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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n 24. 2024

개구리랑 같이 사는 아이들

(2024.06.24.)

대학 동문 선배 중에 교대를 졸업한 뒤에 부산에 발령을 받았다가 나중에 홀로 경남 밀양으로 전근을 오셨던 이승희선생님이 있다. 한국글쓰기연구회에 활동을 하시며 이오덕선생님의 글쓰기 철학에 따라 아이들을 지도하고 계셨던 분이었다. 당시 밀양에 있었던 나는 처음에는 내가 나중에 갔던 작은 학교 '단산'에 계시며 <할머니, 나도 이제 어른이 된 것 같다>라는 아이들 글모음집을 펴냈셨더랬다. 그 다음 전근지이자 생활터전을 마련한 상동면 상동초등학교에 가셔서는 그 아이들이랑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라는 시모음집을 펴내시기도 했다.


그 중 시집 제목이기도 하고 상동초 어린이가 쓴 시는 이렇다.


자전거가 좋은 개구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려는데

자전거 페달 위에

개구리가 있다


손잡이 왼쪽에도 있다

개구리가 딱 붙어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할 수 없이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


지난해 아이들은 사마귀에 그렇게 빠져 들어 살았는데, 이번에 아이들은 4월 지렁이와 5월 도마뱀에 이어 이달에는 개구리에 꽂혀 산다. 오늘 아침도 8시 50분 차량이 도착해 5분 이내에 교실로 들어와야 하는 게 정상인데, 5분이 지나고 오지 않아 무슨 일인지 먼저 들어온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개구리 보느라 바쁘단다. 학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교실이 아닌 학교 주변 이제 막 올챙이를 벗어난 개구리들을 찾아다니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나는 속으로는 웃으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 잔소리를 했다. 아침에 교실로 바로 들어오지 않고 딴 짓 했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 표정은 아침부터 상기된 표정으로 가방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으며 방금 보았던 개구리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얘들아, 저기 개구리 있었던 거 봤지."

"나는 그 옆에도 있는 거 봤어."

"새끼 개구리였는데, 너 나중에 거기 또 가볼래?"

"어, 같이 가자."


"가긴 어딜 가!"


어떻게 해서든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나는 아이들 다그치며 차를 한 잔 마시게 하고는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천효정의 동화 <콩이네 옆집이 수상하다>였다. 첫 편이 너무 짧다고 잔소리를 해서 두더지가 나오는 2편까지 읽어주고 나서야 오늘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 수업은 '겨울별 이야기' 선 그림 마지막 편. 달팽이를 그리는 시간이었다. 조금은 서툴고 여전히 쉽게 완성이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재밌다는 아이들 때문에 8편의 작품을 그릴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이보다 좀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를 품으로 오늘 마무리를 했다.


이후로는 지난 주 배운 4단원 비교하기 단원을 교과서와 익힘책으로 정리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유독 이번 교과서와 익힘책은 교사가 일일이 설명을 해주어야 하거나 난이도를 넣은 문제들이 많아 까다롭기도 하고 지도하는 교사로서 살짝 짜증이 난다. 아이들의 언어 발달 정도가 이 시기에 '길다, 짧다', '넓다, 좁다', '많다, 적다'를 읽고 쓰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이 글자를 쓰는 걸 뺐다는 것에 비추어 너무도 많은 글이 뒤섞여 있어 아이들도 가르치는 교사도 힘이 든다. 이번 시도는 좀 실패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이래저래 그럭저럭 마무리를 짓고 국악시간을 끝오로 오늘 하루도 마무리를 지었다.


아이들과 인사를 마치고 돌려 보냈는데, 현관을 나가서 1학년 아이들이 올챙이를 잡았다는 00 곁으로 몰려 들어 한참을 가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장 방과후 시간이 됐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 뒷모습들이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사진으로 찍어 두지 못하고 빨리 방과후 교실로 가라고 재촉만 한 게 아쉬울 정도였다.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온 게 아니라, 개구리랑 하루 종이 같이 사는 아이들과 나는 113일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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