다 보니 말할까 망설여졌다. 상대방보다 내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도 서서히 나를 배려하고 존중했다. 전에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니 상대방의 말의 강도 세지고.. 잘못된 행동인지 인지를 못하게 된다.
감정은 표현을 해야 한다.
그래야 감정의 찌꺼기도 남지 않고.. 서로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왜 동생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했을까?. 매일 10분 명상, 글쓰기, 등.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넥플렉스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내용 - 엄마가 어린 시절 아이를 고아원에 잠깐 맡겼던 내용) 주인공은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과거에 내 이야기 같아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4살 때 아빠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키워야 해서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가셨다. 그때 친정할머니께 남매는 맡겨졌는데 매일 눈물로 눈을 뜨고 축축하게 베개가 젖어 있었다. 머나먼 우주에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살았다. 내 안에 두려움의 원인을 알고부터 감정에 솔직하게 표현하게 되었다. 지금 어린 시절 내가 아니고 마흔한 살 두 아이의 엄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 안에 이해하지 못한 행동에 원인 알고 나니 지금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