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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병의 무게

by 감사렌즈

“소주는?”

아버님이 물으셨다.
우리 부부는 서로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아버님께 소주 한 병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오늘은 미처 챙기지 못했다.
그 순간, 백숙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절인 깻잎에 싸 먹으니 그 맛이 괜찮았다.
다행인지, 아니면 더 씁쓸한 건지 모르겠다.
백숙은 분명 맛있었는데,
마음 한구석은 자꾸만 불편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아버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휴지 좀 줘라.”

첫째가 건넨 휴지를 받아 든 아버님은
조용히 일어나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문을 나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시는 오라고 하지 마라.”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버님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실 게 뻔했다.

모처럼 오신 자리였다.
소주 좋아하시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것 하나 챙기지 못했다.

사실, 머릿속은 온통 딴생각으로 가득했다.
반찬 걱정, 시험공부,
회사에서 잘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생각들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날 밤,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 마음이 줄다리기를 했다.

‘소주 한 병 못 챙길 수도 있지.
한 번쯤은 이해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다가도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모처럼 오신 자리였는데,
좋아하시는 소주 한 잔 곁들여
도란도란 저녁을 나눴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괜히 불편한 마음만 남게 됐잖아.’

나는 안다.
부모님께 잘해야 한다는 걸.
하지만 늘 그러지 못한다.
정작 내가 힘들 때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의지하면서도,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 휩쓸리면 부모님 생각은 금세 뒷전이 된다.

그게 늘 마음에 걸린다.
아버님이 남기고 가신 그 한마디가
오늘도 마음속에 남아 무겁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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