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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n 14. 2024

이 악동(?)들을 어찌할 것인가?

(2024.06.14.)

'이 귀여운 악동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떠올린 하루. 말썽을 피우던 그렇지 않던 이번 아이들은 구석구석 기가 찰 만큼 귀엽기가 그지 없다. 물론 그런 녀석들 12명을 대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오늘 더하기 빼기에 관한 간단한 정리를 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교과서 덧셈 뺄셈의 맨 마지막 문제는 그림을 보고 더하기 빼기 문제를 만들어 보라는 것. 애당초 무리가 있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떤 결과와 반응을 보일 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두루두루 살피는데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더하기를 할 때 같은 종류의 개수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 이를 테면, 벌과 나비가 같이 나는 종류가 있으면 같이 묶어 더하기를 해도 좋은련만, 달걀과 벌을 같이 센다던지, 닭과 달걀을 더한다던지 하는 것. 덧셈의 합이라는 측면에서 문제될 것은 없는데, 뺄셈에서는 곤란한 지점이 있었다. 이를 테면, 연못 속 일곱마리의 개구리와 막 튀어 나오는 개구리가 있었을 때, 총 9마리에서 2마리가 튀어 나왔으니 연못에 남은 개구리는 7마리 인셈.


이걸 참고로 빼기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는데, 아이들은 흰 달걀 5개와 갈색달걀 3개를 단순히 5-3=2로 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영 다른 종류를 빼거나. 제일 재밌었던 것은 흰 닭 6마리에서 갈색 달걀 1개를 빼서 6-1=5라고 한 녀석이 있었다는 것. 어찌나 웃기고 귀엽던지. 빼기가 같은 종류나 비슷한 종류의 총 개수에서 일부를 빼는 것으로 인식해야 했지만, 아직 이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지점에 있는 문제였다. 아이들 문제라기 보다는 1학년 1학기에 이런 수준의 문제를 제시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보기 그림 전체에서 일부를 빼내는 것을 이해하는 아이들에게 복잡한 그림을 제시하고 거기서 같은 종류의 총 개수에서 일부를 빼게 하는 개념을 정리 문제로 제시하는 것 자체는 그리 마땅치 않아 보였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아이들 상태를 알 수 있었다는 점과 아이들의 문제 해결과정이 너무도 귀여워 웃음이 터져 나와 꽤나 흥미로운 수학수업시간이었다. 이 과정 이후에는 어제 수학놀이였던 '더해도 좋아 빼도 좋아'를 주사위를 굴려가며 신나게 즐겼다. 있는 그대로의 개수에서 빼고 더하는 문제에 익숙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정도가 딱이다 싶었다.


오늘은 우리 학교에서 '거산 북스타트 학생교사 선포식'을 한 날이기도 했다. 책 읽는 문화 확산을 위해 지난해 지원가정을 중심으로 집에서 부모와 책을 규칙적으로 읽는 문화와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과정을 연수를 거쳐 추진했는데, 꽤나 호응이 컸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는 다소 미미했으나 올해 다시 또 시작해 보는 그 첫걸음을 내딛였다. 이제는 가정 뿐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각 교실에서 시작하기로 한 것. 단순히 10분 책읽기 개념이 아니라, 교사가 책을 읽어주고 교사도 함께 읽고 고 스스로 읽는 과정을 거치며 책 읽는 문화 확산으로 문해력 향상과 생각하는 어린이로 자라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오늘 선포식.


모든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며 모든 교사가 참여해 약속하여 함께 책을 읽어가는 시작을 우리 1학년도 함께 하여 좋았다. 각자 다짐도 해보자 할 때, 1학년 아이들이 손을 들고 나와서 짧게라도 다짐을 해주어서 더 고마웠다. 그렇게 선포식을 마치고 잠깐 뒷정리를 하고 교실로 들어가자 역시나 난장판. 오늘은 중간놀이를 나가지 않고 교실을 지켜야 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약속을 잊고 나가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맞춰 들어오지도 않아 시간을 내어 주의를 주었다. 앞으로 당분간 아이들을 다잡아 나가야 하는 시점이 된 것 같았다. 자유로움 속에서도 지켜야 하고 약속한 것을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나눠야 할 것으로 보였다.


어제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한 아이가 싸움놀이를 하자고 제안(본인은 경찰놀이라고도 했다는데, 아무도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없었음) 하여서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되어 서로 몸을 부대끼며 놀다가 한 아이가 꼬집게 된 것. 서로 몸을 부대끼고 툭툭 치면서 놀다가 세게 꼬집게 되자 자신들이 한 일은 까맣게 잊고 한 아이가 꼬집은 것만 드러나게 된 것. 평소에 친구들에게 손을 자주 대는 아이여서 이런 오해는 커졌고 다들 똑 같은 공범(?)이면서 한 아이만 주목 받게 되는 결과를 낳은 이 사건을 다시 돌아보면, 흔히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인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 주의를 주고 조심하라 했지만, 이 정도는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어찌 아이들이 '싸움놀이'를 제안하고 그렇게 할 수 있냐고 어른들은 생각하겠지만, 이 나이 또래 아이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모른다. 물론 어른들이 알게 되고 다툼이 있어 주의를 주어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 스스로 조절을 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시시비비를 가려 어른의 기준으로 개입을 하게 되면 그냥 가볍게 친구들끼리 다투어 가며 때로는 즐기며 놀 수 있는 상황을 막아버리고 제안하게 돼 관계를 인위적으로 어른들이 비트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정말 아이들의 세계를 더 이해하고 들여다 보며 돌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을 요즘 어른들은 인정하지 않기에 일반학교에서는 곧바로 학폭으로 민원이 되고 처리가 되어 별 것 아닌 것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범법 행위라는 어른들의 잣대로 처리돼 아이들의 자정 능력을 떨어 뜨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아닌 것은 아니라도 주의를 주되, 결국에는 스스로 문제의식과 경계의식을 깨닫게 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다투었던 꼬맹이들이 내가 뭐라고 하자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야, 너희들 조금 전에 싸웠던 애들 맞아? 왜 이렇게 지금은 웃고 친하게 난리야."

"애들이 싸울 수 있죠. 이렇게 싸우다가도 친하게 지내요. 걱정 마세요."


정말 입이 살아 있다는 게 맞는 아이들. 싸움놀이를 했다고 해서 나는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을 나는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 수준의 싸움놀이라는 게 어떨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부모님들은 아마도 내 아이 말고는 잘 모르는 탓에 걱정이 앞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이 지점에 대한 논의를 다음주 보호자 다모임 때 하나의 주제로 삼아 올려 놓으려 한다. '악의도 없고 딱히 큰 잘못도 없는 이 악동(?)들을 어찌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오늘도 그냥 지나가지 않은 103일째 만남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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