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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l 03. 2024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

(2024.07.03.)

뭔가 확 넘어간다는 생각이 안 들어 살짝 조바심이 나지만, 그럼에도 달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두 시간을 보냈다. 분명히 주문을 했을 거라 생각했던 물품이 교실에 없어 결국 오늘 수업은 수학으로 대치해야 했다. 어제 10 이상의 수에서 아이들이 많이 헤매던 모습이 생각나 오늘 도 한 번 더 연습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연산의 출발점이 다른 아이들이 섞여 있다. 이미 머리셈이 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손으로도 원활하게 연산을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아이들도 있다. 배운 것을 익혀 사용하기 보다 이미 익숙한 순서대로 수를 세는 방법을 선택해 피곤함을 덜어내려는 아이도 있다. 아울러 배웠지만 빠르게 잊고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아이도 있고 무난하게 내 수업을 따라주는 아이들도 있다. 격차와 층위가 다른 아이들을 한 데 모아서 수업을 개별으로 혹은 집단으로 해야 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오늘도 우리 반 아이들이 이 층위와 격차를 모두 보여주었다. 문제는 이 격차와 층위를 보여주는 풍경이 1학기 내내 이어지고 있다는 것. 개별 전화상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빠르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보니 처음에 언급한 대로 살짝 조바심이 낫던 게 사실이었다. 오늘은 어제 구슬판과 달리 에그블록으로 문제를 해결했는데, 처음에 아이들이 모으기 방법 중 10을 만들어 푸는 것에 낯설어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 구슬판으로 나름 익혔다고 했지만, 구슬판 한 줄에 10개의 구슬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지 못한 탓도 있었던 것 같았다. 구슬판과 에그블록이 같은 모으기 방식을 택했지만, 받아들이는 상황은 매우 달랐다. 구슬판이 어설프게 만들어져 불편한 탓도 있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에그블록에 이르러서야 조금은 편하게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10을 모아서 남은 수를 읽어내는 방법을 몇 번에 걸쳐 하자, 우리반 수*가 갑자기 소리를 쳤다.


"선생님, 수학이 재밌어졌어요!"


우리 반은 수학교구를 좀 다양하게 쓰는 편이다. 난 다양한 교구를 통해 조작활동에 대한 감각을 높여 나가길 바랐지만, 때마다 아이들이 편하게 다루고 익히는 교구는 따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학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구슬판을 밀고 있지만, 아직 나도 서툰 탓인지 교구가 정밀하지 않아서 그런지 우리 반 아이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은 에그블록으로 바꾸어 했는데, 어쩌면 이게 아이들에게 맞았던 것. 수학교구도 그해 아이들에게 맞는 것을 찾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년 아이들은 이 교구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중에는 전체 아이들이 이 에그블록으로 모이기 활동에 재미가 들리면서  아이들 입에서 또 한 번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이거 재밌어요. 또 해요."


그래서 다음에는 내가 내 준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직접 문제를 만들어 해결해 보는 것도 해보았다. 아이들은 재밌다고 또 하자고 난리였지만, 시간은 거의 다 되었고 이제 마무리를 짓자고 했다. 다음 시간은 가르기. 가르기로는 또 어떤 반응일지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이후 시간은 국어시간. 오늘은 겹모음 'ㅐ,ㅔ,ㅖ,ㅒ'를 배우는 시간. 이 글자를 낱자로는 처음 배우는 한 아이는 한동안 낯설어했지만, 이내 적응을 했다. 왔다 갔다 다시 잊고 다시 익혀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나중에 'ㅘ, ㅝ, ㅞ, ㅙ"도 익혀가며 새로운 글자에 아이들은 적응을 해 갔다. 이 과정에서 '시계'라는 노래와 '개똥벌레'라는 노래도 배우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점심시간.


점심시간 뒤에는 공으로 던지고 받기 연습을 했다. 투호도 준비해서 나눠서 시작을 했는데, 흥미로운 건 단순한 공 던지고 받기에 꽤나 오랫동안 재밌어 하며 즐겼다는 것. 역시나 1학년이다. 처음에 무엇을 할지 안내를 했을 때만 해도 지*이가 "재밌을까?"했었는데 말이다. 본인이 정말 더 즐겼다는 것. 이렇게 해서 오늘 하루도 마무리를 했다. 배움은 아이들 입에서 터져야 그게 진짜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침묵은 배움 자체를 알아낼 방도가 없다. 오늘 아이들 입에서 터져 나오고 스스로 해보겠다고 더 해보겠다고 했던 수학시간. 조바심이 자부심으로 바뀌던 시간. 만날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오늘은 우리 아이들과 만난 122일째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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