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아직은 내 게는 덜 추운 날씨. 담주나 돼야 영하로 본격적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담주 목요일에는 생태체험 겨울놀이도 해야 하는데...잘 적응할 수 있겠지? 사실 예전에는 더 추운 날에도 아이들은 바깥에서 놀았다. 그 아이에 나도 끼어 있다. 손등이 덕지덕지 갈라지고 부르터도 지금보다 외투나 이런 것이 빈약할 때에도 많은 아이들은 겨울철 바깥에서 놀았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때때로 춥다고 나가지 않으려 한다. 우리 학교에 보호자들이 자녀를 보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안전'을 뽑았다. 일반 학교와 다르게 다툼도 덜하고 돌봄과 배려, 기다림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이런 문화가 좋기도 하지만, 학교가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지 '안전'쪽에 무게를 두게 되면 그 다음이 문제가 된다. 중학교는? 고등학교는?
우리 반 아이들의 상당수는 추우면 난방을 틀어달라고 하고 더우면 겨울인데도 뛰어 놀다 들어와 땀 난다고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한다. 견디고 참는 법을 잃어가는 아이들. 안전한 공간에서 그들이 산다고 해도 결국에는 혼자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기후변화로 더더욱 어떻게 해서든지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일이 벌어지게 돼 있다. 누가 언젠까지나 돌봐 주지 않는다.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곳이 오히려 우리 학교인 것이다. '안전'이 아니라, '도전'이어야 하고 '배움'의 의지를 높이는 곳이어야 한다. 체험으로 즐기려는데만 목적을 두어서도 안 된다. 체험 자체에 목적을 두게 되면 아이들은 '배워야 하는 까닭'을 모르고 졸업을 한다. 체험이 목적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고 의지를 높여 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누구에겐가는 '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오늘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누구는 늦게 들어와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또 그러고 자라는 것이다. 점점 세상의 아이들은 안전한 곳에서만 자란다. 빈부격차에 따라 물론 차이는 있다. 많이 가지지 못한 가정의 아이들은 결핍이 일상이다. 결핍의 일상은 아이들을 단련 시키는 게 아니라 피폐화 시키고 일찍부터 좌절을 겪게 한다. 좌절은 분노를 낳고 사회문제가 요소가 된다. 많이 가진 가정의 아이들이나 풍족한 일상을 보내는 아이들은 또 그 아이들대로 결핍이 없으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늘 어른들에게 기대는 삶을 살게 된다. 안전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자녀를 틀 안에 묶어두고 가정과 학교, 학원을 뱅뱅 돌며 성인이 된다. 그 안에서 성장은 매우 협소할 수밖에 없고 사회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모습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오늘은 아이들의 일상을 보며 이런 생각들이 마구 떠올라 몇 자 적어 보았다.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가득한 세상. 두려움과 걱정, 불안이 늘 상존하는 세상. 과연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게 하려면 우리 부모와 어른들은 어떤 노력과 공부를 해야 할까?
오늘은 아이들을 만난지 264일째 되는 날이었고 아이들과 헤어질 날을 42일 앞둔 날이기도 했다.