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환 Jun 27. 2024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2024.6.27.)

"선생님, 오늘은 왜 늦었어요."


오늘 조금 늦게 학교에 도착을 했더니 중앙계단에서 친구들 맞으러 기다리던 준*우의 첫 마디가 이랬다. 반가운 인삿말에 꼭 안아 주었다. 교실로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틀고 차를 끓일 포트에 물을 담고는 마치 일찍 온 듯 아이들을 맞이했다. 오늘도 <콩이네 옆집이 수상하다>라는 동화로 시작했다.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인 이야기. 오늘 드디어 정체가 밝혀졌다. 아이들은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개미'. 개미의 정체를 알게 됐는데, 그 개미의 집에 초대돼 방문하는 생쥐 콩이의 이야기는 내일로 미뤄졌다. 이야기를 즐기는 아이들이 참 보기 좋았다.


오늘 첫 시간은 수학이었다. 4단원 비교하기 단원의 평가를 주로 하게 됐는데, 아이들의 읽기능력과 문제해결상황을 곧바로 이해하게 되는 소득도 있었다. 전반적으로는 나쁘지 않은데, 연습은 더 필요한 상태.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조금은 앞서가는 경향이 있어 이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에서 신경을 더 써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됐다. 이번 아이들의 속도는 늘 생각하지만, 지극히 정상이다. 자연스럽게 한글을 만나고 학교에 들어와서 익히고 듣고 말하고 내가 읽어주고 생각하고 이런 과정에서 활자에 친숙해지고 있다. 그런데 수학교과서와 단원평가에는 수많은 글로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힘든 문장과 어려운 말들이 있으니 읽기가 부담스럽고 생각하는 게 피곤한 상태. 이런 상황에서도 차근차근 아이들과 해결해 나가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모습도 보인다. 어쨌든 가정에서는 북스타트를 시작했고 나도 2학기부터 본격적하게 될 것 같고 꾸준한 문장공부와 읽기 유창성을 기를 것이고 쓰기도 함께 갈 것이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번 경우가 나한테도 큰 경험이 될 듯하다. 특히 이런 학습 과정에서 아이들의 눈과 표정, 말과 행동에서 좀 더 알게 되는 지점도 보인다. 우리반 재*이는 중간놀이를 하고 싶어 죽겠는 아이다. 그런데 당장 오늘 풀어야 할 수학문제를 힘들어하며 멍하니 있거나 도와줬으면 하는 눈치로 시간만 보냈다.


그러다보니 나갈 시간은 됐지만, 해결하지 못해 중간놀이를 즐기지 못한 상태가 됐다. 전에는 투정부리고 안 하고 고집부리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얼굴을 찌푸렸지만, 나가고 싶은데 나가지 못한 불만은 있지만, 자기가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은 하는 표정이 섞여 있었던 것. 그제야 내가 도와주며 함께 문제를 풀어갔는데, 결국에는 나가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방금 해결하지 못한 걸 풀어낸 것에 기분이 나아진 듯 보였다. 학기 초와 달라진 재*이의 모습이 오늘 눈에 확 들어왔다. 이뿐인가? 지*이도 훨씬 밝은 얼굴로 여전히 삐딱한 자세이지만충실하게 수업과정을 따라온다. 안 되면 안 되는 거라 여기고 불만을 재기하기 보다 스스로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돌아서는 모습이 보인다.


나 또한 그런 아이들 마음이 보이면서 훨씬 가벼워졌다. 이 둘은 그래서 그런지 헤어지기 전에 모두 나를 안아주고 갔다. 재*이는 "도사선생님, 나 선생님 좋아하는 거 알죠?" 하고 말하고 안고 뛰쳐 나간다. 내 마음을 알아준 두 녀석에게 오늘은 참 고마운 날이었다. 지난 넉 달의 피곤이 싹 달아났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잠시 노는 시간을 주었을 때, 나는 아이들 책상을 닦았다. 오늘 색종이 접은 것을 풀로 붙이는 작업 때문에 풀이 딱 달라 붙어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 그렇게 한창 딱다 마지막으로 재*이 책상을 닦는데, 예*가 너무도 재밌는 말을 건넨다.


"아, 선생님 거기는 닦지 마세요."

"왜, 이거 니 책상 아니고 재이 거잖아."

"재*이가 풀 붙은 데를 손으로 문지르니까 이렇게 동글동글해져서 만지기 좋다고, 선생님 안 볼 때 가지고 놀 거랬어요."

"뭐야? 하하하."


애들 참 귀엽다. 풀똥으로도 놀고 싶어하는 마음이라니.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아이들이 자리를 자기 맘대로 바꿔 앉고는 나를 부르더니 뭔가 바뀐 게 없냐 한다. 그러고 보니 자리를 바꿔 놓은 것. 그래서 모든 아이들에게 자리 바꾸는 거 어떻겠냐 하니 자기들끼리 의논해서 바꿔 앉았다. 4월부터 한 자리로 계속 그렇게 왔는데, 아이들이 오늘 짝궁도 자리도 바꿨다. 재*이랑 예*주는 처음 짝이었는데, 그때  제*이가 예*주 불편하게 해서 따로 떼어 놓았기도 했는데, 요 녀석들이 그때 이야기 하며 서로 웃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옆에 앉는다. 그래 서로 알게 되고 익숙해지니 마음도 달라졌구나.


오늘은 좀 더 아이들을 읽어낼 수 있는 날이었다.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게 116일째 만이었다. 기분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