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길이 보지 않아

(2023. 12. 18.) 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12

by 박진환

어느 덧 벌써 다음주면 종업식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이제 점점 글쓰기에 재미를 들이고 있다. 본디 학년을 거듭할수록 어쩌면 일찍부터 공교육 아이들은 글쓰기를 싫어하지만, 적어도 우리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생각하는 싫어하는 아이가 주인된 삶을 살아갈 리가 없는데도 목소리 크고 자기 주장만 잘하거나 경험만 많이 하면 그렇게 살 거라 믿는 것은 결코 과학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다.


겪은 일을 일기라는 형식에 담는 걸 아이들이 좋아하는 까닭은 교사가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삶의 이야기를 나눠주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이들은 교사와 부모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교사와 부모, 꾸준한 책 읽기, 이런 것이 모두 삼위 일체가 됐을 때, 비로소 좋은 글이 나온다. 우리 1학년들은 지난 1년간 이 삼위 일체가 잘된 학년이었다.


물론 이 삼위일체 중에 하나가 빠진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어긋나고 비틀어져도 결핍된 삶을 글로 쓰고 그것을 들어주는 교사가 있다면, 읽기가 부족해도 채워주려 애쓰는 교사가 있다면 그나마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갈 수 있다. 지난 6월부터 시작한 북스타트 운동에 불같이 참여하던 각 가정의 모습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을까?


북스타트 운동을 거산에서 한 까닭은 생각하는 아이로 자기 표현을 잘 하는 아이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읽고 쓰는 힘이 바탕이 되는 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경험이나 체험을 많이 해도 그것을 말로도 글로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라기는 너무도 어렵다. 그걸 학교만 하기 어려우니 가정에서도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AI 시대에는 더욱 더 생각과 감성이 넘친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된다고 한다. 복잡한 일을 기계가 대신해주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과 감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미래 인류의 생존방식이라는 거다. 그럴려면 생각하는 아이, 표현하는 아이로 키우는 게 학교교육의 절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런 바탕에서 AI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게 거꾸로 가면 결코 우리 아이들은 생각하는 아이나 표현하는 아이가 되기 어렵다.


세상이 자꾸 첨단 기기 사용법을 배우지 않으면 마치 도퇴될 것처럼 몰아가지만 흔들리지 않고 가야하는 교육의 지점에는 우리 아이들이 정말 생각하고 사는 아이인지, 감성이 풍부한 아이인지, 그래서 표현을 잘 할 줄 아는 건강하는 아이인지 알아채고 부족함을 채워주고 도와주는 교육이 행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의 논리와 결합한 각종 기기를 보급하는데만 혈안이 돼 있는 정부와 교육청의 AI 교육은 무척이나 걱정이 된다.


정부는 무조건 보급을 앞세워 일을 하는 티를 내고 교육청과 학교는 뚜렷한 철학업이 그걸 수행하는데 급급하고....결국은 격차를 벌여 피해를 입는 대상은 학생일 수밖에 없다. 말로는 미래를 대비한다고 하지만, 결코 아이들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교육정책은 내일을 살아갈 아이들을 힘들게 할 뿐이다. 도무지 어디가도 답을 찾기 힘든 세상이 돼 가고 있다. 경제상황은 악화일로에 있고 서민들은 빚더미에 쓰러져 가는데, 언제든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세상, 기후위기로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정말 내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일지.


아이들 글쓰기로부터 AI교육을 넘어 사회경제와 기후위기까지 넘나드는 생각이 흐르는 대로 쓰는 글은 여기까지 하자. 오늘의 글쓰기 '주제어'는 '맑다'였는데, 요즘은 도무지 맑아 보이는 곳이 없다. 참으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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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날씨: 반짝반짝 거리는 눈이 하늘에서 내렸다.

제목: 우리 아빠 수염은 고슴도치 수염


아빠가 엄마한테

"이틀동안 면도 안 했더니 노숙자 됐어."

라고 말하자 아빠가 수염을 만졌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어디? 어디? 나도 만져볼래."

라고 말했다. 아빠 수염은 스트레스 받은 고슴도치 관장(동화 목기린씨 ,타세요! 등장인물)의 곤두선 가시 느낌 같았다. 그래서 '우리 아빠 수염은 고슴도치 수염'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 노래를 엄마, 아빠한테 들려줬더니 깔깔깔 웃었다.

나는 그 노래가 재밌어서 콧노래로 계~~~~~~속 부르고 다녔다. 그리고 '우리 아빠 방귀는 지독한 방귀'라는 제목으로 2탄을 만들려는 계획이다. 선생님도 기대해주면 좋겠다.(거산초 1학년 한**)


날짜: 2023년 12월 19일 일요일

날씨: 하늘에서 밀가루처럼 고운 눈이 펑펑! 스노우볼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제목: 소파 선장


우리 집에는 선장이 있다. 선장하면 남자인데 여자다. 배를 이끄는 선장이 아니다. 선장은 누구냐면 엄마다. 나는 놀 때마다

'으악! 바닥이 바다가 되었어. 소파로 가자!"

그런데 엄마는

"야, 소파 좀 옮기자."

"으악~! 어푸, 누가 나 좀 살려줘!"

소파 선장은 군대를 버렸다. 그런데 엄마 덕분에 더욱 재미있다. 잠깐 아빠는 먹기 선장. 나는 놀이선장. 와~ 어떻게 선장끼리 가족이지? 그럼 선생님은? 혹시, 개그 국어선장? 히히 재밌다. 하아~암. 졸려~.

"엄마, 아니 선장님! 잘래요."(거산초 1학년 도**)


날짜: 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날씨: 눈이 안 녹을만큼 춥다.

제목: 내가 잘못했나?


오늘 엄마가 전기장판 위에서 쉬자고 했다. 그 땐 내가 책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어서 전기장판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엄마가 이불 정리를 한다고 나한테 비키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비키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화를 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이 생각이 스쳐 나갔다. '내가 뭘 잘못했지?' 그리고 기분이 나빠서 내 방으로 갔다. 기분이 나빴다.(거산초 1학년 이**)


날짜: 2023년 12월 16일 토요일

날씨: 눈이 펑펑 내렸다. 나는 눈이 좋다.

제목: 완벽한 하루


나는 일기를 쓸 때 고민할 때도 있다. 눈이 많이 온 것? 언니, 오빠랑 놀았던 것? 코코아 마셨는 것? 눈사람을 만들다가 눈덩이가 부서진 것? 8호집 간 것? 8호집 가서 군고구마 먹은 것? 즐거운 일이 너~~~~무 많을 때는 고르기가 힘들다. 한 번에 다 쓰고 싶다. 하지만 그럴 때는 정말로 완벽한 하루다. 일기 쓸 때는 고민되지만 고민이 될수록 완벽한 하루다. 오늘은 완벽한 하루다.(거산초 1학년 **람)


날짜: 20023년 12월 16일 토요일

날씨: 오늘은 눈이 왔다. 첫 눈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 눈이 반가웠다.

제목: 힘쎈 눈과 약한 창문의 싸움


오늘은 함박눈이 내렸다. 그래서 오전이랑 오후 때는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했다. 재미있었다. 밤이 되자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창문을 보았다. 그런데, 힘이 쎈 눈이 힘이 약한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그런데 창문에 약간 물이 있었다. 눈이 너무 세게 때려서 울고 있나 보다. 창문이 너무 불쌍했다.


"구름선생님! 눈이랑 창문의 싸움을 말려주세요. 안 그러면 햇빛 원장선생님이 불같이 화를 내서 창문은 물론 눈까지 울지 몰라요. 누가 좀 눈이랑 창문의 싸움을 말려 주세요."(거산초 1학년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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