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를 위한 쓰기교육의 문제

- 작가 유시민의 눈으로 본 이오덕선생님 이야기를 담아

by 박진환

브런치는 300일이 넘는 동안 AI를 돌려 내게 계속 연락을 했다. 당신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어서 글을 쓰라고. 지난 한 해, 나는 이곳에 글을 써야 할 까닭을 찾지 못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버티기에 바빴다. 나이 오십 중반을 넘어서는데도 나는 그렇게 헉헉 거리며 살고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나를 돌아봤다. 몸은 낡고 늙어가는데, 머리와 눈은 예전 같지 않는데, 여전히 내 생활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이 브런치 글쓰기의 주제인 '어린이 글쓰기의 세계'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곧잘 만났다. 그들은 왜 읽어야 하는지 보다 어떻게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큰 사람들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요즘 유행하는 '메타인지'라는 용어를 써서 독자를 끌어 들이거나 기능화된 학습지로 어린이를 훈련을 시키는 글쓰기를 마치 당연한 것처럼 세상에 내 놓는다. 더구나 대형 출판사들은 '위기의 문해력'을 앞세워 책을 파는데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교육현장에 뚜렷한 대안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글쓰기를 제대로 경험하거나 학습하지 못한 부모와 교사들은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로 편집이 잘된 책과 문제지와 같은 교재를 어린이들에게 건네주는데 급급하다. '메타인지'를 강조하는 글쓰기 서적과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는 서적은 글쓰기의 목적을 학력향상과 경제적인 성공에 맞추고 있다. 그러나 실제 교사들의 수업에서 언어감각이나 읽기 경험이 앞선 학습력 있는 어린이들 말고는 그런 서적들이 실제로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교사와 부모를 현혹시키는 논리와 단호하고도 단정적인 제안과 사례가 책 판매에는 도움을 줄 지언정 글쓰기에 정작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들에게는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오늘도 글쓰기는 국어수업에서나 학교교육에서나 수학만큼이나 난공불락일 뿐이다. 그래서 난 수학교육에서 쓰이는 '수포자'를 글쓰기교육에서도 요즘 쓰곤한다. '쓰포자'라고. 이미 많은 아이들이 쓰기를 포기했는데, 이것에 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는 보기 힘들다.


어린이 글쓰기에 대한 이런 문제는 기본적으로 언어에 대한 우리들의 공부와 학습이 부족하고 비과학적인 교육방식이 관행이 되고 그것이 마치 절대적인 것인양 여전히 가정과 학교에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경쟁적 받아쓰기가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언어학습을 시키는 유일한 도구가 되어 왔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교육방식이지만, 이것에 대한 성찰이 제대로 된 적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요즘 1학년 국어교육과과정이 낱자와 낱말의 발음중심지도 방법과 의미학습중심의 총체적인 언어 지도 방식의 절충이 되고 있지만, 이런 내용을 교사들과 보호자가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교과서가 이런 흐름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도 않다. 우리네 초등교육 어디에도 과학이 잘 보이지 않고 탄탄한 경험과 실천을 이론화 시킨 결과를 공유하고 있지도 않다. 현실이 이러니 어린이 글쓰기 교육을 초등학교에게 맡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시대는 바뀌었다. 막연히 '독서는 습관이다', '반복해서 읽고 쓰면 독해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만 했던 경험연구는 이제 낡은 주장일 뿐이다. 이제는 인간 게놈지도가 만들어지고 읽고 쓰는 사람의 활동이 인간의 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밝혀낸 연구들이 조금씩 혹은 빠르게 나오고 있다. '독서하는 뇌는 없다'고 한 언어학자 스티븐 핑거, '원인과 결과가 바뀌었다며 기능을 익혀 언어를 익히는 게 아니라, 의미를 위한 읽기와 삶과 이어진 읽기가 사람의 언어능력을 신장시킨다'는 주장을 편 또 다른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도 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읽기에 대한 비밀을 밝혀 내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책 읽는 뇌>를 펴내고 곧바로 <다시, 책으로>를 펴낸 읽기와 뇌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큰 반향을 일으킨 메리언 울프는 '양손잡이 뇌'를 키울 것을 강조하며 종이책과 디지털매체의 유기적인 호환을 염두한 만남을 이제 학교와 가정이 나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메리언 울프가 추천한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저자 나오미 배런은 지난 20여 년 간 세계 각국의 학생들을 대항으로 실시한 연구와 뇌연구를 바탕으로 읽기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뇌가 어떻게 읽는 지에만 멈추지 않고 읽기를 통해 인간이 얻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밝혀내려 하고 있다. 그는 경제적 성공을 위해 학생들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학력 향상을 위해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세속적인 교육관과 방식에 반대한다. 언어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오고 발전시켜왔던 훌륭한 도구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읽기와 쓰기는 진정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사람의 삶을 가꾸는데 쓰여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제 우리네 교육도 이런 지점에서 언어교육의 철학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단지 언어기능을 학습시키고 단련시키는데 멈추지 않고 어린이에게 자기 삶을 돕는 도구로 머리과 가슴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언어교육, 나아가 글쓰기의 본래 목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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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철학과 가치, 그리고 방버을 이미 오래 전부터 강조하고 가르친 분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분은 바로 이오덕선생이다. 지난 1월, 나는 오랜만에 다시 이오덕선생님을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글쓰기를 공부하는 교사도 아니었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전문가도 아니었다. 초등교육과 한참 멀었고 국어교육의 전공자도 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다 아는 유명인이었고 한동안 방송도 많이 나왔던 이였다. 그의 이름은 유시민. 그는 내가 속한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겨울 연수를 찾아주었다. 강의시간 20여분을 앞두고 등장한 그를 보자 구름처럼 그의 곁으로 몰려드는 교사들만으로도 그의 유명세는 충분히 증명이 되었다. 하지만 더욱 큰 감동은 그의 유명세가 아닌 이름도 아닌 그의 강의였다. 사실 그를 우리 연수에 초대한 까닭은 이미 오래 전에 펴낸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때문이었다. 나 또한 그의 책이 나오자 마자 그 시절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내가 존경하는 이오덕선생을 뜻밖에도 그가 극찬을 했던 것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단지 많이 팔렸을 뿐이다. 훌륭한 책은 아니다. 문장을 책도 아니다. 나는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 쓰기》를 읽고서 뒤늦게 깨달았다. - 64 -


'말이 글보다 먼저다'라는 이오덕 선생의 이론을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이다. 글을 때도 번역을 때도, 말하듯이 쓰는 것이 좋다. - 115 -


어떻게 하면 잘못 글을 알아볼 있을까?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텍스트를 소리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만약 입으로 소리내기 어렵다면, 귀로 듣기에 좋지 않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못나고 흉한 글이다. 이런 글을 읽기 쉽고 듣기 좋고 뜻이 분명해지도록 고치면 좋은 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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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그림과 다를 것이 없다. 보이는 것에서 시작해서 귀로 듣는 것을 거쳐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적으면 된다. -229 -


헌법재판관들과 헌법연구관들이 우리말 공부를 제대로 하면 좋겠다. 그들이 쓰는 결정문은 시대의 정신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 쓰기》백신 구입을 강력 추천한다. -216 -


그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예로 들며 인류는 신체 대신 언어를 발달시켜왔으며 안 보이는 것을 얘기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했다. 종이책의 시대를 거쳐 디지털 시대를 목도하면서 더욱 더 우리 모국어에 대한 가치가 더욱 중요해졌다고도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시대에 모국어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도록 돕는 이를 그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기 전 삶을 가꾸는 글쓰기교육을 설파한 이오덕선생을 끄집어 내었다. 그는 이오덕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언급하며 '말이 글보다 먼저'라는 대원칙을 글쓰기에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글쓰기는 가장 쉬운 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이오덕선생의 글쓰기 대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즉 내가 쓴 글이 듣기에는 자연스러운지, 뜻은 뚜렷한지 자연스럽게 밝혀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리내어 읽어보는 글고치기 작업이 필요하고 했다. 자신도 한동안은 이오덕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소리내어 읽어 글을 마감하고는 했다고 했다.


글은 말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이 묻어났을 때라야, 살아 있는 글로 가치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 말이 가진 리듬이 글에도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말의 리듬을 가로막는 지점에 일본어, 한자말, 미국말과 같은 외래어가 있다고도 했다. 이런 지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비판한 분이 바로 이오덕선생이라는 것이다. 그의 생각의 바탕에는 이오덕선생의 글쓰기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어린이의 말은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다. 반대로 어른들의 말은 쓸데 없는 외래어와 비속어들이 자리잡아 뜻이 안 통하거나 발음이 어렵다. 이것을 글로 읽었을 때는 더욱 도드라진다. 우리글을 우리말에서 가져오고 우리말이 가진 리듬을 살려 냈을 때라야 비로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자 이오덕선생으로부터 배워 몸에 담아 놓은 큰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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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가 쓰는 말과 글에 너무도 당연히, 그리고 너무도 많이, 그리고 너무도 무심하게 쓸 데 없는 토씨와 수동문이 가득하다며 이런 떼를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글에는 힘이 생기고 리듬이 생기면서 경쾌하다고 했다. 그는 강의 끝에 이오덕선생을 '세종대왕의 가장 충실한 제자'가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글보다 말이 먼저이고 누구나 글은 쓸 수 있고 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강의를 들으며 새삼 이오덕선생의 가르침을 고마움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 시대에 맞는 '삶을 가꾸는 이오덕선생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겼다. 오래 전부터 해 온 고민이기는 했지만, 작가 유시민의 강의를 계기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당장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오랜만에 쓴 이 지루한 글을 마무리 짓기 위해 난 앞서 언급한 나오민 배런을 다시 소환하고 싶다. 그의 주장을 빌면, 읽기의 목적이 입시나 취직을 위한 도구로 쓰이지 않아야 하듯, 쓰기도 쓰기를 위한 도구로서 교육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읽기와 쓰기가 그동안 인류에 봉사해 왔듯, 읽기와 쓰기가 어린이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철학과 방법을 이제 우리는 이오덕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다시 주장하고 실천해야 한다.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로 메타버스를 들먹이고 다양한 기법으로 기능을 학습시키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강요하기 전에 정작 글쓰기가 어린이들에게 왜 필요한지를 각인시켜야 할 일이다. 유시민은 그의 책 <글쓰기 특강>에서 글은 사는 만큼 쓸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살게 할 것인지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는 먼저 어른이 잘 살아야 한다. 교사와 부모가 잘 살며 좋은 책을 권하여 읽게 하고 그 과정에서 읽기에 관심을 보이며 자기 살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쓰기의 필요성과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 이것이 글쓰기 교육의 가장 큰 출발점이어야 한다. 잃어버린 어린이들의 삶을 되돌려 주는 글쓰기. 이 지점에서 나도 다시 출발하려 한다. 이를 위해 지난 일 년간 침묵했던 내 글쓰기도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살 것이다. 아니 잘 살 것이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어린이도 자기 삶을 사는 만큼 글로 쓰게 할 것이다. 글이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애쓸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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