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환 Apr 18. 2024

오늘은 참 좋은 날인 것 같아

(2024.4.18.)

아침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다른 버스에 태워 천안 학생교육문화원 대공연장으로 향했다. 다른 학교 아이들과 뒤섞인 상황에서도 나를 놓치지 않으려 눈을 떼지 않는 아이들, 내 손을 서로 잡으려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장 앞에 섰다. 기념촬영 한 컷을 찍은 뒤에 화장실로 안내하고 곧바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15분 전 들어온 아이들은 그 시간도 견디기 어려워 하며 언제 시작하냐고 난리다. 마침내 공연은 시작하고 우리 반에 딱 두 명의 여자 아이 사이에 앉아 나도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오늘의 공연은 장애를 극복한 대표적인 인물인 미국의 여성 '헬렌 캘러'에 대한 이야기였다. 


공연 내용은 5학년 이상의 학생들에게 어울리지만, 뮤지컬 자체를 즐긴다는 점에서는 모든 어린이들이 함께 할 수 있었다. 내 옆에 앉은 두 여자 아이는 배우들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신기해 하며 바라보고 웃었다. 


"선생님, 근데 헬렌 켈러는 말을 못하는데, 어떻게 노래를 해요?"

"음...헬렌 캘러가 마음의 소리를 내면 저렇게 할 거라 생각하고 만들어 배우가 노래를 부르는 거야."

"아~"

"그런데 아까 저 사람은 헬렌 캘러 아빠였는데, 교장으로 나와요?"

"아, 그건 연극이나 뮤지컬은 사람이 모자랄 때, 한 배우가 여러가지 역할도 하거든."

"아~"


이런 대화 말고도 우리 1학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 오줌 마려워요."

"선생님, 추워요."

"선생님, 배 고파요."

"선생님, 언제 끝나요?"


이랬다. 그럼에도 끝날 때는 박수를 신나게 쳐 준다. 헬렌 캘러. 우리는 보통 이 분을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인물로만 한때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분이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였으며 사회운동가였는지는 잘 모른다. 심지어 사회주의자를 선포하고 미국 당국의 감시까지 받았던 사람이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1950년대를 거치던 시절에도 그는 당당히 여성의 인권과 사회주의 관점에서 노동자의 정당한 인권을 외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분이었다. 오늘 뮤지컬에서도 이런 지점이 살짝 드러났었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 <헬렌앤미>라는 뮤지컬이었다. 장애인을 다룬 뮤지컬이라 수화통역사가 극에서 함께 했고 무대 상단에는 자막이 처리가 되었다. 연극 중간 중간 극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있고 퇴장할 수도 있었던 독특한 공연이었다. 


작품을 다 보고 버스를 다시 타고 학교에 도착해 막 급식실로 가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지점에서 우리반 준*가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소리를 친다.


"야, 오늘 정말 좋은 날인 거 같다. 그렇지?"


오늘 아이들 말로는 공부를 하지 않는 날이었지만, 그랬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점심 먹고 인사하고 마무리 지으려는 때, 우리반 지*이가 울먹이며 내게 하소연을 한다. 


"선생님, 내가 지금 오니까 점심놀이시간 다 끝났어요."


오늘 지*이는 아침밥을 먹지 않고 왔다며 맛난 미역국과 밥을 세 번이나 갈아치웠다. 그러니 안 그래도 부족한 점심식사때 노는 시간을 즐길 수가 없었던 것. 내일은 적당히 먹고 일찍 와서 놀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훌쩍 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에효,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 한다. 참 좋은 오늘의 기록은 여기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왜 김치가 없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