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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n 25. 2024

그럼에도 그럼에도

(2024.06.25.)

지난주부터 수업만 마치면 몸이 축 처지고 급 피곤해진다. 이제 닳기 시작한 걸까. 하긴 40대대 후반부터 닳아지고 있다는 생각은 늘 들었지만. 무리하지 않고 하려고 요즘 책도 덜 읽고 잠도 정량은 자면서 충전을 하려 했는데, 이제 지쳐 가는 걸까. 그럼에도 오늘 수업은 꾹꾹 채워 달려 갔다. 오늘 첫 수업은 윳놀이였다. 지난주 하지 못한 윷놀이를 하려는데, 꽤나 모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윷놀이 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아이들 대 나의 대전으로 시작을 했다. 돌아가면서 큰 윷을 놀리며 즐기는 아이들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음시간이 연극이라 1대1 상태로 끝났는데, 빨리 결승전을 하자는 빗발치는 요구를 겨우겨우 막아내며 다음시간을 준비했다. 연극시간에는 몸짓으로 흉내내는 말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며 놀이형식으로 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귀여운 몸짓으로 '엉금엄금', '성큼성큼'을 표현하는 아이들 표정은 사뭇 진지하기도 하고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들이 가득했다. 연극은 또 다른 사람의 언어다. 아이들의 또 다른 표현도구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싶다. 이렇게 경험을 꾸준히 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지 싶다.


다음 시간으로는 'ㅇ'을 배우는 시간. 이제 거의 끝자락이다. 목소리, 목구멍 소리로 일컫는 'ㅇ'은 이미 홀소리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만난 글자라 익혀가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곳은 닿소리 공책에 'ㅇ'이 들어가는 글자를 말하는 시간. 너도 나도 아는 글자를 이야기 하는 아이들이 반가웠다. 특히 한글 익히기에 한창인 00가 몇 글자를 손을 들며 소리칠 때는 정말 기뻤다. 00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웃는 00의 표정이 어찌나 밝던지, 아직은 더 연습이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안정이 될 가능성이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 이렇게 한 발 한 발 가면 되지 뭐.


5교시에는 여유가 생겨 아침에 채 다 읽어주지 못한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주인공 콩이가 소문으로만 떠도는 괴물(?) 혹은 생물체를 떠나며 만나는 동물들의 이야기. 오늘은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 씨이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청개구리의 삐닥한 말에 큭큭 거리며 마땅치 않아 하는데, 우리 반 곳곳에 숨어 있는 청개구리들은 마치 자신은 그렇지 않은 듯 모른 척한다. 난 그 모습이 더 웃겼다. 또 시간이 남아 아침에 하지 못한 결승전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는데, 막 진행하다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세상에 나의 상대편이던 두 여자아이가 자신들은 지금부터는 선생님 편을 하겠다는 것. 안 된다고 해도 자꾸 내 곁에 와서 내 응원을 한다. 아무래도 남자들과 한 편을 먹는 두 아이의 심정이 그래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나 뒤늦게 생각해 봤다. 다음에는 그 두 아이를 내편으로 먹어서 대항전을 해 보는 놀이도 해 봐야겠다 싶었다. 


하, 오늘은 퇴근 뒤 출장이 이어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겨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벌써 한 밤 중이 되었다. 뒤늦게 일기를 쓰다보니 순간 멍해진다. 이제 한 달 밖에 안 남았다. 좌충우돌, 우여곡절이 가득했던 넉 달을 겨우겨우 넘어간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해야 마무리 지을 일은 잘 해야 그 다음이 보이니, 아직 손을 대충 놓을 때는 아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가자.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114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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